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은식 (문단 편집) == 기타 == * 저서로는 [[고종(대한제국)|고종]] 즉위부터 [[105인 사건]]까지의 역사를 다룬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사를 다룬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있으며, 상술된 안중근전, 동명성왕실기, 발해태조건국지 등 매우 많은 저서가 있다. * 복장도 항상 검소하고 소탈하였고 독립에 대한 의지가 대쪽같은 고결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말로 대인배라는 호칭에 적합한 아량을 갖춘 인격자여서 사람들을 대함에 인간미까지 묻어나던 사람이었기에 많은 독립운동가들[* 특히 [[노백린]] 장군이 박은식을 가장 따르고 존경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박은식 역시 대통령이 되었을때 노백린에게 가장 중요한 자리를 임명받도록 하였다. 또한 박은식과 함께 활동하였던 이승교의 아들 [[이동휘]]도 박은식이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박은식이 대통령제 폐지를 주장할때 이동휘가 앞장섰었는데, 폐지는 성공했으나 이후 얼마 안되어 공산주의자라는 견제에서 그를 보호해주던 박은식과 노백린이 1년 안에 모두 사망하자, 공산주의자라고 그를 싫어하던 김구와 이승만 등에 의해 축출되고 소련으로 갔다. [[강우규]]도 큰일을 결정함에 있어 항상 박은식을 가장 크게 신뢰하였다. 박은식이 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몇달만에 순국했을 만큼 이전부터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던 상태에서도 대통령으로 뽑힌 건, 그만한 업적과 능력 탓이지 괜히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저서 한국통사 역시 현재까지도 한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구한말 자료 중 하나이며 여전히 많은 역사학자들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책이다.]이 그를 어른으로 모시며 존경하였다. 한 일화로 임시정부 [[대통령]] 시절 경비가 된지 얼마 안된 사람이 박은식 대통령을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가던 병든 조선인 [[노인]] 취급을 하며 그를 멈춰 세웠다. 평생 가진 돈은 모두 항상 자신의 독립운동조직에 쓰거나 주변의 어려운 독립운동가들에게 나눠주었기에, 너무나 검소한 나머지 옷차림이 허름했기 때문에 도저히 정치인으로 보이지 않았고, 이미 호흡기질환[* 사망원인이 인후염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병원치료를 자주 안해서 병원 진료기록이 남은게 그런거 외에는 별로 없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사망 전까지 드물지만 각혈도 했다는 증언이 있는 등 증상의 종류상 노환에 겹쳐 폐병에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대통령 재임기간이 6개월밖에 안된 건 이미 건강이 꽤 좋지 않았던 것 때문이고, 그렇기에 대통령제 폐지 외에도 개혁할게 많았으나 빨리 그만두어야 했기에 조금 미진하게 끝낼 수 밖에 없었다. ]이 있었기에 안색도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은식은 화를 내지 않고 안에 있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경비가 묵살했는데, 조금 뒤 소란한 소리를 듣고 나온 정부 측 인물이 "몸도 불편하신 대통령 각하를 세워두다니 각하께 무슨 짓이냐"며 그를 크게 혼내려 했고, 박은식 대통령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혼내지 말라"며 이를 저지하며 경비를 격려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 사진 기록들이 제법 존재하는 여타 임시정부 인사들과는 다르게 박은식이 등장하는 존영 자료들은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박은식이 등장하는 사진도 위 프로필에 있는 사진과 이승만 환영회 때에 찍힌 사진 두장이 현재 전해지는 모습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