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쿠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바쿠 마이덴.jpg|width=325]]||[[파일:바쿠 거리.jpg|width=619]]|| ||||12세기에 세워진 30m 높이의 그즈 갈라스 (Qız qalası, 메이든 타워 / 처녀 성탑)[*전설 : 먼 옛날 바쿠가 외세의 의해 포위당하자 주민들은 조로아스터교 사원이었던 성탑에 피신해 항전했는데, 적은 완전히 포위한채 기다렸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아후라마즈다께 구해달라고 기도하자 불꽃 색의 머리를 가진 여자가 내려왔는데, 그녀는 적장과 1대1 대결을 요구하여 싸워 이겼다. 그후 여인은 적장을 죽이지 않고 투구를 벗었는데, 그 모습에 반한 적장이 '여인마저 이렇게 강한 도시를 다시는 침공하지 않겠다'며 청혼하자 여인도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결혼했다고 한다. 이렇게 평화가 찾아왔다고.. (어차피 페르시아 전통에 따라 일기토에서 패한 적은 후퇴하는게 맞긴 하다] / 성벽 내의 구도심 거리 |||| 역사가 아주 오래 된 도시이며, 중세 시대에 크게 번영하였고 당시의 유적도 남아 있다. 10세기 무렵 바쿠 일대에는 이란에서 박해를 피해 이주한 [[조로아스터교]] 공동체가 있었고, 7대 쉬아 이맘 무사 알 카딤의 딸이 피신했다고도 한다. 12세기 말엽 러시아의 루스인들이 카스피해 연안을 공격하였는데, 당시 아제르바이잔의 시르반샤 왕조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바쿠를 거점으로 해군을 양성하여 반격하였다. 1192년 (북부)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기존 수도였던 샤마흐(Şamaxı)가 대지진으로 파괴되자 샤 아흐시탄 1세 (Şah Axsitan)가 바쿠로 천도한 것이 번영의 시작이었다. 12~14세기의 기간 동안 바쿠에는 성채들을 비롯한 많은 중세 건축물이 세워졌고 상당수가 현존한다. 1501년 [[이스마일 1세]]가 시르반샤를 격파하며 도시는 [[사파비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1583~1607년의 오스만 지배기를 거쳐 도시를 수복한 사파비 조의 [[아바스 1세]]는 순니 세력의 준동을 우려하여 성채를 파괴하였다. 17~18세기 상업이 번영했던 바쿠에 인도의 [[파르시]] 상인들이 왕래하였는데, 그들은 외곽에 조로아스터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를 위한 아테쉬갸흐 사원을 세웠다. 그러나 사파비 조가 멸망하고 1747년 [[나디르 샤]]가 사망한 후 캅카스 지역은 여러 칸국들로 나뉘는 혼란기가 도래, 바쿠 역시 바쿠 칸국으로 독립하였으나 도시는 쇠락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