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재옥 (문단 편집) == 기타 == 남편 [[한병기]](1931 ~ 2017)는 [[대한민국 육군]]의 [[영어]] [[통역장교]]로 [[제5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가, 당시 [[사단장]]이던 [[박정희]] [[장군]]의 [[전속부관]]이 되었다. 군 전역 후에는 [[제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과 [[캐나다]], UN 대사로 근무했다. 이 외에도 박재옥의 사촌언니 박영옥의 남편인 [[김종필]] 곁에서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병기와 박재옥의 자녀들로는 아들 한태준(전 [[중앙대학교]] 교수)·한태현(설악케이블카 회장), 딸 한유진(대유몽베르CC 고문), 사위 박영우(대유위니아그룹 회장)씨가 있다. [[박정희]]는 1936년에 [[김호남]]과 [[결혼]]했는데, 이게 스스로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으로 억지로 한 결혼이었던 탓에 아내에게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래서 1940년대 후반에는 [[이현란]]과 불륜관계로 동거하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가 김호남과 이혼하면서 박재옥은 한병기와 결혼하기 전까지 여러 친적집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한다. 친/외가는 물론이고 사촌오빠 박재석,[*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아들.] 사촌언니 박영옥[* 아버지 박정희의 셋째 형 [[박상희]]의 큰딸. 이 여인 역시 박재옥과 더불어 박정희의 일가족들 중 비판을 덜 받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과 사촌형부 [[김종필]] 등. [[계모]]인 [[육영수]]와도 같이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대중들에게는 후처인 [[육영수]], 그리고 육영수 소생들인 [[박근혜]]&[[박근령]]&[[박지만]] 3남매만 알려져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김호남과 박재옥 모녀는 남의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살았다. 그리고 박재옥 [[본인]]은 어떤 감투나 일체의 공직에도 나서지도 않았다. 아버지 사후 정치계에 들어간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되었던 이복여동생 박근혜와 달리 [[정치]]와도 완전히 거리를 뒀다. 다만, 어쨌거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자녀라서 그런지 박재옥도 나름대로 경제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았다. [[박정희]]가 1969년, [[사위]] [[한병기]] 전 의원에게 [[케이블카]]에 대한 국가 사업권을 준 뒤, 1971년 이후부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계속 독점 운영하고 있다. 일명 '권금성 케이블카'가 이 것이다. 덕분에 경제적인 면에서는 불편함 없이 살았다고. 설악케이블카는 박재옥 - 한병기 부부의 [[차남]] 한태현이 물려받아 현재까지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다만 이렇게 보면 뭔가 대단한 특권을 누리고 산 것 같지만 정황상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해줄테니 조용히 살아라."라는 의미에 가까웠고, 박재옥은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박근혜]], [[박근령]]과 달리 이복동생 [[박지만]], 사촌동생 [[박준홍]] 등과 함께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다. [[드라마]]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에는 증인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한병기 - 박재옥 부부도 굳이 위에 언급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등에 대한 특혜 의혹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구설수]]는 특별히 없다. 언론에서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박재옥에 대해선 박근혜 친인척들의 행적을 파헤치면서 위의 케이블카 사업 특혜의 의혹 등에 대해 몇 차례 가볍게 다룬 것 외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다. 그 외에 박재옥의 사위인 박영우 회장의 [[대유그룹]]의 성장세가 굉장히 빨라서 [[김어준]]이 [[이명박]]의 [[다스 실소유주 논란|다스 논란]]과 [[http://www.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11&seq_800=10248913|비교한 사례가 있었으나]], 다스 논란과는 달리 이 역시 흐지부지 묻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도 박재옥의 발언이나 행적이 언론에 포착된 적은 없었으며, 2017년 4월에 남편 [[한병기]]가 사망했을 때도 대부분의 언론에서 단신으로 '전직 관료 겸 사업가인 한병기 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라고 간단하게 언급한 게 전부였다. 박근혜와의 연관성도 언론에선 '한병기 씨는 박근혜의 이복형부이자 박정희의 맏사위이다'라고 간단한 이력만을 설명했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사건|이복동생 박근혜가 구속 수감]]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박근혜·최순실·신동빈|재판을 받을 때도]] 박재옥은 이렇다 할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한편 박재옥은 다른 공식 행사는 물론이고 [[박정희]] 일가와 직접 관련된 대외 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저 이복남동생인 [[박지만]]의 [[결혼식]]에 참석한 게 전부다. 다만, 박정희/[[육영수]]의 추모 행사에는 가끔 참석하던 모습을 감안하면 생전의 박재옥은 이복남매들과 교류는 활발히 하지는 않은 대신 조금씩이나마 인연의 끈 정도는 유지하는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령]]의 회고에 따르면, 박재옥이 평생 가장 가깝게 지낸 친척은 사촌언니이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아내인 박영옥이다. 아무래도 박근혜 등 이복동생과 비교했을때 나이 차이가 훨씬 덜 나고[* 박재옥은 박근혜보다 15살 많고, 박영옥보다는 8살 어리다.], 부모의 이혼 이후 김종필-박영옥 부부의 집에서 같이 살기도 했으니 이복동생들보다 훨씬 돈독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남편인 한병기 전 캐나다 대사도 김종필과 같이 정치활동을 하고, [[국민의 정부]]에서 김종필이 다시 국무총리가 되자 국무총리실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박재옥의 장례식에 대해서 정부에서 먼저 박근혜에게 조문 사유로 형 집행정지를 권유했으나, 박근혜는 거절했다. 다만 이복 남동생 박지만은 가족들과 함께 조문 후 빈소를 지켰으며, 장례식에도 참석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20468|관련 기사]] [각주] [[분류:1937년 출생]][[분류:2020년 사망]][[분류:한국의 대통령 자녀]][[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고령 박씨]][[분류:박정희 가문]][[분류:동덕여자고등학교 출신]][[분류:동덕여자대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