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현 (문단 편집) == 데뷔 전 ==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성가대]] 활동을 했다. 자연스럽게 [[미국]] 본토의 가스펠과 [[CCM(음악)|CCM]]을 접할 수 있게 된 상황. 박정현 특유의 소울틱한 R&B 창법의 기틀은 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89년 2월, 다우니 지역 장기자랑 대회인 <다우니 웨이 아우터 브로드 웨이 탤런트 콘테스트>에서 보컬 부분 대상을 탔다. 이후 교민들 사이에서 꾸준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여러 콘테스트에서 상위 입상하고[* 이 당시 [[LA]]에 거주했던 [[김조한]]이 말하길, 한인 사회 사이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시카고]]나 [[뉴욕]]으로 원정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3년에는 CCM 앨범을 정식으로 취입하여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흔히 박정현 가스펠이라고 알려진 노래들이 바로 이 앨범 수록곡들. 참고로 이 앨범은 2001년에 국내에 발매되었다. 이미 가수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1994년,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UCLA [[연극영화과]]에 입학한다. 그렇게 2학년을 마친 뒤 혈혈단신으로 당시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땐 한국에서 가수로의 커리어를 쌓는것 보다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한국어]]도 배울겸 1년만 가수활동을 경험한 후 다시 돌아오겠다는 막연한 계획이었다고 한다. 교포 친구들을 만나도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은 본인과 본인의 형제들 밖에 없어서 힘들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dO3KZau2d8c)]}}}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qRs8HZ-nvpQ)]}}} || ||<-2> '''▲ 1996년 11월 17일 [[열린음악회|{{{#fff 열린음악회}}}]]에서의 첫 방송 데뷔 영상''' || 이 당시에는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억양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편이다. 후술하겠지만 소속사 문제로 정식데뷔는 1998년에 하게되었지만, 방송 데뷔를 한 것은 1996년 열린음악회에서였다. 당시는 영어 본명 ‘리나’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평소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 가수 [[이선희]]에 대한 마음을 담아 데뷔 무대 첫 곡을 이선희의 대표곡인 'J에게'로 결정했다고 한다. 불후의 명곡 이선희 편에도 출연하여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열창하는 등 이선희에 대한 존경심을 표출하였다. 그런데 데뷔를 준비하던 기획사가 하필이면 [[IMF]]를 맞아 파산하는 바람에 데모 CD까지 만들어놓은 상황에서 1집 앨범 자체가 백지화되고 데뷔 일정이 무산되는 어려움을 맞게 된다. 박정현의 회상에 의하면, 이때 미국에 있는 남자친구와도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남자친구와 자신의 친구가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지금은 그 친구를 용서 했고 아직도 연락하는 사이라고 한다.] 한국말도 서툴고 생활비도 없어서[* 한 달에 생활비를 10만원을 썼다고 한다. 이때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무조건 연습실에 나갔다고 한다. 그러면 밥 시켜 먹을 때 무임승차를 할 수 있었다고.]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1998년 데뷔까지 2년간은 가수지망생 박정현에게 큰 시련의 시간들이었는데, [[미국]]에서 가져온 키보드 하나만 가지고 1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끊임없이 노래를 지으며 외로움을 달래야 했다고 한다. 이때 작곡한 노래 중 하나가 2집 수록곡 "Ordinary"이다. 가사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 같은 사람이 과연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라는 자기 성찰의 내용. [[https://youtu.be/Pg9icKX4gaE?feature=shared|들어보자]]. 2013년 안산 록밸리 페스티벌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직접 노래를 쓴 배경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당시 백지화되었던 1집 앨범은 '박정현 Forever' 라는 앨범[* 앨범의 원제도 Forever 이었다.] 으로 재발매되어 빛을 보게 되었는데, 사실은 파산 이후 판권을 인수한 새 회사에서 가수 동의없이 멋대로 발매한 앨범이다. 거기다 아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말 그대로 데모 CD인지라, 발매하지 않을 계획이었던 곡이나 다소 미흡한 곡들도 몽땅 뭉뚱그려 발매한 앨범이라 팬들에게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었다.[* 예를 들면 수록곡인 ‘오해야’는 가사집에서는 랩 피쳐링 파트를 찾아볼 수 있지만 정작 곡에는 해당 부분이 누락되어있다. 홍보반 버전에는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부터 노래 실력 하나는 절륜했던지라 데뷔 준비 시절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프리 상태에서 다행히도 [[윤종신]]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 전 1997년 2월에 (1997.2.1 ~ 2.24 사이 주말공연으로 추정) 김장훈 만회 콘서트의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 [[김장훈]]의 1만번째 공연이라는 뜻의 만회 콘서트가 아니라, 약 한 달 전 3집을 발표하며라는 직전 공연에서 김장훈 본인의 목소리 컨디션도 개판이었고 공연 구성이 엉망이었다며, 그것을 '만회' 하려는 의미의 만회 콘서트 였다. 김장훈 역시 [[유희열]]과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 패널로 나오며 본인의 음악을 알리며 팬을 모으던 중이었고 '나와 같다면' 으로 전국구 스타로 뜨기 전이라, 그의 공연 역시 정말 소극장 공연이었다.] 당시는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몰라 종이에 써온 자신의 소개말 들을 읽으며 자신을 소개 했다고 한다. 또한 여기서 아직 발매하기 전의 '나의 하루'를 부르기도 했다. 1997년 3월에는 [[김민우(가수)|김민우]]의 4집 앨범 '후애'의 'December(32)'라는 트랙에 듀엣을 참여했다. 여담으로 이 곡의 작사가가 [[P.S. I Love You]]의 작사가인 하해룡 씨이다. 앨범작업을 같이 하며 이 앨범에도 참여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