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영석 (문단 편집) == 여담 == [[파일:external/www.campuslife.co.kr/img_427_1.jpg]] 상단부에 있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부조의 제막식 사진.[*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에도 박물관을 들어가기 전 1층에 있다.] 이 부조는 박영석이 살아있을 당시에 제작된 것이라,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도서관 개축 기념 겸해서 붙여놓은 것이다. 그러던 것이 실종사고 이후로는 동악인들의 성지 비슷한 곳이 되었다. [[허영만]]과 매우 친해서 허영만 만화 [[식객(만화)|식객]]이나 부자사전에서도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허영만과 친구들이 추진한 바다 여행을 그린 책자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2010)에서도 나왔는데 이 책에선 8천미터 산도 여러번 자유롭게 오고간 자신이 바다에서 배멀미하던 것에 기겁하던 이야기를 담기도 했다. 허영만과 함께 한 힐링 캠핑 -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에도 일행의 한 명으로 나오며, 허영만 원작의 영화 [[타짜(영화)]]에도 허영만 본인과 함께 카메오로 출연했다. 그만큼 허영만과 형님아우하며 친하게 지냈기에 그의 실종 및 사망 보도에 허영만이 직접 실종 장소를 찾았고, 끝내 수색에 실패하자 안타까워하며 명복을 빌었다. 식객(만화) 복어 편에서는 허영만과 박영석이 복어를 먹다가 '히말라야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파주에서 복어 먹다가 죽었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웃을 일'이라고 농담을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이 대사에 담겨진 '산사나이는 산에서 죽어야지 제대로지~'란 느낌으로 박영석이 안나푸르나에서 삶을 마감한 것. 선배인 [[엄홍길]]도 명복을 빌면서 "산악인으로서 언젠가 맞이할 일이자 각오할 일[* [[엄홍길]] 문서에 나와 있듯이 그도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음을 알 수 있다. 아예 한국을 나갈 때 유서를 쓰고 간다고 할 정도.]이지만 어린 녀석이 먼저 가다니..."라고 회고했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8268|등산업계의 무리한 마케팅 경영이 죽게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기사 속에서 인터뷰의 당사자로 나오는 박기성 산악평론클럽 대표는 기사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모교인 [[http://www.dongak.or.kr/new/community/community.php|동국대학교 산악부 홈페이지]]에 '기사로 심려를 끼쳐드린 사람이 동국산악회 선후배들께 사죄합니다'라는 사과문을 게재하였다.[* 자유게시판에서 글쓴이 박기성으로 검색하면 나온다.] 사과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본인은 히말라야 거벽등반 경험이 없기 때문에, 현지 상황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단지 친하게 지내는 산악계 후배가 [[미디어오늘]]과 이번 참사에 관한 인터뷰를 한다기에 동행을 했을 뿐인데, 정작 '''기사에서는 메인 인터뷰이였던 후배 산악인은 유령처럼 사라졌고 <미디어오늘> 기자는 "들은 대로 썼을 뿐"이라 하니 혼자서 덤터기를 쓰는 처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기사가 나가기 전에 미리 보여달라는 요구를 하였으나[* 사실 기사가 나가기 전에 미리 보여달라는 요구를 하면 들어주는 기자는 거의 없다. 인터뷰 후에 다시 유선상으로 팩트체크를 하면 모를까. 사전검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끝내 보여주지 않았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을 기회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들어있다. 기사의 내용 자체는 '''기업체와 언론의 이벤트 마케팅에 휘둘리는 산악계 현실에 대한 비판'''[* 이전에도 [[오은선]]과 [[고미영]]의 여성 세계 최초 14좌 완봉 경쟁이 있었는데, 블랙야크 대 코오롱의 스폰서 대결이 과열되면서 9년 동안 3개봉을 등정하던 것을 1년에 4개봉씩 등정하는 오버페이스를 벌이게 되었다. 결국 오은선은 [[칸첸중가]] 미등정 논란으로 산악계에서 생매장당하고, 고미영 씨는 추락사하자 해당 기사와 똑같은 내용의 비판이 산악계 내외에서 쏟아져 나왔다.]이지만, 과정은 상당히 부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8월 박영석의 차남인 박성민씨가 포함된 수색대가 안나푸르나로 출발하였으나, 끝내 시신을 찾지 못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718529&plink=ORI&cooper=NAVER|#]] 2021년 7월, 1999년에 박영석과 함께 등반하다가 실종된 [[허승관]] 산악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554149?sid=100|#]]. [[분류:대한민국의 탐험가]][[분류:대한민국의 등산가]][[분류:1963년 출생]][[분류:2011년 사망]][[분류:오산고등학교(서울) 출신]][[분류:동국대학교 출신]][[분류:동국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실종된 인물]][[분류:등산사고로 죽은 인물]][[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객사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