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용호(축구) (문단 편집) === [[안양 LG 치타스]] / [[FC 서울]] === [[파일:서울 박용호.jpg]] 박용호는 부평고 졸업 후 최태욱과 함께 2000년 지역 연고 구단이던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했다. 초기에는 청소년 대표팀에 너무 자주 불려다니는 탓에 소속팀에서는 오히려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도 신인 시절 팀의 K-리그 우승에 일조했고, 이후에도 안양에서 20경기 이상 출전하며 주전급 선수로 활약했다. 한편 같이 입단한 최태욱은 더 많은 출전 기회와 원하는 포지션에서의 출장을 위해 새로 창단한 고향 팀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지만, 박용호는 팀에 남아 연고이전을 한 [[FC 서울]]이라는 이름의 팀에서도 활약했다. 하지만 서울 이전 첫 시즌에는 올림픽 대표팀 차출과 부상이 겹치며 5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5년 [[광주 상무 불사조]]에 입대해 2006년까지 2년 동안 거의 70경기를 소화하며 데뷔 이래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2007 시즌을 앞두고 서울에 복귀했으며, 새로 출범한 [[세뇰 귀네슈]] 감독 체제에서 국가대표 [[김치곤]], [[김진규(1985)|김진규]] 주전 센터백 라인의 백업 역할을 했다. 2010 시즌을 앞두고 주장 김치곤이 울산으로 이적하자 [[넬로 빙가다]] 체제에서 주장에 선임됐고 주전으로 주전급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K-리그, 리그컵 더블'''에 기여했다. 2011년에도 주장직을 연임했으며 김진규마저 떠난 팀에 수비진을 이끌었으며 [[황보관]]-[[최용수]]로 감독이 바뀌는 혼란한 시기에 주장으로서 팀을 잘 이끌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주장으로 역임한 2년 동안 김치곤, 김진규가 차례로 팀을 떠났음에도 [[아디(축구인)|아디]]에게 밀리거나 신인 [[김동우(축구선수)|김동우]]에게 밀리는 등 서울에서 제대로 주전으로 활약한 시즌이 한 시즌도 없다고 봐도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