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철순 (문단 편집) == 여담 == * 대학생 시절(호적상 나이 20세)에 [[결혼]]을 했지만 1986년 [[이혼]]한 경력이 있다. 이혼의 이유가 박철순의 잘못이 아니라 [[http://blog.naver.com/rkdtkd5?Redirect=Log&logNo=120121120817|전 부인의 빚]]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전처의 빚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통에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이를 보다못한 당시 [[OB 베어스]] 감독이던 [[김성근]]이 어느 날 무작정 박철순을 데리고 은행으로 가서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거금인 2천만원을 자신의 명의로 대출받아 빌려주고 추가로 본인 통장에서 2천만원을 인출하여 도합 4천만원을 주면서 "철순아, 이걸로 빚 갚아라" 라고 했다 한다. 참고로 그 당시 9급 [[공무원]] 초봉이 20만원 조금 넘던 시절이다. 그래서 박철순은 김성근을 인생의 큰 스승님이자 은인으로 존경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 일찍 결혼한 덕분에 50대 중반 나이에 손자를 둘이나 본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상을 극복한 사연은 유명한 이야기인데, 지금의 부인인 채수정 씨와의 만남과 그녀의 도움도 컸다. * 선발 22연승 기록에 대해, 박철순 본인은 자신의 기록이 아닌 팀의 기록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선발경기에 야수들의 득점지원 호수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록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최동원]]이 그때 자신 대신 던졌다면 22연승보다 훨씬 높은 기록을 찍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 투수 출신임에 불구하고 야구는 타자놀음이라고 생각하는 케이스다. 전술한 22연승 기록과 맞물려 말하길, 투수가 아무리 잘해봤자 [[퍼펙트 게임]], [[노히트 노런]]에 불과하며 이걸 평생에 몇 번이나 해볼 수 있냐고 반문하며 완봉승도 야수가 점수를 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한다. 박철순 본인의 생각으로는 결국 야구는 타자놀음, 야수놀음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선동열]] 감독 등 대부분의 야구인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 1988년 속옷광고 빅맨의 모델로 나선 적이 있다. 그러나 한강 둔치에서 CF를 찍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쳐서 시즌 아웃을 당했다.[[https://m.blog.naver.com/hipard/70016316231|박철순 빅맨 광고]] * 1989년 [[이광환]] 감독 재임 당시 1년동안 1군 투수코치(플레잉코치)로 활약했는데 [[구동우]], 김동현 등의 신인투수들을 육성하고 팀 방어율 역시 중상위권을 기록하면서 나쁘지 않은 능력을 보여 주었다. 1997~1998년 리빌딩기에도 [[이혜천]], 김유봉, [[최용호(야구)|최용호]] 등의 신인투수들을 지도한 경력으로 볼 때 투수코치로는 의외로 괜찮은 능력자였을지도. 이미 야구계를 떠난 지 10년이 넘은지라 별 의미없는 가정이긴 하다. * 던진 구종중 무회전 체인지업때문에 유난히 이야기가 자주 회자되는 편이다. 왜 무회전 체인지업이라고 애매모호하게 적냐면 박철순선수 본인이 너클볼이라고도 할때도 있고 팜볼이라고 할때도 있기 때문.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1207728&cid=40942&categoryId=31968|#]] 같은 인터뷰를 하고 적은 기사들을 보면 너클볼이라고 언급되는데, 인터뷰 기사인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1501033633008002|#]] 에서만 봐도 팜볼이라고 언급하고, 두 기사를 근거로 정리하면 81년 당시 미국에서 직접 인터뷰했을 때는 너클볼이라 밝혔지만 근래엔 팜볼이라고 하는 듯. 두 변화구 다 구질이 비슷한 무회전 계통인데 박철순 본인의 사용 방식이 체인지업과 같았기 때문에 팜볼이라 정의한 것 같다. 마구마구나 프로야구 매니저에선 박철순 카드가 팜볼과 너클볼 둘 다 가지고 있으며, 마구매니저에서는 너클볼설을 채택하였다. 나무위키에서도 근래 인터뷰를 따라 [[체인지업]]의 팜볼 문단에 박철순이 팜볼을 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6 넥센 히어로즈 용병인 [[로버트 코엘로]]만 봐도 포크볼을 팜볼형태로 무회전에 가깝게 던지는 등 던지는 방식이나 그립, 구질명을 떠나 무회전에 가까운 공을 던졌다 자체가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젊은 시절의 박철순.png|width=100%]]}}} || * 젊은 시절 굉장한 장발 미남이었다. 지금의 [[이대형]]이나 [[심수창]]급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요즘처럼 열광적이지는 않았지만 박철순 좋아서 야구 본다는 젊은 여성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30대 들어서 조금 일찍 탈모가 찾아왔고 세월의 풍파와 암투병, 탈모의 영향으로 그 외모를 오래 유지하진 못했다. * [[선동열]]이 1989년 시즌 후 결혼을 위해 나간 [[맞선]] 자리에서, 상대방 아가씨가 '''나는 이름을 아는 야구선수가 박철순밖에 없다'''고 말해서 선동열이 무척 무안해했다고 한다.[* 1995년에 발간된 선동열 본인의 저서 중.] 