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중훈 (문단 편집) == 평가 ==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년배 탑급 영화배우들인 [[한석규]], [[김윤석]],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와 비교해서 이례적으로 충무로에 빠르게 자리잡은 케이스다. 다만 박중훈의 스타성에 기인한 부분이지 그의 연기력이나 배우로써의 장점에 기인한 부분은 아니다. 90년대 후반 타이타닉과 쉬리의 연이은 대흥행 이후로 폭발하기 시작한 한국 영화계만 봐온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영화는 시간 남으면 보는 영화, 동시상영[* 대한민국의 경우 [[스크린 쿼터제]]가 있어 어떠한 상영관이든 필수적으로 한국영화를 3개월이 좀 넘는 시간 동안 상영해야하는 상황인데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스크린 쿼터제는 매우 골치 아픈 제도 였다. 한국 영화는 대체적으로 인기가 바닥인지라 헐리우드 외화를 수입해다가 파는게 훨씬 이득인 상황이라 스크린 쿼터제로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 영화를 상영해야했다. [[명량]]이 대한민국 최고 관객수를 굳건히 지키는 현실에도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80년대 90년대 한국 영화는 현재 케이블 TV에서 수없이 틀어주는 영화만도 못한 처지였다. 이에 대한 꼼수로 인기 없는 한국 영화를 두세편씩 모아서 한 편가격에 후려쳐서 보게 만드는게 스크린 쿼터제였다. 한편에 한편가격을 다 받으면 한국 영화는 틀어놓았는데 극장에 관객은 하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덤핑 할인을 통해 관람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90년대 후반까지도 엄연히 존재했던 상영방식이다.]이나 해야 겨우 보는 영화로의 인식이 강했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대체적으로 연기력보다는 검증된 배우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덜보고 극장에서도 꽤 오래 걸어주기 때문에 박중훈과 같은 자신만의 확고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들이 인기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수상경력이 화려하다는 이유로 박중훈의 연기력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연기력이 정말 높게 평가된다면 2000년대 이후 안성기와 같이 만든 다소 자전적인 내용에 가까운 [[라디오 스타(영화)|라디오 스타]]를 제외하면 내세울만한 작품 하나 없는 것은 좀 심각한 일이다. 물론 역대 남자배우 중에서는 유일하게 20대에 국내 3대 영화제인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것은 맞으나 연기력외에 그 외적인 요소들도 많이 작용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90년대 및 한국 영화의 대약진 시기로 수많은 배우가 필요했던 200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영화계에 없어서 안될 존재였으나, 말그대로 연기력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가 매우 높아지고 그에 걸맞는 수준의 배우들이 속출하면서 상당부분 자리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2010년도에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삼류 건달역으로 분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평론가 이지혜는 90년대에 박제된 것 같았던 '''박중훈이 비로소 2000년대로 걸어 나온 느낌이다.'''라고 평가 할정도로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상술한 1960년대 생의 배우들이 아직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정점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현재로썬 은퇴나 다름없을 정도로 커리어가 마감된 수준이다.[* 위의 언급된 한석규 역시 90년대 이후로는 이렇다 할 히트작 없이 하락세를 걷고 있었으나 [[SBS]]의 [[뿌리깊은 나무(SBS)|뿌리깊은 나무]], [[낭만닥터 김사부]]시리즈로 한동안 발을 들이지 않던 드라마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TV쪽에서는 여전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특별한 반전의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인상적인 필모그래피의 확장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