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재홍(1941) (문단 편집) == 생애 == [[파일:external/ilyo.co.kr/1316397016425351.jpg]] 1941년 3월 25일,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정희]]의 큰형 박동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백수]]로 있다가 [[박태준]]의 도움으로 [[포스코|포항종합제철]]의 중간간부를 역임하다가, 동양철관(주)의 사장,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8년 아버지 박동희가 향년 73세로 사망했다. 1974년 수도관 연쇄 폭발로 물의를 빚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382009|#]] 1979년 3월 3일 조세의 날때 대통령 표장을 받았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504611|#]]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칠곡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현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정의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김현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1년 10월 16일 민정당 간부에 임명되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582816|#]] 1981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2주기때 [[전두환]],[[최규하]]와 함께 조화를 보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583931|#]] 1982년 9월 15일 [[박근령]]의 결혼식에 참가하였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653929|#]] 1983년 10월 26일 여러 친척,주요인사들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 제사에 참가하였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717923|#]]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때 숙부 [[박상희]]의 아들, 즉 사촌 동생인 [[박준홍]]도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함에 따라 박정희의 [[조카]] 두 명이 같은 선거구에서 대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담으로 [[박영옥]]은 동생인 [[박준홍]]을 지원해주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231280|#]]][[https://www.joongang.co.kr/article/2232823|#]]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구미시 지역구 공천이 [[박세직]]에게 밀려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통위원장을,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초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박세직]]에게 공천을 빼앗기자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준홍 대신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박세직]]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말 [[박정희]] 대통령 17주기 추모제의 행사를 마련하였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19961026/7203031/1|#]] 1997년 7월 9일 [[이수성(정치인)|이수성]],[[현경대]] 의원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19970709/7268108/1|#]] 이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다시 복당한 뒤 [[이한동]]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의 최측근이 되었다가 1998년 6월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동서갈등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2000년 16대 총선때 경북 구미의 국회의원 후보로 거론 되었으나 출마하지는 않았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00131/7504783/1|#]] 2002년 11월 21일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21121/7884989/1|#]] 2012년 12월 20일 사촌인 [[박근혜]]가 당선되며 관심을 받았으나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21220/51738093/3|#]] 정계를 은퇴한 뒤에는 새마을문고본부이사를 맡았다. 최근 건강상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거의 매년 갔던 박정희 대통령 추모사에 가지 안는다. 2017년 이후 행적이 불명확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