그렇지만 선동열은 결국 그 아가씨와 결혼에 성공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감사용철순.jpg|width=100%]]}}} || *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공유(배우)|공유]]가 1982년 당시 박철순 역을 맡았는데, 젊은 시절 박철순과 '''굉장히 싱크로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sportsseoul.com/20160913014055_9.jpg|width=100%]]}}} || || '''{{{#FFFFFF 선수 박철순, 감독 김용희}}}''' || * [[김용희]] 前 [[롯데 자이언츠]]-[[SK 와이번스]] 감독과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때문에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김용희가 처음으로 롯데 감독을 맡았던 1994년 4월 12일, [[OB 베어스]]와의 홈 개막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코어 4:4로 맞선 연장 11회 말 OB의 투수 강길용이 2루타와 실책, 고의사구로 무사 만루를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OB는 투수 교체를 단행했다. 당시 대부분의 팬들은 지난 해(1993년) 데뷔하자마자 평균자책점 1.11 (이는 [[선동열]]을 제외한 다른 선수가 기록한 가장 낮은 평균차책점이다), 9승에 23세이브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마무리 [[김경원(야구)|김경원]]이 마운드에 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마운드로 올라온 투수는 그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박철순이 등판한 것. 당연히 조금이나마 [[사직 야구장]]에 응원을 왔던 OB 팬들은 난리가 났고, 롯데 팬들마저도 그의 등판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홈 팀의 감독과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장면 자체부터가 너무나도 희귀한 상황이었고, 등판한 상황도 매우 긴박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마운드에 올라온 박철순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을 던졌고, 8번 타자 홍순기와 9번 타자 [[공필성]]을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2사 만루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다음 타자였던 1번 타자 [[전준호(1969)|전준호]]에게 끝내기 중전 안타를 내주면서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 마무리 투수의 재능도 있어서 1992년에는 9세이브로 세이브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 [[오리온(기업)|오리온]] [[초코파이]] 광고 모델로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u9YM0PW1i_0#t=610|출연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광고가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OB 베어스 항명파동]]이 터졌고, 항명 주역인 박철순을 모델로 기용한 오리온은 한동안 고역을 치루어야 했다. * 나이가 든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한창 시절 [[기억력]], 특히 이전 경기에 대한 [[복기]]에 굉장히 능했다. 큰 게임 뿐 아니라 정규시즌 중 사소한 상황에 대해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기억하여 회고할 정도였다. 현역시절 말년에 [[이종남(기자)|이종남]] 기자와의 인터뷰 때, 1982년 시즌 막판 [[롯데 자이언츠]]의 [[김용철(야구)|김용철]]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22연승''' 행진을 마감하던 상황을 아래와 같이 얘기한 바 있다. > 박철순: 2루에 주자를 둔 상황에서 투수가 안타를 맞으면 보통 어디로 가죠? > 이종남: 그야 [[포수]] 뒤쪽이지. > 박철순: 맞아요. 저도 (김용철에게 안타를 맞고) 바로 (포수)[[김경문|경문이]] 뒤로 백업을 갔다가 "아이고 이 멍청이!"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투수가 포수 뒤를 받치는 건 공이 빠졌을 때 주자가 추가로 진루하는 걸 막는게 목적인데, 그 때는 동점에 끝내기 상황이니까 포수 뒤로 송구가 빠지던 말던 주자 한 명만 들어오면 끝이잖아요? 그건 말도 안 되는 플레이였어요. 그 때 저는 홈과 3루 사이에서 중계를 했어야 맞는 거예요. 참고로 [[선동열]]도 현역으로 뛸 때 박철순처럼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하던 선수였다. 역시 야구도 머리 좋은 사람이 잘 하는 모양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타자를 상대할 때 ''''예전에 이 타자한테 이런 공을 던졌다가 맞았지'''' 라고 기억을 되살려서 투구 패턴에 참고하면 도움이 안 될 리가 없다. 이것은 당장 [[포수]]부터 해당되는 얘기이다.] * [[박명환야구TV]]에서 [[정수근]]이 밝힌 일화로, [[츠쿠미시|츠쿠미]] 전지훈련 당시 의욕이 넘쳤던 신인 정수근을 상대하러 마운드에 박철순이 있었고 안타-도루-득점을 뽑아냈는데 경기 후 중간급 선배들이 정수근을 불러내어 '''박선배님께서 던지시는 데 감히 도루를 해?'''하면서 크게 혼냈다고 한다. *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 10]] 투표 당시, 후보로 선정되었다. * [[농구선수]] 출신 방송인 [[서장훈]]이 어린 시절부터 박철순의 열렬한 팬이었다. 박철순의 피칭에 매료되면서 서울학동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가 [[이도형]]과 함께 야구선수 생활까지 했다. 현재도 박철순에 대한 존경심을 피력하고 있으며 [[두산 베어스]]의 열성팬임을 자부하고 있다. * 그런가 하면, 씨름의 달인이자 MC인 [[강호동]] 역시 박철순과의 짤막한 추억이 담긴 일담을 [[1박 2일]]에서 밝힌 적이 있다. 해당 방송은, 2008년 3월 2일 방송된 1박2일 시즌 1 31회 제주도 편으로, 우연히 종이비행기 복불복에서 꼴등을 하여 벌칙으로 비행기를 주우러 간 강호동이 제주도로 여행을 온 가족 여행객들을 만난다. 자신을 만나고 행운이며 반가웠다 말하는 그들에게 감동을 받았고, 만남 후에 강호동 본인이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서 어쩌다 박철순을 만나 싸인을 받았다고 전했다.[* 강호동이 마산에서 성장해 초중고를 나왔음을 감안하면 롯데와의 마산구장 원정을 왔다가 만나게 된 것으로 추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