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기영 (문단 편집) === 소속사와의 갈등 === 데뷔 앨범에는 반도음반, 2집 때는 다민 그라픽스, 3집 때는 반도음반/믹스팩토리엔터테인먼트 이렇게 소속사 이름이 자주 바뀌었다. 4집부터는 아예 스탭과 소속사 자체를 바꾸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 김철[* 당시 [[서태지]] 팬들이라면 기억나겠지만, 조폭 관련 루머가 따라다녔던 그 사람 맞다.]에 의해 1997년 11월 '기억하고 있니'로 데뷔한 박기영은 지금의 발라드적인 음악과는 상이한 여성 로커로 데뷔했다. '''소속사의 언플이랍시며 __[[김윤아]]와의 라이벌 구도가 어거지로 갖다 붙여진 건 덤.__''' 후에 박기영이 밝힌 바로는 딱히 락을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데 당시 소속사에서 대세는 락이고[* 확실히 1997, 1998년에서부터 2000년대 당시는 [[부활(밴드)|부활]], [[김종서(가수)|김종서]], [[김경호]], [[소찬휘]], [[자우림]], [[리아(1975)|리아]] 등 수많은 가요풍의 록밴드과 로커들이 전성기를 누렸고, 그렇지 않은 가수들까지 락적인 느낌을 내려고 한 시기다.] 락을 네가 하고 싶어서 했다는 걸 내세우라고 했던 통에 인터뷰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해야 돼서 난감했다고 한다.[*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타이틀곡을 제외한 박기영 본인 작사·작곡한 곡들을 보면 음악적 색깔이 락과는 거리가 멀다.] 그때 당시 박기영의 소속사의 전략은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를 내세우면서도 타이틀 곡들은 그때그때 음반 시장 상황 봐서 박기영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잘 팔릴 만한 곡들로 외부 작곡가들을 불러 만들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게 먹혔다. '''나중에 표절 논란으로 돌아와서 박기영만 욕 먹는 게 문제지.''' 진짜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4집 활동 이후 그녀의 '''소속사가 [[부도]]가 나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계약 기간과 계약금 문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소속사는 제 발등의 불 끄기 바빠 계약을 해지해주지 않았고, 박기영은 앨범을 내고 활동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박기영은 소속사 측에 다른 회사와 계약해서 활동을 재기하고 싶다고 했으나 소속사측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만 할 뿐이었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회사가 회생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박기영은 [[로엔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감행했고 다시 활동에 들어갔다. 이때 낸 앨범이 5집 'Be Natural'. 3년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당시에도 나름 중박은 쳤고 지금까지도 박기영의 앨범 중 가장 명반이라 손꼽히며, 타이틀곡 '나비'는 '''박기영 본인이 처음으로 작사·작곡한''' 타이틀곡이자[* 5집 이후로는 타이틀곡은 물론 앨범의 거의 모든 곡들은 박기영 본인이 작사·작곡하고 있다.]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전 소속사측은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활동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사건은 결국 법정 공방에까지 이르렀다. 2006년에 승소했지만 그 후에도 저 전 소속사측은 ~~돈 뜯어낼 작정으로~~ 별별 민사소송과 악의적인 루머를 퍼트리며 다시 박기영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들에 지칠 대로 지쳐 제주도에 머물며 한 동안 주변 사람들과 연락도 끊은 채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결국엔 다 승소하고 저 전 소속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법정 공방의 여파+남자친구측 부모님의 교제 반대가 겹치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전 소속사와의 분쟁 때문에 실력 있는 여가수 하나가 너무 오랜 공백 기간으로 사람들에게 잊혀진 어찌 보면 안타까운 케이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