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광덕 (문단 편집) === 씨름 선수 시절 === 1990년 11월 [[LG투자증권 황소|럭키금성 씨름단]]에 입단하여 민속씨름에 데뷔했으며, [[강호동/씨름|강호동]] 이후 등장한 소위 '덩치계' 씨름 선수의 선두주자였다. 장사 타이틀은 백두장사 2회[* 프로 데뷔 3년 10개월 만인 1994년 8월 백두장사 대회에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082200209125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4-08-22&officeId=00020&pageNo=25&printNo=22605&publishType=00010|생애 첫 장사에 등극]]하였고, 이듬해인 1995년 6월에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506060023911101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5-06-06&officeId=00023&pageNo=11&printNo=23048&publishType=00010|2번째 백두급 정상]]에 올랐다. ]에 불과했지만, 천하장사 준우승만 5회[* 그 중 3번은 2판을 먼저 따내고도 3판을 내리 내줘 2:3으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5050500329128001&edi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5-05-05&officeId=00032&pageNo=28&printNo=15416&publishType=00010|역전패]]했다.]를 기록했다. 1995년 11월에 은퇴를 선언하고 연예계에 진출했으나, 실패하고 11개월 만에 다시 씨름판으로 돌아와 4년 더 활약하다 2000년 10월에 정식으로 은퇴하였다. 통산 전적은 432경기에 출전하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0055334|256승 176패]](승률 59.3%)를 기록했다. 동시대의 '슈퍼 두꺼비' [[김정필]]과 함께 무게 씨름의 트렌드를 이끈 인물이다. 승리한 뒤 특유의 [[람바다]] 댄스가 유명했으며, 입담도 괜찮아서 장외의 스타성은 충분했으나 문제는 본편인 씨름이 재미없었다는 것이다. [[이만기(체육인)|이만기]], [[이준희]], [[강호동|강호동]] 등이 이끄는 기술 씨름에 익숙하던 세대들은 박광덕의 무게 씨름에 높은 평가를 주지 않았다. 실제로 이후 선수들의 체급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 정점으로 [[김영현(씨름)|김영현]]이 등장하면서 씨름의 인기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다만 본인은 이를 커버할 수 있는 스타성이 있었고, [[씨름/체급#s-2|천하장사]] 한 번 하지 못했음에도 당대 강자급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