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재옥 (문단 편집) == 생애 == ||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10516192105469.jpg]] || || 아버지 [[박정희]]의 초상화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박재옥과 남편 [[한병기]] || || [[파일:external/i3.ruliweb.com/15b0892581f46a26.jpg]] || || [[박지만]]의 [[결혼식]]에서의 사진으로, 왼쪽에서 2번째 인물이다.[* 왼쪽부터 [[한병기]](1931년), 박재옥(1937년), [[박근혜]](1952년), [[박지만]](1958년), [[서향희]](1974년), [[박근령]](1954년)이다. 이복 [[올케]]인 서향희(1974년)와는 어머니와 딸 수준 이상으로 나이가 차이 나고, 실제 박재옥의 친자식보다 서향희가 훨씬 어리다.] || 박정희와 김호남이 결혼한 이듬해인 1937년 11월 24일(음력 10월 22일)에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둘 다 살아있었는데도 박재옥은 친척집을 전전했다. 아버지인 박정희는 육영수와 [[재혼]]했고, 어머니인 [[김호남]]도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박재옥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도 재혼을 해서 아들을 1명 두었으나 곧 다시 [[이혼]]했기 때문이다. 중학생 무렵에는 사촌오빠인 박재석에게 얹혀 살았고, 고등학생 때에는 사촌언니 [[박영옥]]ㆍ[[김종필]] 부부의 신혼집에 얹혀살면서 [[동덕여자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다가 이 무렵 [[육영수]]가 김종필의 집을 찾아와 박재옥을 [[노량진]]의 집으로 데려갔는데, 박재옥 본인의 증언에 의하면 "매를 맞더라도 아버지와 함께 살겠다"며 선뜻 새어머니를 따라나섰다고 한다. 사실 말이 새어머니지 두 사람은 겨우 12살 차다. 이 때문에 "어머니라고 부르기 쉽지 않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820600|참조]]. 그래서 박재옥은 육영수 여사를 '어머니'보다는 주로 '육 여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박정희도 육영수도 박재옥이 [[장녀]]라고 공공연히 밝히지는 않았고, 박재옥 본인도 일반인마냥 조용히 살았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박재옥은 조용히 2층 방으로 올라가곤 했고, 주변 사람들도 나이 차가 박근혜보다(15세 연하) 육영수와(12세 연상) 더 적은 박재옥을 육영수의 친척동생인 줄 알았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육영수와 외모가 닮아서 그랬기도 했다. 육영수는 미혼인 [[남자]] 장교들이 집을 방문하면, 박재옥에 대해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괜찮은 아가씨"라고 소개하며 넌지시 반응을 살폈다고 한다. 가난[* 다들 알다시피 국가 경제가 워낙 어려워서, 집안에서 가장 똑똑한 아들 또는 [[장남]] 1명만 땅과 소를 팔아 [[대학]]에 보내고, 나머지 자녀들은 집안일을 거들거나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일이 많았다.]과 [[남존여비]] 풍토 때문에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나쁘게 보는 분위기가 강해서[* 그리 형편이 어렵지 않은 집에서도 [[딸]]에게는 공부를 많이 시키지 않았다. 당장 육영수부터가 엄청난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 육종관이 "여자가 대학 갈 필요 뭐 있겠느냐? [[고등학교]]까지만 나와도 충분히 많이 배운 거다."라고 해서 배화고등여학교(현 [[배화여자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한 사람이다.], 여성은 고등학교는커녕 중학교 진학률도 매우 낮았던 시절이라, 당시 박재옥은 굉장한 고학력의 신여성이었다. 이후 박재옥은 [[동덕여자대학교]] [[가정학과]]까지 진학했다. 박재옥은 아버지 박정희의 부관이었던 한병기와 1958년에 결혼했다. 박정희가 예비 사윗감을 집에 데려오는 날이면, 육영수가 직접 돼지족발을 삶아 대접하였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한병기ㆍ박재옥 부부는 육영수의 친정을 방문하여 함께 가족사진을 찍는 등, [[사생활]]에서는 가족 대우를 받았다. [[파일:2949993309_iQE8Gfne_08.jpg|width=917]] ||아버지 박정희와 여동생 [[박근령]], 박재옥 본인, 외할머니 이경령, 외사촌동생 홍소자, 남편 한병기, 어머니 [[육영수]], 여동생 [[박근혜]], [[이모]] [[육예수]].||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기 이전에 맏딸 박재옥은 이미 [[결혼]]하여 [[유부녀]]가 된 상태여서,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청와대에서 살지 않았다. 