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성용(기업인) (문단 편집) == 어록 ==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젊음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인류의 미래를 믿는 것이다."''' >----- >박성용 명예회장의 예술사랑 어록.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사무실 벽면에도 고인의 어록이 적혀 있다. >'''"해가 다르게, 아니 짧게는 달마다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는 음악 영재들의 소식을 접하다 보면 큰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지금도 토요일마다 자신의 음악회를 준비하며 음악 세계에 푹 빠져 있는 미래의 음악인들을 지켜보면 새로운 희망과 의지를 얻게 됩니다. 이 친구들을 위해 내가, 우리 기업이 해야할 일들을 떠올리다 보면 잠이 오지 않아요.'''" >'''"고구마는 먹는 것만 생각하면 분명 소비재다. 그러나 먹고싶은 것을 참고 아껴두었다 땅에 심으면 자본재가 된다. 소비재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자본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고구마 경제학이라고나 할까.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사내유보를 늘려 설비투자및 기술개발투자를 확대하고 맨파워를 키우면 초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지만 반대로 고구마 먹어치우듯 이익을 그때그때 서버리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소비재까지 자본재로 활용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금호그룹도 발전하고 사원 여러분도 성장할 수 있다."''' >----- >1995년, 금호그룹 사원대상 특강을 묶은 경영어록에서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1995091100101|#]] >'''"아직까진 우애있게 잘 해왔다고 봅니다.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자산은 공동분배하고, 개인사업은 안하며, 새 사업은 4형제가 똑같은 지분을 나눠한다는 것 등 입니다. 한 사람이 욕심을 내면 화목은 깨지게 돼있습니다. 특히 윗사람이 욕심내면 안 돼요. 형제 간에 싸우는 것처럼 불효(不孝)가 어디 있습니까. 우린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보고있나 39-- >----- >1996년 4월 1일, 동생 [[박정구]] 회장에게 경영직을 물려주기 닷새 전에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회장직을 동생에게 물려주면서 각별히 당부하신 말씀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 [[https://news.joins.com/article/3246261|#]] >'''"내가 그룹총수에 오른 것은 잘나서라기보다 단지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뛸 수 있을 때 뛰어야 한다. 너도 더 나이들기 전에 회장을 맡아 경영능력을 마음껏 펼쳐보기 바란다."''' >----- >동생 박정구 회장에게 경영직을 물려주면서 했던 말. >'''"아시아나 만세!"''' >----- >1988년 12월 15일, [[김포국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B737-400 1호기 도입식 中 >'''"금호는 성장하는 그룹이다. 지난해 외형은 7천 5백억원 수준이다. 그동안 그룹성장에 발판을 마련한 타이어, 운송, 석유화학 분야의 성장기반을 계속 도모하면서 신규 민항사업에도 그룹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70년대의 정착기를 거쳐 80년대 들어서는 고도성장을 거듭하는 마당에 항공사업까지 참여하게돼 책임감을 느낀다. 특히 민항은 경쟁체제를 갖출 경우 오히려 발전이 가속화된다는 점은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알수있다. 기존 사업분야와의 조정을 통해 그룹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 >----- >1988년 2월 13일, 국내 제2민항 사업자로 금호그룹이 선정되었고, 향후 아시아나항공 사업추진에 대한 인터뷰 中. >'''"우리가 가진 가장 값진 자산은 인간자산이며 인간자산을 아끼는 의미로 제일 먼저 건강해야 한다."''' >----- >1986년 8월, 사내 금연운동을 주도하면서. 금호그룹은 국내 기업중 최초로 모든 사업장에 금연을 실시하였으며, 훗날 아시아나항공 역시 전세계 항공사 중 최초로 전노선 기내 금연을 실시한 바 있다. >'''"기구개편은 금호실업과 삼양타이어를 주식회사 금호로, 광주고속과 금호건설을 주식회사 광주고속으로 합병, 4개사를 2개사로 대형화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구개편은 오랫동안 검토해왔으며, 형제들의 의견도 같았습니다. 타이어를 수출하기 위해 금호실업을 설립했고, 종합무역상사로 발돋움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생산과 판매를 분리해 둘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판단되어 합치게 된 것입니다. 금호건설과 광주고속 합병은 모기업인 광주고속이 계속 호황을 누리리라는 보장이 없고, 레저등 신규사업 진출도 계획할 필요성이 있어 단행된 것입니다. 금호건설은 83년 4월부터 해외건설수주를 거의 중단하고 국내건설에만 치중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통합으로 일반주주들에게 염려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마는 통합 후 수지를 대폭개선, 주주들에게 보답할 것입니다. ··· 생소한 분야의 진출은 삼가야 된다고 봅니다. 경영을 보수적으로 해 지난날의 실패를 재현하지는 않겠습니다. 한때 전자분야에 진출한 적도 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지요. 소비재 분야에는 판매와 신제품 개발 등에 경험도 없습니다. 화학분야등 중간재 분야에 전력투구할 작정입니다. ··· 국내기업들은 앞으로는 과거와 같이 인플레 요인에 의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끔 환경이 바뀌어졌습니다. 모든 경영인들은 이점에 유념하여 무리한 시설확장이나 문어발식 영토확장은 지양해야 할 것이며 많은 기업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호그룹도 회장 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이 그러한 방향으로 기업을 운영해 나갈 것입니다. 재기를 위해 모든 금호인이 합심단결해 나갈것입니다. 사무 자동화, 에너지 절약과 사원교육에 대한 투자확대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 >1984년 7월 11일, 금호그룹 2대 회장 취임식 직후 그룹 비전에 관한 인터뷰 中. >'''"경영효율성을 위해 계열사를 통합관리할 수 있는 지주회사체제로 가야 합니다."''' >----- >1972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당시 부친 [[박인천]] 회장에게 지주회사 설립 건의를 하면서. 금호그룹체제 출범을 알리는 신호탄이였다고 회자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