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종천(1960) (문단 편집) === 1기 === 농구계로 다시 복귀한 계기는 [[1994년]]에 학교 선배이자 구단 선배이자 직장 선배인 [[신선우]][* 신선우 역시 현대산업개발 여자 농구단 코치를 잠시 지낸 뒤 현대증권의 영업부장으로 재직하다가 농구계로 컴백한 것이었다.]가 현대전자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아끼는 후배인 박종천을 코치로 지명하면서부터였다. 박종천은 이 때부터 2002년까지 [[전주 KCC 이지스|현대 - KCC]][* 이 시절 팀이 계속 개편되었다. 현대전자 실업농구단 → 대전 현대 다이냇 → 대전 현대 걸리버스 → 전주 KCC 이지스.]의 [[코치(스포츠)|코치]]로 재직하면서 신선우를 보좌해 두 번의 [[한국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2년, [[한국여자프로농구]] [[청주 현대 하이페리온]][* 모기업인 [[현대건설]]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한국산업은행]]이 임시로 관리하다가 2004년에 [[신한은행]]에 팔렸다.]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처음 감독 자리를 맡게 되었다. 2002년 5월에 감독에 부임했는데, 놀랍게도 2002년 8월에 여름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데뷔 3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는 창단 이래로 [[농구대잔치]]와 [[한국여자프로농구]]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콩라인]] 구단이었는데 이를 말끔하게 깨뜨린 것이다. 이 우승으로 박종천은 일약 농구 감독 인재 풀의 촉망받는 인재로 떠올랐고 앞으로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했지만... 우승하고 그 다음 달에 사임했다. 이유는 [[사무국(스포츠)|사무국]]과의 심각한 불화. KCC 코치 당시 받았던 연봉 1억 5백만 원에서 2천만 원을 깎고 여자 농구 감독으로 왔는데 우승을 했는데도 당시 어렵던 그룹 사정을 이유로 보너스도 안 주고 날로 먹으려고 한 것이다.[* 근데 당시 모기업인 현대건설의 상황이 심각하긴 했다. 결국 엄청난 액수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고 자산 매각 과정에서 여자 농구단도 팔아치운다.] 이 때문에 박종천은 프런트와 심각한 불화를 거듭하다가 자진사퇴했다. 이후 [[해설자]]로 1년 재직한 후, [[창원 LG 세이커스]]의 수석 코치가 됐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그의 [[흑역사]]가 개막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