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지호(프로게이머) (문단 편집) == 프로게이머 시절 == 원래는 Plus(舊 [[화승 오즈]])출신이였지만 POS 시절일 때 이적했다. 그리고 과거엔 랭킹 31위[* 그래서 한때 Kespa31라는 아이디를 쓰기도 했다.(...)]였는데 '''[[설거지(동음이의어)#s-3|설거지]]'''를 잘했다고 한다.[* 이게 왜 놀림거리가 됐냐면 예전 [[KeSPA 랭킹]]은 공식적으로 30위까지만 집계를 했고 30위권 밖의 선수가 방송에 표기될 때는 랭킹 표기가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 다르지만 비슷한 예로 [[김택용|이 분]]의 [[배스킨라빈스 31]]도 있다.] 2005년 방영된 [[리얼스토리 프로게이머]] POS편에서 나오는 그의 이미지는 무식(...)한 폭군. 시도 때도 없이 밥을 찾고 [[쟈이아니즘|니꺼 내꺼 내꺼 내꺼]](...) 같은 쿨한 대사를 날리면서 [[서경종]]과 [[김동현(스타크래프트)|김동현]]을 쥐어팬다. 물론 무식하기 때문에 서경종과 김동현의 교묘한 심리전과 놀리기에 잘 당하는 도긴개긴의 모습이었다. So1 스타리그에서 4강에 진출했으나, 4강에서 만난 [[임요환]]에게 3 : 2 [[리버스 스윕/e스포츠|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탈락하였고,[* [[http://tv.naver.com/v/2044326/list/154021|전 경기 리마스터 버전]]] [[오영종]]은 결승에서 [[임요환]]을 3:2로 꺾고 드라마틱한 우승을 달성갔다. 그 다음 대회인 신한은행 스타리그에서는 오영종에게 지명되어 같은 조에 속했고, 오영종에게는 졌지만 나머지 경기를 다 이겨 8강을 넘어 4강까지 진출했고, 오영종은 박지호에게는 이겼으나 다른 경기를 모두 져 광탈했다. 그러나 상대는 같은 팀의 토스 킬러 [[박성준(1986)|박성준]]이었고, 결국 3:0 [[셧아웃(스타크래프트)|셧아웃]]으로 패했다. 그나마 [[3위 결정전]]에서 답이 없는 [[토막#s-3]] [[한동욱]]을 완벽하게 압살하면서 유종의 미는 거두었으나, 그 후로는 양대 메이저에 상위권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결국 [[락라인]]으로 남았다. 초기 플레이 스타일은 마초적인 본인의 성격같이 소위 '박지호 스피릿'이라 불리우는 엄청난 물량으로 대변되는 선수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후 박지호와 함께 전략토스의 양대산맥으로 불렸던 오영종도 '질럿공장장'이라는 비슷한 류의 물량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수의 게이트를 통해 모든 종족전을 가리지 않고 질럿 - 드라군으로 대변되는 기본 물량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스타일이었으나, 세세한 컨트롤 부족과 마법 유닛 활용에 소극적이어서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는 일렬로 녹아내리는 유닛들로 인해 '[[꼬라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 그러나 전성기 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 2004년과 2005년의 게임 플레이는 상당히 전략적인 면모를 보였다. SO1 스타리그에서 8강에서 맞서 싸운 [[이병민]]과의 [[https://youtu.be/jS5CLX7q9yo|경기]]에서 스카웃과 함께 대표적인 소외 유닛 아비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테프전/스타크래프트|테프전]]의 파훼법을 제시했고, 09년 이후 테프전의 정석이 되어버린 다수 게이트 - 물량 폭발 - 아비터 테크의 추가 - [[테란]]의 병력과 소모전 공식의 시초가 정립되었다. 그 외에도 [[FD테란]]의 파훼법, 러커를 상황에 따라선 질럿으로 상대하는 마인드 등 그 당시 기준으로 혁신적인 운영들을 제시하면서 현대적인 프로토스의 운영을 정립하였다. 실제로 그의 성격도 플레이 스타일과 비슷한 면이 있었는데, 어떨 때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지만 어떨 때는 뭘 해도 새가슴스러운 면이 그의 결승 진출에 큰 제동을 걸었다. 박지호의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게이머로는 같은 소속팀 후배인 [[김택용]]이 있다. 