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이킹 (문단 편집) ==== 항해 방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eface3f82a6cd7faaa99c27159c0a28.jpg|height=28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060_308__warriorsportageaboat_olausmagnus_1367356386_standard.jpg|height=28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6_0bd5b463-e766-44e9-95da-1ebc12bd45aa_600x.webp|height=280]]}}} || || '''{{{#40E0D0 바이킹들의 방해석 나침반}}}''' || '''{{{#40E0D0 배를 옮기는 바이킹들}}}''' || '''{{{#40E0D0 해시계 유물과 복원도}}}''' || 노를 저어 강을 역류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현대의 고무보트처럼 전사들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들고 이동하기도]]''' 했다. 바이킹은 유럽을 약탈할 때에도 수로를 많이 이용했는데, 노르드인들은 이러한 뛰어난 기동성을 바탕으로 한 전술을 구사해 당시의 다른 민족([[게르만]] 계통의 [[고트족]], [[프랑크족]]부터 [[켈트]]족에 이르기까지)과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크노르는 수송이 주목적이어서 롱쉽과 비교하여 더 짧으면서 넓고 더 깊게 지어졌다.(길쭉한 롱쉽과 달리 비교적 둥글둥글하게 지어졌다는 얘기다.) 최대 24톤을 실어나를 수 있었다 한다. 랑스킵의 속도에 대한 입증된 기록으로는 1893년에 바이킹 선을 재현해 [[대서양]]을 횡단한 사례가 있다.[* 다만 이런 일이 바이킹의 배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며, 1978년 7월 27일 아일랜드의 역사가 팀 세버린은 자신이 직접 고대 [[아일랜드]]의 전통 배인 코라클(나무판자에 소가죽을 덮어씌운 배)을 만들어 타고서 실제로 아일랜드에서 [[미국]]까지 항해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바다의 짠 소금기가 소가죽에 닿으면 가죽이 오히려 더 딱딱해져서 물이 전혀 스며들지 않고 방수에 좋았다고 한다.[[http://todayhumor.com/?mystery_9260|링크]]] 이 항해는 28일 만에 성공했는데 이는 하루에 평균 185km를 이동한 것이다. 유럽을 공격했을 때 몽골군의 이동속도가 3일에 280km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단, 수로와 육로의 차이는 감안해야 할 점이다. 기원전부터 해로에 의한 이동거리가 육로에 의한 이동거리보다 훨씬 길었다. 몽골군의 이동 속도도 전차와 항공기가 일상화된 20세기 이전의 전쟁에서는 경이적인 속도였다.] 바이킹들은 원시적인 [[아스트롤라베]]를 가지고 있었다. [[그린란드]] 남부의 바이킹 농장 유적에서는 원시적인 [[해시계]]가 발견되었는데, 이걸 토대로 바이킹들이 태양을 이용해 항해 방향을 잡았을 거라 추정하는 중이다. 이 유물은 빗금이 새겨진 평평한 나무 조각인데, 직경 7cm 짜리로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작다. 위에 붙어있는 나무조각은 태양의 고도에 따라 판 위에 그림자를 비추는데 이 그림자의 위치를 보고 항해했던 것이다. 특히 이 유물을 보면 북위 61도 정도를 중점으로 기준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 북위 61도가 스칸디나비아와 그린란드 사이의 항해루트 위도라는 걸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걸 사용해 항해 방향을 잡았다고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1984년 실제로 이 유물을 갖고 재현 실험항해를 해봤더니 꽤나 성공적이었고, 위도 오차는 대략 ±5° 이내였다. 나침반이 없던 시대에 [[방해석|일장석]](Sunstone)으로 태양을 보고 빛 방향을 따라 향해했다고 추정한다. 일장석을 수평선과 같은 눈높이에 놓고, 이 일장석이 빛을 편광시키는 모습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일광석에 햇빛을 비추면 양전하를 띤 칼슘 이온과 음전하를 띠는 탄산 이온 때문에 이중으로 굴절되어 불투명하게 보이는데, 이 불투명도는 태양빛의 입사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투사된 두 상이 정확하게 일치하면 돌이 태양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일광석을 이용한 항해법은 돌과 햇빛을 같은 눈높이에 맞춰야하기 때문에 태양의 고도가 낮은 곳일수록 유용했는데, 태양 고도가 대체적으로 낮은 [[극지방]]에 사는 바이킹들에게 딱 좋은 방법이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바이킹스]]에선 [[프랑스]] [[노르망디]]에 정착한 [[노르만 왕조]]의 시조 롤로가 일장석을 사용해 북해를 건너갔다는 설정을 한 바 있다.] 그 외에도 [[까마귀]]를 데려왔다가 풀어주면 새가 육지를 향해 날아가는데, 이 방향을 따라 항해하는 방법도 있었다. 랑스킵은 노로 젓거나 돛의 바람에 의존하거나, 이 2개의 추진방법 밖에 없었다. 당연히 노보다 바람으로 가는 게 훨씬 빨랐고 힘도 덜들었다. 바람이 불어치면 바로 때맞춰 돛을 올려야 했기 때문에 바이킹들은 90초 이내로 돛을 펼칠 수 있었다고도 한다. 노는 해안가 근처나 강에서 빠르게 속도를 내기 위해, 아니면 역풍이 불때만 주로 사용했다. 랑스킵에는 벤치나 의자가 없었고, 노잡이들은 그냥 바닥에 나무 상자 하나 깔고 그 위에서 노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움직이는 랑스킵은 당대에 탁월할 정도로 좋은 성능을 자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코게'가 등장하며 점차 밀려났다. 랑스킵은 1429년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사용되었고 그마저도 코게 함대에게 패배하면서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