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종규 (문단 편집) == 여담 == * [[사격]]을 무척 좋아했으며 별명이 "피스톨 박"이었다. 1970년부터 1985년 사망할 때까지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1978년 국제 사격 선수권 대회를 유치했는데 [[한국]]이 최초로 개최한 세계구급 [[스포츠]] 대회이고 이 대회를 위해서 [[태강릉|태릉]] 국제사격장을 만들었다. IOC 위원과 대한사격연맹 회장으로 당시 국제 스포츠계에서 말빨이 통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김운용]]은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나서 국내외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81년 [[1988년 서울 올림픽|서울 올림픽]] 유치에 막후에서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별명이 붙은 까닭이 좀 지저분한 것이, 그가 [[과잉 충성]]때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총]]을 겨누면서 [[안하무인]]으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전라북도]] 현지 시찰을 갔을 때 이춘성 [[전라북도지사|전북도지사]][* 1923~1984. 후일 [[시에라리온]]/[[뉴질랜드]] 대사, [[문공부]]차관 직을 역임했다.]가 박정희에게 담뱃불을 붙였는데 [[라이터를 켜라|라이터가 고물이었는지 불이 높게 치솟아 박정희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박정희가 다치지도 않았고 큰 소동이 없었는데 박종규는 박정희가 안보는 틈을 타서 전북도지사를 골목으로 데려가서 때렸다. 나중에 이춘성 지사가 박정희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 했는데 박정희는 그 말을 듣고 "임자 나한테 몇대 맞은 셈 치세."라고 달래서 유야무야되었다. 물론 이 일이 있은 후 박종규에게 이딴 식으로 할거면 때려 치우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 박정희가 시찰 중에 대구사범 출신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는 무의식적으로 "야 박정희 오랜만이다!"라고 했으며 박정희도 반갑다고 인사했다. 둘이 헤어진 뒤에 박종규가 손을 써서 그 사람을 직장에서 해고되게 [[과잉 충성|만들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박정희를 다시 만나서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명색이 우리 둘이 친구 사이인데 반말 한번 했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항의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결국 박정희는 친구를 직장에 복직시키고 박종규를 불러다가 일을 뭐 이따위로 하느냐고 질책했지만[* 비단 이때만 그랬던 건 아니고 박종규가 사람 팰 때마다 질책했다.] 끝내 그의 과잉충성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 자기 부하한테도 그런 폭행은 얄짤없었던 모양인지 [[채명신]] 장군은 본인의 회고록인 "[[베트남 전쟁]]과 나"에서 밝히기를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 [[대구광역시|대구]] 2군사령부에 사령관으로 재직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에 지방 순시를 나오자 채명신 장군은 대통령의 마중을 나갔었다. 이 때 경호원이 [[경상북도경찰청|경상북도 경찰국]]장인 서재근 [[경무관]]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던 것을 보고 대통령과 경호실장이 있는 자리에서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자 즉시 경호원을 반쯤 두들겨패고 다시 자리에 합석했다고 한다. * 박종규는 [[과잉 충성]]으로도 유명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로 [[영남대학교]] 근처를 지나가면서 "여기선 대학이 안보이네"라고 한마디 하자 즉시 거대한 탑[* 넓디넓은 영남대학교 캠퍼스 가운데 유난히 멀리서 봐도 우뚝 솟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건물이 영남대 중앙도서관이다. 3~5층 정도의 고만고만한 건물 중에서 유독 22층이라는 초고층을 자랑하는데 2005년에 1번 리노베이션을 하여 현재는 당시 세워진 건물 그대로는 아니다.]을 세워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영남대학교가 보이게 했다고 한다. * [[육영수]]와는 영 좋지 못한 사이였다. 경호실에서 박정희의 술 시중 돕는 여성들을 섭외하는 이른바 채홍사 역할을 할때마다 육영수는 박종규를 불러 "각하를 망칠 작정인가"라며 야단을 쳤다고 한다. 육영수의 호출이 떨어질 때마다 박종규는 부하 직원들에게 "도살장 끌려간다"며 푸념을 했다고 한다. 때문에 박종규는 청와대를 나갈 수 있으면서도 요직이기도 한 [[주미대사]][* 밑에 서술되어 있지만 박종규는 의외로 영어를 위시한 다개국어에 능통했다.]나 중정부장을 하고싶어했지만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 박정희가 [[경상남도]] [[저도#s-1|저도]]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던 도중 낮에는 저도에 가서 쉬다가 저녁에 [[진해시|진해]]해군공관으로 돌아오고는 하였다. 며칠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대통령 일행이 이동을 하게 되니까 자연히 [[대한민국 해군|해군]]의 경호가 따르는 등 여러 사람들이 수고하는 것을 보고 저도의 목조 주택을 수리해서 그곳에서 잠을 자는 게 좋겠다고 지시를 내리자 [[정주영]]과 함께 목조 주택을 석조 주택으로 바꾼 전력도 있어 다음 해에 온 박정희가 격노하기도 했다. 박정희는 새로 만든 석조 주택보다 원래의 목조 주택을 더 좋아했기 때문. 이 건은 정주영이 자기가 사재를 털어서 한 일이고, 돈도 별로 안 들었으니 그냥 쓰시라고 설득하여 어찌어찌 잘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 만든 이 석조주택이 지금의 [[청해대]] 본관이다. * [[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술에 만취하면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박정희 나오라며'''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튿날 가볍게 꾸짖었다고 한다. 박종규가 사용하던 권총이 현재 목동 사격장에 있다.[* 사격장과 박종규의 인연은 또 있는데 사격장의 운영자인 [[박종길(1946)|박종길]] (국가대표 사격 선수 출신,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박종규가 발탁해 국가대표가 되었던 인물이기 때문. 박종길 씨는 '리틀 피스톨 박'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 의외일 수 있겠지만 학구파적인 면모가 있었는데 하사관 시절부터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영어]], [[독어]], [[불어]]에 능통하였고 죽기 몇 년 전에도 [[러시아어]]와 [[히브리어]]를 공부 중이었다고 한다.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516혁명의 당위성을 미국 [[CIA]] 한국지부에 직접 열변하기도 했다.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드라마]]에 나온다. * [[재일교포]] [[야쿠자]]인 [[정건영]]과 친분이 깊어 경호실장 권력을 앞세워서 사업적인 지원을 많이 해주었는데 그 때문에 [[외환은행]] [[도쿄도|도쿄]]지점이 무너질 뻔 한 적도 있다. * [[동양고속]]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인물인데 동양고속 주식을 갖고 있었다. [[노스롭 스캔들]]에 연관된 기업 중에 동양고속이 있었으며 동양고속의 실 소유주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 정도였다.[* 노스롭 스캔들 당시 동양고속 사장 이민하는 박종규의 처남이었다. 현재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주식은 친동생인 박재규 전 통일부장관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김영삼의 [[사돈]]이었던 김웅세 [[롯데월드]] 사장은 원래 [[대한민국 철도청|철도청]] [[공무원]]이었는데 박종규가 청와대 경호실 직원 아파트를 짓기 위해 철도청 소유 토지를 헐값에 넘길 것을 요구했으나 담당 공무원이었던 김웅세가 거부를 하자 전화를 걸어 쌍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김웅세를 소신있는 공무원이라고 높이 평가했는지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 돈욕심이 매우 많았다. 오죽하면 [[이후락]]과 함께 박정희 정권 부패의 상징으로 거론될 정도였다. 그러나 워낙 권력의 흐름을 잘 읽는 편이라서 이후락처럼 고생한 적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