초창기 김택용은 박지호나 오영종처럼 엄청난 물량형 게이머로 알려졌으며[* 실제로 [[3.3 혁명]] 전의 김택용의 초창기 스타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경기들은 결승전 전까지의 [[곰TV MSL 시즌1]] 경기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2020년 10월, 비수류 토스의 원조인 커세어 다크를 자기가 전수해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07년 토스 최종병기로 캐리어가 공식처럼 쓰일 때도 박지호처럼 아비터를 선호하였다.[* 사실 이는 [[스탑코리어]]로 유명한 김택용의 좋지 않은 캐리어 컨트롤과 운영도 한 요인이었다.] 실제로 08년 초에 [[이영호]]가 [[안티 캐리어]] 전략을 들고 나와버리자 이제 더욱 빛을 보게 된 아비터 운영 덕에 김택용도 08년 후반기를 기점으로 하여 테란전 승률이 급등하였고, 공식전 통산 승률 63.2%로 역대 프테전 승률 3위에 올랐다.[* 사실 테란전 한정으로는 김택용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드래프트 세대]] 프로토스들이 박지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단 예외적으로 [[삼성 갤럭시(프로게임단)/스타크래프트|삼성]] 소속 프로토스들은 [[송병구]]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끊임없는 게이트 회전보다는 선 굵은 병력 운용과 캐리어를 조합하는 플레이를 더 선호한 편. 당장 07년 한 해 동안 테란을 그야말로 씹어먹었던 [[리버 캐리어]] 빌드부터가 송병구의 작품이다.] 이후 2006년 말부터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2007년부터는 심각한 부진에 빠진 후 부활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2007년까지는 프로리그에서만큼은 [[에이스 결정전]] 최다 연승 기록 1위인 11연승을 기록하는 등 괜찮은 모습을 보였고, 특히 2006년에는 소속팀 HERO의 2006 프로리그 전기리그 준우승, 후기리그와 통합챔피언전 우승에 크게 기여한다. 특히 2006 후기리그 때 [[이성은]]과의 [[롱기누스(스타크래프트)|롱기누스]] 경기는 테프전 역사상 희대의 역전극으로 꼽힌 명경기이다. 이후 2008년에 잠깐 반짝했다가 2009년부터 다시 점점 하향세를 겪는 중. 팀의 몰락과 더불어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 이 때부터는 그나마 잘 하던 프로리그에서마저도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이것저것 한 건 많은데 자신의 이미지와 제자 게이머의 위상으로 인해 본인은 묻혀지고 있...었는데... [[2009년]] [[9월 29일]]에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예선 통과/30일에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예선 통과 - 36강을 12연승, 즉 전승으로 진출해 스덕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2009년]] [[10월 14일]], EVER [[온게임넷 스타리그]] 2009 36강 A조에서 [[박지수(프로게이머)|박지수]]를 2-0로 역[[정ㅋ벅ㅋ]], [[고인규]]를 2-1로 꺾으면서 1100여일 만에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진출을 이루었다. 프로리그 09-10 시즌에는 [[도재욱]]을 상대로 다크로 견제, 팀의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10월 29일]]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허영무]]에게 두 번 지면서 탈락했으며, 스타리그 16강에서도 3전 전패로 허무하게 탈락했다. 이후 [[2010년]] [[3월 10일]], 대한항공 스타리그 36강 경기로 2010년 첫 공식전 경기를 치뤘다. 상대는 1차전에서 [[신상문]]을 2:0으로 제압하고 올라온 [[신대근|대근신]]. 1차전 후 [[엄재경|엄옹]]과의 짧은 대화에서 "당연히 [[신상문]] 선수가 올라올 줄 알고 테란전만 연습했어요. [[저프전/스타크래프트|저그전]]은 기본기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기본기로 했기 때문에~~ 결과는 0:2 패배. 1세트는 7드론에, 2세트는 뮤탈리스크에 허무하게 끝났다. 특히 1세트는 '''3분 5초'''만에 끝나버렸는데, [[엄재경|엄옹]]은 "저 정도 경기력은 [[WCG]]에서 한국 선수와 '''[[불가리아]]''' 선수가 할 때나 나오는 상황이죠!"라는 드립을 시전했다.