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현 (문단 편집) === 1998년~ 2002년 첫 번째 전성기[* 본 문서에 기재된 '전성기'는 박정현이 직접 언급한 본인이 생각하는 '터닝포인트'를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꿈에> ===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phDi4Mq4c5U)]}}} || || '''▲ 1998년 영화 [[뮬란]]의 엔딩곡인 "[[Reflection]] (내 안의 나를)"''' || 이윽고 1998년 2월 1일, 기존 앨범의 타이틀곡이 될 예정이었던 '첫 눈'을 다시 만든 'P.S. I Love You'를 수록한 1집 '[[Piece(음반)|Piece]]'를 정식 발표하면서 데뷔하게 되었으며, [[윤종신]]이 프로듀스한 타이틀곡 '나의 하루'가 라디오 등을 통해 흐르면서 인지도를 급격히 높이게 된다. 후속곡 '[[P.S. I Love You]]' 역시 히트하면서 대한민국 대중가수로 입지를 굳혀갔다. [[https://youtu.be/EKFXdupBFIo|보정 하나 없던 당시 음향으로도]] 어마어마한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1999년 3월 3일 2집 '[[A Second Helping]]'을 발매하였다. 타이틀 곡은 '[[몽중인(노래)|몽중인]]'인데 생각보다 후속곡인 '편지할게요'를 타이틀 곡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결정적으로 뮤직 비디오가 ‘몽중인’에만 존재한다. 실제로 어두운 분위기의 '몽중인'보다 '편지할게요'가 더 인기가 많아, 가요 프로그램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다만 이 당시의 타이틀 곡 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아 둘 필요가 있는데, 앨범을 발매한 후 지금처럼 넷상 프로모션이 아닌 TV 를 위주로 하는 프로모션을 했기 때문에 음악 방송에서 부르는 노래가 곧 타이틀 곡인 셈이었으며 게다가 박정현은 이에 대해 '두 곡 다 타이틀 곡'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000년 10월 28일 3집 '[[Naturally]]'를 발매하였다. 타이틀 곡은 'You Mean Everything To Me'. 원래는 [[유희열]]이 작곡한 '아무말도, 아무것도'가 타이틀곡으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러닝타임이 6분에 이르는 관계로 교체되었다. 음악 프로에서는 한동안 1등을 하지 못했다가[* 물론 그렇다고 묻힌 건 아니고, 1~4집 대부분 30만 장 이상 팔려나가면서 이미 실력파 가수의 한 축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드디어 2002년 6월 15일 발매한 정석원이 프로듀싱한 4집 [[Op.4]]의 타이틀 곡 "[[꿈에(박정현)|꿈에]]"가 대박을 치면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02년 8월 17일 [[MBC]] [[음악캠프]])[* 그 전에는 2집 타이틀 "편지할게요"가 4위로 최고 기록이었으며 그 외에도 1집 후속곡 'P.S. I love you' 가 노래방에서 가창력 검증용으로 사랑을 꽤 받았다. 3집 타이틀 'You mean everything to me'도 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상당했다. 참고로 이날 이 무대는 [[박명수]]의 오동도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유명하며 이 날 1위 후보였던 [[성시경]]과 5표 차 접전을 벌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시점에 [[YB]]가 부른 응원가 때문에 약간 묻혀버린 감도 있다. 월드컵 분위기가 한참 달아오를 때라 길거리에 흘러 나온 곡이 하필 그 가수의 곡밖에 없었다. 그래도 쟁쟁한 가수들을 뚫고 1위를 차지한 만큼 본인에겐 제1의 전성기라고 할 만한 시기다. 이 당시는 음원차트 순위나 스트리밍이라는 개념조차 없던때라서 '''TV 음악 프로의 순위가 곧 실제 인기 순위였다.''' 이것은 현재까지 그녀가 TV 음악 프로에서의 받은 최고의 성적이다. 물론 차트 1위곡이 이것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실시간차트 1위는 줄곧 했으며,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가온차트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사실 ‘꿈에’ 이후에 [[일본]]을 위주로 활동했으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을 때는 아이돌 음악이나 미디움템포 발라드가 주류가 된 터라, 그녀의 주력장르인 팝발라드나 R&B가 발붙일 곳이 없어진 것도 있었다. 실제로 박정현도 이런 흐름에 맞추어 7집에서 미디움템포 발라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이하게 4집 활동 당시 Opus Project라는 컨셉하에 1악장부터 4악장까지 4번의 콘서트를 했다. 이 아이디어는 그 프로젝트는 4집의 앨범명이였던 Op.4[* Op.는 클래식 용어로 유명 작품의 번호라는 뜻이다. 즉 작품번호 4번(4번째 앨범)이라는 뜻이다.]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콘서트의 주제가 각각 1악장 Live Storm, 2악장 Adagio, 3악장 Finale 그리고 라이브 앨범이 발매된 후 가진 발매 기념 콘서트 4악장 The Album 콘서트가 그것이다. Live Storm은 클래식의 1악장과 마찬가지로 메인 주제가 나오는 공연 스타일로 평소처럼 신나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강렬한 라이브를, Adagio는 2악장이 슬프고 느린 주제인 만큼 조용하고 어쿠스틱한 편곡을 선보였다.[* 이때가 가장 힘들었던 공연이었다고 한다.] 3장 Finale는 그 주제대로 1악장과 2악장에서 선보였던 음악 패턴을 이 공연에서 들을 수 있으면서도 색다르고 화려하게 꾸민 공연을 했다. 이를 위해서 일본에서 브라스 뮤지션들을 섭외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체조 경기장에서 공연했는데, 무대가 커서 긴장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0IdqahfAx4Q)]}}}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u8S4vEJzG1A)]}}} || || '''▲ 2002년 8월 3일 음악캠프 1위 후보 무대''' || '''▲ 2002년 8월 17일 음악캠프 1등 무대''' || 2002년 [[브라운 아이즈]]와 함께 [[http://knnews.kr/news/articleView.php?idxno=317828|월드컵 대표 가수로도 참여]]했다.[* 당시 [[나얼]]과 박정현, 이 둘의 성량이 워낙에 압도적이었던지라 [[일본]] 방송 출연 당시 이들 볼륨만 조정해서 방송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근거 없는 루머다.] 브라운 아이즈와 일본의 [[CHEMISTRY]], Sowelu와 함께 'Let's get together now' 를 불렀고 2002 월드컵 오피셜 로컬 앨범에 'Let's get together now' 와 함께 하림이 작곡한 'Glorious' 가 수록되었다. 후에 [[무릎팍도사]]에서 밝히길, 이때 자신이 처음으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고 한다. [* 박정현이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던 것이 당시 한국은 지금보다 더 사회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 월드컵 대표 가수들을 파격적으로 선발했는데, 박정현은 데뷔한지 4년된 미국인이었고 브라운 아이즈는 데뷔한지 1년 정도밖에 안된 팀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두 가수의 가창력에 대해서는 신급이라고 다들 인정하지만 당시 지금보다도 훨씬 보수적인 한국이 엄청난 공을 들여 준비했던 월드컵의 대표 가수를 젊고, 거기에 외국인까지 뽑았다는 것은 지금봐도 파격적이다.]당시에 활동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서 복학을 하려다가 이 제안을 듣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미 등록금을 낸 상태였고 환불은 못 받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