때문에 청와대 내 박정희의 가족들에 대해 많은 취재를 하던 시절에도 주목받은 적이 없었다. 당시 [[청와대]] 측에서도 영부인인 [[육영수]]가 낳지 않은 자식이 주목받는 일을 막기 위해 박재옥의 존재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대선주자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의원]] 및 기초자치단체장/[[광역자치단체장]] 후보마저도 [[이혼]] 경력이 있으면 [[사생활]]에 대한 보도로 대중 이미지에서 마이너스 되는 일이 많고, [[혼외자]] 논란 같은 일들과 별개로 공식적인 이혼 경력이 있는 대통령마저 박정희를 제외하면 하나도 없는 곳이 한국 정계이다.[* 사실 [[이승만]]이 있어서 아주 하나도 없지는 않지만, 이승만의 경우에는 1949년에 "__전처__가 동의 없이 이승만 슬하로 입적시킨 호적상 아들과 이승만 사이에 친족관계가 부존재함을 확인한다."라는 기묘한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조선시대에 혼인하였던 아내 박승선을 이혼소송도 없이 "전처"로 규정, 일방적으로 소박맞힌 바 있다(다만, 박승선이 남편과의 동의도 없이 [[양아들]]을 들인 것은 사실이다.). 이승만은 박승선과의 사이에 1남을 두었으나, 이 아이는 10살 되던 해에 아버지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그 해 병으로 [[요절]]했고, [[조선]]에 남은 박승선은 홀로 된 적적함에 양아들을 들여 장성할 때까지 키웠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2번 결혼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윤보선]]과 [[김대중]]도 있지만, 이들의 경우는 이혼이나 [[불륜]]([[간통]])이 아니라 [[사별]] 이후에 [[재혼]]한 케이스이다.] 물론 박재옥의 친모인 김호남은 이혼했더라도 엄연히 박정희와 정식으로 결혼했던 아내였고, 박재옥도 [[사생아]]가 아니라 엄연히 박정희의 [[적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당시는 [[21세기]] 현대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보수적이어서 대통령이 이미 한참 전에 [[이혼]]했다는[* 이혼 시점이 1950년 [[겨울]]. 즉, '''[[전쟁]] 중'''이었다.] 사실이 주목되는 것을 꺼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시 대중들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고 한다. 20대 중반에 결혼 안 하면 [[노총각]]/[[노처녀]] 소리 듣던 당시 기준으로, 부모 - 자식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 어쨋든 박재옥은 이복동생들보다 훨씬 덜 알려졌기 때문에, [[박근혜]]를 [[박정희]]의 [[장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실례로 [[탄핵]] 직후 박근혜의 인생을 재조명한 [[조선일보]], [[뉴데일리]] 등의 기사에서도 박정희의 첫딸이라고 했다. 당연히 이는 '''명백한 오보'''로, 박재옥은 절대로 혼외자식이 아니라 공식적인 결혼 관계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즉, 법적으로든 실제로든 박재옥이 진짜 장녀이고, 박근혜는 [[차녀]]이다. 박재옥은 이복동생들보다 [[넘사벽]]으로 많은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육영수]]의 장녀이자 바로 밑의 동생인 박근혜보다도 15세나 연상이다.] 불구하고 큰 말썽 없이 무난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년 시절부터 ''''남다른 대우''''를 받은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등 이복동생들과 달리, 박재옥은 남편 [[한병기]]와 결혼하기 전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김호남]]의 이혼으로 인해 가정해체를 겪고 유년 시절부터 여러 친척집들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가정생활을 거쳐오며 성장했던 인물이라, 이복동생들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628205#cb|※ 박재옥이 언론사 기자에게 구술한 내용 및 주변 사람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기사]] [[2020년]] 7월 8일,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015890?cds=news_edit|#]] 공교롭게도 다음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살]]을 하고 그 다음날에는 [[백선엽]] 장군이 사망하는 등 정계 유명 인사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일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