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현 (문단 편집) ==== 복귀와 음악적인 성장 ==== 이후 [[대한민국]]으로 리턴하여 2005년 2월에 [[박정현 5집|5집]]과, 2007년 11월에 [[박정현 6집|6집]]을 차례로 발매하였다. 5집의 타이틀 곡 '달'은 기존의 꿈에와 비슷한 오리엔탈 발라드였기 때문에 꿈에 만큼은 아닐지라도 꽤 인기를 끌었다. 6집도 발매 후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성적 자체는 준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돌 시대가 시작되었고, 90년대에 비해 음반시장이 대폭 축소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2002년 만큼의 대국민적 인기를 얻는 폭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한편 이때부터 박정현의 싱어송라이터적인 면모가 십분 발휘 되는데, 특히 6집은 프로듀싱은 물론, 2곡을 제외한 모든 곡을 박정현이 직접 작곡하거나 참여했고, 4곡을 작사한 앨범[* 이 중 2곡은 [[한국어]]로 작사]으로, 특히 팬들 사이에서는 굉장한 명반으로 평가 받는다. 5집 또한 자작곡들과 참여곡들이 비중있게 수록되어 있고 편곡에도 참여했으며, 프로듀싱도 직접 하여서 매우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명반이다.[* 단 황성제와 공동 프로듀싱] 하지만 음악적인 진일보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떨어지는 대중성, 콘서트 위주의 활동방향, 그리고 학업까지 병행하게 되면서 대중들에 대한 노출 빈도는 매우 하락했다. 결국 TV 출연이 심야 음악 프로 정도로만 축소[* 그런데 그 심야음악 프로엔 참 뻔질나게 나갔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출연 횟수는 19번으로 [[성시경]]에 이어 2위이며, 지금은 폐지된 수요예술무대에선 "박정현이 너무 자주 나온다"고 시청자 항의까지 있을 정도였다.]되면서 다소 '꿈에' 때에 비해서 인지도에서 손해를 본 것은 사실이다. 가수이니 만큼 콘서트와 음악 프로 위주로 활동하는 것 자체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인지도 부분을 고려한다면 다소 아쉽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