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용만(기업인) (문단 편집) == 생애 == 1955년, [[서울특별시]]에서 연강 [[박두병]]의 5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45세에 낳은 늦둥이다. 적모 명계춘의 친아들은 아니고 사생아지만 법적으로는 친모가 아닌 명계춘의 아들로 되어있다. 장조카인 [[박정원]] 회장과도 7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73학번)를 졸업하고 [[한국외환은행]]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유학하여 [[보스턴 대학교]]에서 MBA를 마쳤다. 1982년 [[두산건설]]에 입사했다. 1995년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두산그룹이 소비재 중심에서 중공업 위주로 탈바꿈하는 것을 주도했다. 이후 주식회사 두산 대표이사 부사장, 사장을 거쳐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을 맡다가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얼리어답터이자 [[http://twitter.com/Solarplant|직접 돌리는 트위터]]도 가지고 있다. 기업인의 [[SNS]] 활용의 가장 좋은 예로 꼽히는데, 트위터 사용자들과의 쌍방향 소통에 주력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aNOPJfqEoI|SBS스페셜 '출세 만세' 시리즈 중 제4부를 거의 혼자서 독식하는 위엄]]. 전편을 구해서 보면 사내 메신저로 소통하는 모습이 나온다. 다음날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는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두산 입사를 희망하는 학생에게는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늦은 시간에 배고프다며 사모님 몰래 총각김치에 밥을 먹으려다 김치를 흘리고는 사모님께 혼났다는 이야기까지 트위터에 쓸 정도로 솔직 털털한 매력을 보인다. 반면 일반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키배 거리가 되는 사안의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개입을 자제한다. 대기업 CEO로서는 드물게도 소통을 중요시 여겨 대학에서 직접 채용 설명회에 참석하는 편이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이전까지는 채용 인지도 100위권 밖에 있던 두산중공업을 2000년대 후반에는 '''5위'''까지 끌어올린 장본인.[* 이 즈음에는 두산그룹이 속칭 '왕자의 난'으로 언론사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대외 이미지가 매우 나빴다. 그러던 것이 박용만 회장 체제 이후로 SNS 소통이 부각되며 이미지 쇄신에 성공하게 된다. 경영자로서의 수완이 돋보이는 대목. 지금은 두산 경영진 하면 바로 트위터와 아이폰부터 번쩍 떠올리게 된다.] [[SBS 스페셜]] 방송에 직접 출연하여 재벌 회장의 일상 생활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기도 했다. 상당히 보기 힘든 다큐다.[* 재벌 회장들은 일상 생활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크게 꺼리는데다 그 어떤 언론사를 막론하고 저런 재벌 회장을 직접 취재하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당시 박용만 회장이 소통을 강조하며 스스로 방송에 나오고자 했기에 가능했던 방송분.] 2013년, [[손경식]] 회장이 [[CJ그룹#s-12.4|말 못할 사정]]으로 용퇴하면서 공석이 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추대되었다. 2018년 9월에 열리는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에 경제인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했다. 2020년 9월 21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및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합쳐 '공정경제 3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주요 내용은 △다중대표 소송제도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상법 개정안)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자산 5조원 이상 복합금융그룹 중 [[금융지주회사]], 국책은행 등을 뺀 금융그룹을 감독 대상으로 지정(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이 있다. [[https://the300.mt.co.kr/newsView.html?no=2020092215297693863|#]]]과 관련해 "경제가 정치의 도구냐", "기업 관련 법안인데, 기업들 의견은 철저히 무시하는 게 맞는 일인가" 등의 발언으로 국회의 일방적인 추진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 제정 과정에서 경제계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반대를 표하지는 않았고, 합리적인 대안과 부작용에 대해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0092140291|#]] 2021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임기를 마치고 [[최태원]] 회장에게 이임했다. 2021년 11월 10일 두산그룹의 모든 자리에서 사임했다. 박 회장의 아들인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두산중공업 상무 역시 그룹 임원직에서 물러났다. 2022년 1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만나 경제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른바 만문명답이 그것이다. 2022년 2월 14일 두산그룹을 떠난 후 '[[벨스트리트 파트너스]](Bell Street Partners)’라는 이름의 컨설팅 회사를 세운 사실이 알려졌다. 대표 업무집행자로 이름을 올렸으며, 박 전 회장의 차남 박재원 전 두산중공업 상무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3월 23일,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