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이킹 (문단 편집) ==== 바이킹들의 등장 원인 ==== 스칸디나비아인들이 8세기 경부터 '바이킹'이라는 형태로 유럽 곳곳에 약탈을 시작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통설은 인구와 경제, 이념과 정치 모두가 합쳐진 것이 바이킹의 등장 원인이라고 본다. 첫 번째는 인구 문제였다. 8세기 이후, [[유럽]]은 점진적인 농업 기술의 발달과 함께 [[https://en.wikipedia.org/wiki/Medieval_Warm_Period|"Medieval Warm Period"]]라고 불리는 따뜻한 기후에 힘입어 인구가 급증했다. 이는 북유럽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인구는 유례없이 크게 늘어났지만, 한정된 자원을 넘어서까지 계속 늘어나는 인구를 제어할 수는 없었기에 농업만으로는 불어난 인구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점까지 도달했다.[* 또한 이 시기에 단기적 기후 냉각 즉, 일종의 짧은 소빙기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식량 공급원을 찾고자 하는 이들과 보다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나서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 조직적으로 전 유럽을 약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 문제였다. 이슬람 세계와 유럽 세계의 동반 성장 덕분에 유럽은 갈수록 부유해졌고, 자연스레 무역량도 늘어났다. 무역로는 점차 북쪽으로 확장되었으며 8세기 경에는 심지어 브리튼 제도도 무시못할 수준의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북쪽에 자리해 아직 그만큼의 부를 획득하지 못했던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입장에서 서유럽의 재화는 그럴듯한 먹잇감이었고, 결국 이들의 부를 강제로 빼앗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바이킹들은 잉글랜드와 서유럽 해안가에서 해적질을 벌이며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저멀리 동유럽과 중동까지 가서 해적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 번째가 바로 정치 문제였다. 특히 잉글랜드의 경우 아직까지도 중앙집권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체계적인 방비 체계가 없는 상황이었다. 돈은 그득그득 쌓아놨는데 정작 그걸 지킬만한 무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바이킹들이 이를 가만 놔둘리 없었고 브리튼 섬은 바이킹들의 최우선 공격목표가 되버렸다. 반대로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본토에서는 점차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져 왕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스칸디나비아 왕들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토착 유력자들을 억압했고, 정치싸움에서 밀려난 지방 유력자들은 해외로 눈을 돌려 영국이나 서유럽을 약탈하는 전략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외에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다. 당연히 바이킹 시대 이전에도 [[발트 해]] 유역에 해적은 존재했지만 바이킹만큼 대대적인 규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8세기 들어 갑자기 바이킹들이 증가한 원인은 기술적 진전의 이유도 있었다. 더 거대한 돛의 도입, 태킹, 24시간 항해와 같은 더 발달된 항해술이 도입되었고 배도 이전보다 훨씬 정교해졌다. 이념적인 문제도 있었는데 바로 [[기독교]]의 전파였다. [[카롤루스 대제]]의 주도로 기독교가 점차 스칸디나비아 일대에 전파되면서 기존의 노르드 신앙을 믿던 사람들과 싸움이 일어났는데, 이때문에 스칸디나비아 일대에 혼란이 발생했고 제대로 통제가 되지 못하면서 바이킹이 날뛰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비슷하게 일본도 [[전국 시대]]에 중앙의 통제력이 극도로 약화되어 [[왜구]]들이 날뛰었다. [[에도 막부]] 시대처럼 지방통제가 강력하게 이루어졌던 시대에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스스로 왜구를 철저하게 단속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