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종천(1960) (문단 편집) === 2기 === [[김태환(농구)|김태환]] 감독을 보좌해서 수석 코치로 시즌을 보낸 그는 2004년, 김태환 감독이 물러난 이후 LG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문제는 이 경우 일반적으로 수석 코치는 감독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것인데, 혼자 감독에 임명되었다는 것. 이 때문에 박종천은 김태환을 배신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근거는 없다. 단지 모양새가 나지 않았을 뿐.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성적을 내야 하는데, 문제는 박종천은 그 전년까지 6강 PO에 꾸준히 오르던 LG에게 6강 PO 탈락과 9위 추락[* 최하위 전자랜드와 승차는 같았으나 연승에서 앞서 9위.]이라는 굴욕을 선사하고 말았다는 것. 결국 한 시즌만에 자진사임 형식으로 짤렸다. ~~그런데 약 13년 후 이보다 더 [[현주엽|무능한 감독]]이 LG에 들어오게 된다.~~ 그 후 한동안 야인으로 있다가 다시 얻게 된 자리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수석 코치직. [[연세대학교]] [[선배]]인 [[최희암]]이 불러서 간 것인데, 여기서도 LG와 똑같이 [[최희암]]이 2009년, 재계약에 [[실패]]하자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또 똑같은 소리가 나왔는데, 다만 이번에는 [[최희암]]이 나서서 자기가 추천했다고 [[실드]]는 쳐 줬다. 사실 최희암은 한동안 쉬다가 모기업의 부름을 받고서 고려용접봉 해외 지사장으로 영전한 케이스인지라 잘렸다고 보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역시나 ~~박종천답게~~ 성적이 개막장(...). 초반 10연패라는 개막장 성적을 내면서 [[화병|스트레스로 입원]]하는 우여곡절 끝에[* [[사퇴]]한 결정적인 원인이 된 [[창원 LG 세이커스|동부]]와의 경기에서 3쿼터까지는 10점차 이상으로 잘만 이기고 있다가 4쿼터에 '''야투 성공률 0%''', {{{#blue,#0000ff '''2'''}}}-21을 남기는 바람에 역전당했다.] 결국 총감독으로 물러나는 형식으로 12경기만에 [[유도훈]]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중도 하차하고 만다. 이는 같은 팀 [[제이 험프리스]]의 20경기를 경신한 역대 최단명 감독 기록이다(...). 2012년에 농구 해설가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가 8월에 [[중국]] 요령성 청소년 여자 대표팀의 감독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중국]] 무대로 건너갔다. [[2014년]] [[4월 1일]]에 [[한국여자프로농구]] [[부천 하나원큐|하나외환 여자 농구단]]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382&aid=0000193953|관련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