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티칸 (문단 편집) ==== 촬영 관련 이야기 ==== 2010년 기준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 복원 작업 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제재하는 장면을 많이 보인다. 심한 경우는 경비원이 와서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압수'''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No pictures please"하고 다니고 있다. 대놓고 찍지 않으면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인물 사진 같은 것은 찍기 힘들다. 가이드들의 말로는 사실 저 프레스코화의 저작권이 복원을 한 일본의 모 회사의 소유가 되어서 바티칸 시국과 협의 후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대신 서점에서 사진집을 팔기 때문이라는 믿기 힘든 [[도시전설]]급 이야기를 한다. 동시에 그런 이야기가 단순한 루머라는 이야기를 하는 가이드도 많은데… 실제로 바티칸에서 시스티나 소성당의 벽화를 복원하면서 자금 문제로 고민하던 중 [[일본]] [[일본방송협회|NHK]]에서 자금과 기술을 대어주면서 겨우 해결되었는데, 교황청과 합의 끝에 NHK에서는 10년간 관련 저작권에 대한 독점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만큼 1994년 복원 작업이 끝난 뒤 10년이 지난 2004년에는 일본의 독점권이 끝났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는 여전히 사진 촬영을 엄금하고 있는데, 이는 빛에 약한 프레스코화의 특성상 최대한 빛의 접촉을 줄여야 하며, 햇빛 역시 최대한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비추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복원 작업에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최후의 심판]]은 원래 올 [[누드]]화였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종교개혁]]과 봉건 사회 해체 등으로 인해 사회가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덕분에 르네상스로 인해 세속화되면서 느슨해지고 인본주의적 모습을 보이던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더욱 보수화되어 가고 결국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모든 성화에 누드를 금지'''하는 결정이 내려진다. 따라서 기존에 르네상스로 인해 그려진 누드 성화는 파괴되거나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지게 되었는데 최후의 심판 역시 이러한 손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최후의 심판은 완성 당시부터 이단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누드로 표현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파괴냐 수정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선 마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제자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중요 부위(?)를 살짝 가리는 수정을 도맡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최후의 심판>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중요 부위(?)에 어디에선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천들에 의해 가려진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덕분에 볼테라는 '[[기저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이 이뤄진 지 400여 년이 지난 후 일본에 의한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미켈란젤로가 그린 원본으로 복원해 보자!!'는 시도가 진행되었는데 이에 대해 "교회의 결정을 존중하라"는 교황청과 신자들의 반발이 있었고, 결국 일본 측에서는 거기에 굴복해 작업이 중지되고 그냥 때 벗기는 작업만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도 현재 <최후의 심판>의 등장인물들 중 총 6명은 초기 작업의 영향으로 올 누드 상태라고 한다. 들어가 보면 벽 쪽에 커튼들이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다 '''그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