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이킹 (문단 편집) ==== 남유럽 ==== 바이킹들은 장거리 항해도 즐겨했다. 보통 바이킹이 얼음 가득하고 추운 바다에서만 활동했다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방은 물론 심지어 [[지중해]] 안까지 들어와서 [[이탈리아]] 남부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860년에는 비요른과 하스테인이 이끄는 바이킹 함대가 이탈리아 남부 항구도시 '루니'를 쳐들어와 약탈한 다음, 60마일 떨어진 토스카나 지방으로 이동해 [[피사]]를 약탈했다. 심지어는 아르노 강을 타고 그대로 따라올라가 '''[[피렌체]] 인근도 약탈했다.''' 바이킹들이 가장 즐겨 털었던 지방은 토스카나와 이탈리아 서부 해안가, 그리고 [[시칠리아]] 섬과 북아프리카 지방이었다. 특히 이탈리아가 몇 백여 년 동안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던 덕에 워낙 많은 부가 쌓여있어서 바이킹들이 군침을 흘리던 먹이였다고 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바이킹 활동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되어 9세기 초중반부터 이루어졌다. 물론 기록들이 워낙 중구난방이라 확실하지는 않으나 확실한건 당시 바이킹들이 갈리시아와 [[아스투리아스]]를 습격한 뒤 [[리스본]]과 [[세비야]]를 약탈했다는 것. 이베리아인들조차도 바이킹의 침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만 바이킹들은 갈리시아 왕국과 [[후우마이야 왕조]]가 워낙 방비를 잘 갖춘 덕에 큰 성과는 내지 못하고 후퇴해야만 했다. 859년에는 3년에 걸친 대규모 원정을 실시했지만 실패했고 966년에 28척의 함대가 리스본을 공격했으나 역시 격퇴당했다. 바이킹들의 공격 자체는 11세기까지 쭉 이어졌지만 어디까지나 무역선 습격이나 소규모 기습에 그쳤고,[* '소규모 기습'이라고 해서 피해가 적은 건 아니었다. 1015년에는 바이킹이 민호강을 따라 주교좌가 있는 도시 '투이'를 공격해 약탈했고, 투이는 무려 1070년까지도 주교좌가 회복되지 못했다.] 잉글랜드나 프랑스처럼 나라의 존망이 걸린 싸움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또한 [[노르만 기사|노르망디 출신 모험자들]]은 [[시칠리아 토후국]]이 지배하던 [[시칠리아]]와 [[동로마 제국]]이 지배 중이던 칼라브리아[* 대 그리스, 마그나 그라이키아라고도 불리는 지역이다.] 등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시칠리아는 [[동로마 제국]]과 [[시칠리아 토후국]]이 서로 패권을 두고 싸우고 있었는데, 이때 동로마 제국은 노르만인들을 고용해서 싸우도록 했다. 그러나 시칠리아의 비옥함을 두 눈으로 확인한 노르만인들이 스스로 시칠리아를 집어삼킬 야심을 품었던 것. 결국 시칠리아 왕국을 세운 노르만인들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서방 교회에 간섭하던 동방 교회와 동로마의 영향력을 종식시켰다.[* 다만, 바이킹의 정착에 관하여 남이탈리아가 많이 언급되는데, 그들은 이미 노르망디에 정착한 지 한 세기 이상 지나서 그리스도교화 및 프랑스화가 되었다. 로망스계 언어와 문화, 정체성을 지니고, 군사문화도 바이킹 특유의 롱보트를 타고 다니는 땡보병 군대에서 중기병 기사 중심 군대로 완벽히 변모했다. 노르만인들이 갑자기 바이킹으로 둔갑하여 국가를 세운 양, 시칠리아 왕국을 바이킹의 정착이라 부르면 전후 결과가 뒤바뀐다. 이미 동로마 제국은 라벤나 총독부의 [[성상파괴운동]]으로 국내 혼란에 빠져있는 동안 [[랑고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짓밟은 상태라서 로마 교회에 대한 압력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했다. 특히 이 사건은, 온갖 야만인들의 침공으로 서로마가 증발하면서 터진 헬게이트를 로마 교회가 뼈저리는 노력으로 그들을 개종시켜 버티는 동안, 그러한 서방 교회에 대하여 보여준 동방 교회의 불성실한 태도로 쌓인 악감정을 뻥 터트리고 말았다. 그럴 것이 당장 로마조차 랑고바르드족에게 함락될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 교회는 완전히 분열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동로마 제국의 이탈리아 남부 영토가 제한적으로나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노르만족이 교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는 자기 영토 확보 겸 교황에 대한 충성 증명으로서 동로마 제국의 이탈리아 최후 거점 바리까지 함락하면서 동로마 제국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했다.] 중세 내내 노르만 기사들은 [[십자군 전쟁]]이나 [[레콩키스타]], 그 외 각종 전쟁에서 용병으로서 활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