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상관 (문단 편집) === 프로 시절 === KBL 원년시즌 [[서울 삼성 썬더스|수원 삼성 썬더스]]는 [[김희선(농구)|김희선]]-케빈 비어드-[[노기석]]-([[강양택]] or 박상관)-빈스 킹의 라인업을 주로 가동하였고, 박상관은 팀 선배인 단신 파워 포워드 강양택(190cm)과 번갈아가며 외인 센터 빈스 킹(196cm)의 파트너로 출전하며 평균 4.9득점-3.3리바-0.9스틸을 기록했다.[* 이게 커리어 하이 기록이다;;] 하지만 원년시즌 [[서울 삼성 썬더스|수원 삼성]]의 두 외인은 당시 8팀 16명의 외인중에서도 가장 기량이 떨어졌고,[* 센터 빈스 킹은 NCAA 디비전 II 대학 출신이었고 거기다 원래 포지션도 2-3번이었다. 스윙맨 케빈 비어드는 무려 디비전 III 대학 출신이었다. 그럼에도 이 둘이 팀내 득점-리바운드 1, 2위였다는 게 함정;;;] 왕년의 명문팀 수원 삼성은 원년시즌 꼴찌로 추락한다. 농구대잔치까지만 해도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수비 쪽에선 그나마 경쟁력 있던 박상관은, 키는 작지만 고무공 같은 탄력에 몸싸움 능력이 월등한 [[클리프 리드]](190cm), [[제이슨 윌리포드]](194cm) 등 외인들에게 속절없이 골밑을 내주며, 프로농구 출범 후 달라진 분위기를 표현하는 "토종 센터 몰락" 같은 신문기사의 단골 사례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KBL 초창기에 그나마 적응에 성공했던 빅맨들([[전희철]], [[정재근(농구)|정재근]])은 모두 정통센터가 아닌 파워포워드였다. 2000년대에 들어 외국인선수들의 수준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이들마저도 골밑에서 완전히 밀려나 '''3점슛이 좀 덜들어가는 스몰 포워드'''가 되었고 명성에 비해 다소 이른 은퇴를 맞이하게 된다. ~~[[서장훈]], [[김주성(농구)|김주성]]의 위엄~~] KBL 두번째 시즌(97-98) 상무에서 제대한 [[문경은]], [[김승기(농구)|김승기]]에, 1순위 외국인 선수 존 스트릭랜드(200cm,C)까지 가세하며 우승후보까지 거론되던 수원 삼성은 그러나 새로 합류한 선수들간의 호흡이 맞지 않으며 9위로 추락했고, 팀내 유일한 토종센터였던 박상관은 단신 포워드 숀 이스트윅(189cm)[* 이때도 수원 삼성의 외국인선수 농사는 실패에 가까웠다. 1순위로 뽑은 장신센터 스트릭랜드는 공만 투입되면 밖으로 뺄 줄 모르는 "골밑의 블랙홀"같은 선수였고, 스윙맨인 줄 알고 뽑은 이스트윅은 3점이 없어서 골밑에 박아놓고 상대팀 4번 [[조니 맥도웰]], [[클리프 리드]]를 상대하게 해야 했다.(그래도 팀내 리바운드 2위(8.5개))]에 밀리며 출장시간이 반토막(19분 → 12분)나고 만다. 98-99 시즌 새로 부임한 [[김동광]] 감독은 외국인 선수로 [[LSU 타이거스|LSU]]에서 [[샤킬 오닐]]과 함께 뛰었던 만능센터 [[버넬 싱글턴]](200cm)과 3점슈터 이슈아 벤자민(190cm)을 뽑았고, 덕분에 박상관은 싱글턴의 골밑 파트너로서 간염에서 돌아온 동갑내기 빅맨 [[이창수]]와 번갈아가며 파워포워드로 출장하게 된다. 시즌 중반 센터 싱글턴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위기를 맞은 수원 삼성은, 오랜만에 추억의 [[이창수]]-박상관 트윈타워를 소환하였고, 이들 콤비는 삼성전자 시절과 마찬가지로 벤자민-[[문경은]] 쌍포를 보좌하는 블루워커 역할을 충실히 하며 외국인 선수 한명으로 뛴 8게임에서 4승 4패를 기록하며 팀의 위기를 막는다.