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상률 (문단 편집) == KBL 입단 후 == || [[파일:박상률과 표명일.jpg|width=350]] || [[파일:박상률과 강기중.jpg|width=350]] || || [[파일:박상률 전주KCC.jpg|width=350]] || [[파일:박구영과 박상률.jpg|width=350]] || 성적은 말 그대로 백업 가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수준. 전자랜드에서 그래도 괜찮은 모습을 보이며 은근히 어려운 상무 시험에도 통과해서 두 시즌 동안 군 복무를 한다. 제대 후에는 전자랜드 대신에 KCC로 이적했는데 멤버가 워낙 좋은 KCC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시 KTF로 이적을 택했지만, 그것 마저도 별 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며 2군 리그로 강등되기도 했다. || [[파일:박상률 안양에서 첫 시즌.jpg|width=350]] || [[파일:인삼공사 박상률.jpg|width=350]] || || [[파일:2011-12시즌의 박상률 레이업슛.jpg|width=350]] || [[파일:2012-13시즌 인삼공사의 박상률과 김일두.jpg|width=350]] || KTF에서 방출되었지만[* 이 부분은 당시 이상범 감독이 우승에 도전하는 KT에 [[나이젤 딕슨]]을 안겨준 보답으로 [[전창진]] 감독이 박상률을 무상으로 안양에 넘겨준 것 같다는 이상범 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있다. 사실확인 바람.], 그를 프로 무대로 나가도록 권유한 [[이상범(농구)|이상범]] 감독이 다시 박상률을 영입하며 마침 [[김태술]]의 입대와 [[주희정]]의 이적으로 가드진의 공백이 생긴 KT&G의 백업 가드 역할을 맡겼다. 당시만 해도 이 선수에게 기대하는 안양팬은 누구도 없었으나 의외의 쏠쏠한 활약으로 농갤 등에 '어디서 나타난 선수냐' 묻는 글들이 종종 올라왔다. 거저 얻은 잡동사니가 알고 보니 보물이었던 셈. 2011-12 시즌에는 멤버들이 워낙 좋았던 인삼공사 사정상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때문에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어쨌든 팀의 우승으로 우승 반지를 얻는 것엔 성공. 스타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2부 대학 출신으로는 드물게 저 치열한 프로무대에서 오랜기간 생존한 것 만으로도 유의미한 성과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2부대학 출신 선수들에겐 등대와도 같은 선수. 여담으로 둥글둥글한 외모에 걸맞지 않게 마치 미국의 스트릿 볼러들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스타일의 [[농구]]를 구사했다. 농구 갤러리에 '키는 작고 느린데에다 농구 정말 못 하게 생긴 선수가 어울리지 않게 멋있는 농구를 하더라'는 글이 올라오기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