[* 하지만 [[엄재경]]을 비롯한 해설진은 경기 초반 관중들의 치어풀을 보느라 신대근이 7드론이 아니라 9드론 빌드를 쓴줄 알았다. 1세트가 끝나고 엄재경은 "아... 9드론이 아니라 7드론이었네요! 박지호 선수에게 과도한 말을 한 느낌이 있지만... 요즘 프로토스는 4드론, 5드론도 침착하게 막거든요?"라고 포장을 시도했다. 역시 포장의 달인.][* 이후 [[엄전김]]은 [[진에어 스타리그 2011]] 듀얼 토너먼트의 [[이제동]]과 이영호의 경기에서 또다시 7드론을 경기가 끝날 때까지 9드론으로 해설해서 까였다. 사실 그 동안의 엄전김은 4, 5드 말고는 다 9드론이라고 해설하는 수준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동이 시종일관 유리했으며 그 우위를 잘 지켜나간 이제동의 경기력이 빛난 경기였음에도 지나치게 이영호 편을 들었다는 것도 문제.] [[지못미]]. 후에 본인이 개인방송에서 해명한 바에 따르면 '''진짜로''' 신상문이 올라갈 거라 예상하고 저그전을 한 번도 연습을 안 했다고 한다. [[하태기]] 감독은 그래도 저그전 몇판 연습은 하는게 낫지 않겠나 했다고 하며 떡발린 이후로 제대로 찍혀서 한동안 프로리그에 나오질 못했다고 한다. 3개월 후인 2010년 6월 11일,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2 예선전을 뚫음으로써 올드로써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3연속 진출''' 기록을 박았다. 여담이지만, MBC GAME HERO가 결승에 진출했던 때 [[여자친구]]와 헤어져 있었기 때문에 결승전 경기 전에 '이기면 돌아와줘.'[* 정확히는 '내가 해내면 돌아와라'. 앞뒤 맥락도 없이 던져서 광안리 현장에 있단 팬들은 '저게 뭔소리야?'라는 반응이었다.] 라는 말을 했지만 경기에서는 패배했다. 물론 [[스갤]]에서는 결승전에서 개인사로 징징댄다고 까였지만 어찌되었건 여자 친구는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하고 수상 소감에서 '''돌아온'''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오오 박죠 오오.[* 그 장면은 그랜드 파이널 2006 요약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무렵부터 3연승을 하며 다시 서서히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6월 30일, [[SK텔레콤 T1/스타크래프트|티원]]과의 경기에서 [[김택용|김택신]]을 잡고 팀을 다시 3위로 세워 놓았었다. 그리고... 이 무렵 [[공군 ACE]]에 지원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삼성전자 칸]]의 [[이성은]]도 지원했던 상태. 이들 외에도 박지호의 팀 동료인 [[임성진(프로게이머)|임성진]]과 [[eSTRO]]의 토스 유저 홍명철[* 공식전 없이 2군에만 있던 선수이며, 이후 eSTRO가 해체되면서 은퇴하였다.]도 지원했다. 그러나 넷 중 단 한 명밖에 못 뽑아서 한 명만이 입대가 가능한 상태. 이렇게 되면 박지호 본인 포함 나머지 셋은 다음 달 이후에나 재신청해야 할 듯 싶었다. 당시 히어로의 토스가 [[김재훈(프로게이머)|김재훈]], [[박지훈(프로게이머)|박수범]] 정도만 있더라는 걸 생각하면, 2010년 중반기 들어서 갑자기 기세가 오른 박지호가 공군으로 들어가면 토스라인이 무너질지도 몰랐다.[* 물론 둘 다 나름 선전하고는 있었다지만, 왠지 임팩트가...] 마지막 프로리그 경기는 2010년 7월 13일에 있었던 [[화승 오즈]]의 [[손찬웅]]과의 [[폴라리스 랩소디(스타크래프트)|폴라리스 랩소디]] 경기. 앞 선수들이 죄다 패한 상태에서 3세트에 출전하였는데, [[본인]]도 패하면서 팀도 3대0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7월 17일, [[위메이드 폭스]]와의 6강 PO 1차전에서 1:1로 동률이 된 상황에서 3세트에 출전했다. 맵은 [[단장의 능선(스타크래프트)|신 단장의 능선]], 상대는 [[박세정]]. 결과는 패했다. 그래도 팀은 에결 끝에 승리하면서 가장 먼저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사흘 후인 7월 20일, 위메이드와의 6강 PO 3차전에서, 팀이 3:2로 뒤진 상황에서 6세트에 출전, 이번에도 박세정을 상대하게 되었고, 맵도 사흘 전처럼 신 단장의 능선. 이번에는 '''이겼다'''. 거의 3년만에 [[포스트시즌]]에서 승리.[* 정확히는 1089일만에...] 하지만 팀은 에결 끝에 패하면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 참고로, 이 박세정과의 경기가 박지호의 영원한 마지막 공식전 경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