[* 사실 이때 운이 정말 좋았던게, 8경기 중 두 경기가 '''32연패'''의 역사를 달리던 대구 동양과의 시합이었다. 나머지 2승은 IMF로 부도직전이던 9위 광주 나산과, 외국인 센터가 없어 천적관계였던 인천 대우에게서 건졌다.][* 이후 KBL 출범이후 최초의 일시 대체 외국인선수 브라이언 힐(198cm,C)이 합류하는데, 힐이 합류한 뒤 수원 삼성은 7경기에서 2승 5패를 기록하는 바람에 하나마나한 교체란 소리를 들었다.;;;] 이들 콤비의 활약에, 부상에서 회복한 루키 [[김택훈]]의 활약까지 더해지며, 수원 삼성은 98-99 시즌을 6위로 마감하며 KBL 출범이후 최초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고, 플옵 6강에서 정규리그 3위팀 인천 대우 제우스를 3승 1패로 업셋하고 4강에 오른다. 4강에서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악연의 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만난 수원 삼성은 부산 기아가 자랑하던 [[제이슨 윌리포드]]-클리프 리드-[[김유택]]의 골밑을 상대하기 위해 박상관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고, 박상관은 평균 23분을 뛰면서 아낌없는 파울과 거친 수비로 부산 기아 센터진을 상대했지만, 수원 삼성은 홈에서 열린 3, 4차전을 내리 내주며 1승 3패로 패퇴하고 만다. 99-00 시즌에는 재계약한 [[버넬 싱글턴]]이 시즌 내내 건강했던 탓(?)에 박상관의 출장시간은 다소 줄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비용 빅맨으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새 외국인 슈터 G.J. 헌터(188cm,G)의 활약까지 더해지며[* 라고 하기엔 난사기질에 기복왕이었다(.....)] 수원 삼성은 대전 현대, 청주 SK에 이어 리그 3위에 오른다. 수원 삼성은 6강 플레이오프에서 지난 시즌 플옵 4강 탈락의 아픔을 주었던 부산 기아를 다시 만나 3승 1패로 복수극을 펼치며 4강에 오른다. 특히 수원에서 열린 2차전 1쿼터에 싱글턴이 상대팀 센터 토시로 저머니(203cm)와 싸우다 동반 퇴장당했는데, 싱글턴을 대신해 출장한 박상관은 파울 4개의 와중에도 경기 종료까지 수원삼성의 골밑을 지키며 12득점 9리바를 기록하는 대활약으로 홈경기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어진 플옵 4강에선 그야말로 대악연 [[서장훈]]의 청주 SK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언론들은 어이없게도 5년전의 추억을 끄집어내며 벤치멤버인 박상관을 플옵의 키플레이어로 꼽기도 했지만, 결국 졸업 후 더 업그레이드 된 서장훈과 조력자 [[재키 존스]](201cm) 콤비에 골밑을 탈탈 털리며 3:0으로 광탈하고 만다. 00-01 시즌 연고지를 서울로 옮긴 [[서울 삼성 썬더스]]는 신입 외국인 [[아티머스 맥클래리]](191cm,F)와 [[주희정]]의 대활약 속에 마침내 KBL 우승을 달성하게 되지만, 31살의 노장이 된 박상관은 신인왕 [[이규섭]]의 맹활약에 완전한 벤치멤버로 밀려났고, 동갑내기 [[이창수]]와 함께 세대교체 대상이 되어버린다. 2002년 FA가 된 박상관은 삼성과 재계약에 실패,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 오리온스]]와 연봉 5500만원에 계약하지만, 여기서도 출장기회는 없었고 03-04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