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주선 (문단 편집) === 정치 활동 === ||[[파일:ECM0120060575_0025S (1).jpg|width=100%]]|| ||<-2> {{{#ffffff '''▲ 2006년 서울시장 출마 당시 선거 벽보'''}}} || '김대중 후보 비자금 사건' 수사유보 건의로 [[김대중]] 대통령의 눈에 들게 되어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비서실]] 소속 법무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이는 대검 수사기획관에 이어 검사장 승진과 검찰총장 후보군 입성이 확실시되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그러나 1999년 '[[옷로비 사건]]'으로 인해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사퇴하고 [[대검찰청]]을 떠나야 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명예회복을 위해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무소속으로 당선된다. [[2004년]] 1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석 달 앞두고 선거구가 쪼개져 고향 보성군이 같은 당 중진 [[박상천]]의 선거구인 [[고흥군]]과 합쳐지자 탈당과 무소속출마를 선언한다. 그러나 박주선과 박상천 모두 [[열린우리당]] [[신중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5년]] 나라종금 사건과 현대건설 뇌물 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민주당(2005년)|민주당]]에 복당한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전남도지사 예비후보로 선거를 준비하였으나, 당시 [[한화갑]] 대표의 의중에 따라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전략공천되어 출마하였고,[* 당시 전남지사는 민주당 소속 현직 지사인 [[박준영(1946)|박준영]]이 있었다.] 이로 인해 미리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중이던 [[김경재]], [[김영환(1955)|김영환]] 등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060403185005903|#]] [[http://media.daum.net/press/newsview?newsid=20060404121215894|#]] 선거 결과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 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으나, 당시 군소정당급이었던 민주당의 지지율에 비해 선전하였다.[* 또한 [[2006년 재보궐선거|두달 뒤의 재보궐선거]]에서 [[조순형]] 전 대표가 민주당 후보로 [[성북구 을]]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나름 소기의 성과는 달성한 셈.]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동구(광주)|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에도 서울 지역구 출마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일축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28353|#]], 진즉에 서울에서 낙선하고 전라남도로 내려온 [[노관규]]와 비슷한 케이스인 셈. ] 최고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같은 선거구 출마를 준비하다가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20319111111520|불법 선거인단 모집]] 의혹으로 인해 당에서 해당 지역 무공천을 선언하면서 탈당하여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해당 선거 전국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직전 총선에서 전국 최고득표율로 당선 된 터라 지역구 내 소조직간 무리한 충성경쟁이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에 구속되어 1심서 징역 2년을 선고[* 당시 재판장이 [[문유석]] 판사. [[지식iN]] [[판사님 비트주세요]] 사건의 그 판사님이다.]받았으나 [[http://www.lawissue.co.kr/view.php?ud=201308221955240015356_12|결국 고법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15년 [[설훈]]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본래 해당 상임위원장직은 설훈 의원과 박주선 의원이 서로 합의해서 보통 2년짜리인 상임위원장직을 1년씩 나눠서 맡기로 했다고 한다. 상임위원장직을 하고 싶은 의원들이 많다보니 나온 일종의 해결책이다.][* 다만 설훈 의원의 임기가 끝나고 박주선 의원이 위원장직을 맡던 중에 신당창당을 이유로 탈당하자 설훈 의원이 격노했다고 한다.] 그 해 다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었다. 이후 2016년 1월 [[통합신당(2016년)|통합신당]]의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있다가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과 통합을 결정했다. 그리고 2016년 2월 2일 국민의당 최고위원에 지명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지난 선거 때 지역구였던 동구가 포함된 동구 - 남구 을[* 기존 선거구인 광주 동구가 인구가 미달되자, 인구가 많았던 남구의 일부 동과 묶어서 갑, 을로 선거구를 나누었다. 남구 지역은 동구-남구 갑, 동구 지역과 일부 남구지역은 동구-남구 을로 선거구가 배정되었다.]에 출마해서 과반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전 지역구이자 고향인 보성에서도 박주선 국회의원 당선을 읍내에 현수막까지 걸어가면서 축하해줬다. [[2016년]] [[6월 9일]]에는 국민의당 몫으로 배정된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다. [[2017년]] [[3월 14일]]에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구현하겠다. 국민통합과 협치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610222|#]] 2017년 3월 17일 예비경선을 통과했으나, [[안철수]]의 독주 속에 3위로 경선을 마무리했다. 대선 후인 2017년 5월 25일, [[박지원]] 대표가 사퇴하면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8년]] 2월 13일 '''[[바른미래당]]'''의 창당과 함께 공동대표직에 취임하였다.[[http://www.yonhapnewstv.co.kr/MYH20180213015200038/?did=1825m|#]] 그러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 후 대표직을 사퇴했다. 바른미래당이 파행을 겪으면서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의 통합을 추진하여, [[민생당]]을 창당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광주 동구 - 남구 을에 출마하였다. 당초 민생당 공천관리위원회에서는 박주선을 컷오프시키고 동구청장을 지낸 [[김성환(1961)|김성환]] 후보를 공천했다가, 하루만에 공천을 번복하고 박주선 의원을 공천하는 일이 있었다.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성환 후보에도 뒤지는 3위로 낙선했다. [[2021년]] [[10월 29일]] [[김동철]] 전 의원과 함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http://naver.me/GulZUCrP|#]] 그와 함께 "이제 정치의 뜻은 접었고, 앞으로도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않겠다"면서 정계 은퇴의 뜻을 밝혔다. [[12월 5일]] [[살리는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112100020 |#]] [[2022년]] [[3월 15일]]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20315010008267|#]] [[방탄소년단|BTS]]를 취임식 때 공연시키겠다고 발언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37694.html|##]]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 사건]]을 시작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의 새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었으나[[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90617190004942|#]], 본인이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2/09/07/AESUXOX2OFGV3AV3NBJ66K3UAE|거절했다.]] [[2022년]] 10월, 대한석유협회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었다.[[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3529|#]] 대한석유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윤석열 정부와 비판자들 양쪽에 전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4838843?sid=101|쓴소리를 하는 원로 포지션의 인물로 자리잡았다.]] [* 근데 이 사람 원래 [[모두까기]](…)로 악명높았던 사람이다.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060425/8299701/1|#]][[https://www.yna.co.kr/view/AKR20180610031900001|#]] 윤석열과 손을 잡았던 건 어디까지나 [[오월동주]]였던 것. 대선 이후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왔다고 보는게 맞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