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치우 (문단 편집) === 해방정국 === 그후 1945년 8월 [[베이징]]에 체류하던 중 [[단파방송]]으로 일제가 곧 항복할 것을 듣고 [[장춘]]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그는 재류동포들을 모아 '신경(新京) 거류민단'을 조직하여 대표위원에 취임하고 동시에 [[중국국민당]] 지하조직체와 연락하여 "조선민족과 중국민족은 조금도 충돌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이번 종전으로서 한층 더 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의 삐라와 포스터를 국민당의 이름으로 찍어 트럭에 실어 가지고 중국인 거주지에 뿌리고 중국인을 상대로 가두연설도 하는 등 쓸데 없는 충돌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이튿날인 16일 그는 조선학술원 산하 실무진에 선임되었고 18일에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조선문학건설본부 평론부 위원에 선임되었다. 그후 10월 [[북한]]을 거쳐 그 달 말 귀국하였다. 귀국 후 11월 '임시정부 영수 환국 전국환영회'의 보도부 위원에 취임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조선문학동맹이 결성되자 평론부 위원에 취임하였다. 또 같은 달 조선과 소련 양국의 친선과 문화 교류 및 발전을 위하여 자연과학·인문과학·예술계·법조계·언론계 등 각계를 망라한 대표 200여 명의 발기인이 참석하여 '조소(朝蘇)문화협회'를 창립하였을 때 이에 참여하여 경과 보고를 맡기도 했다. 1946년 1월 좌익 29개 단체가 '[[민주주의민족전선]]' 발기준비위원회를 개최하자 박치우는 결성준비위원으로 1차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같은 해 2월 결성준비위원회 사무국 선전부원에 취임하였다. 이때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가 개최되자 참석하여 특별보고로서 <국수주의의 파시즘화의 위기와 문학자의 임무>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는 이원조의 제안으로 긴급동의에 부쳐져 참가자들에 의해 결의안으로서 채택되기도 했다. 그는 이 발표를 통해 민족 감정에만 호소하는 국수주의 및 파시즘이 비합리성의 원리에 입각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합리성의 원리, 합리주의 사상으로 무장하여 민주주의 전선에 참가할 것을 호소하였다. 한편 이때 조선문학동맹이 '조선문학가동맹'으로 개칭되었는데, 여기에 그도 가입하였다. 2월에는 [[YMCA]] 회관에서 열린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 당시 [[여운형]]·[[허헌]]·[[박헌영]]·[[김원봉]]이 공동의장으로 취임했었다.]에 조선문화협의회 대표 자격으로 출석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달 민주주의민족전선 교육문화대책 연구위원에 선임되었다. 그해 3월 25일 좌익 계열 신문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3295|현대일보]](現代日報) 창간에 참여하여 발행인 및 주필을 맡았다.[* 소설가 [[이태준(소설가)|이태준]](李泰俊)이 주간을, 시인 [[김기림]](金起林)이 편집장을 맡다가 나중에 이원조가 편집장을 맡고 김기림은 고문을 맡게 되었다. 외보책임자에는 김영건(金永健)을 기용했다.] 4월에는 [[박헌영]]이 평양을 방문할 때 동행하였으며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주최의 '민족문화건설 전국회의' 첫째 날에 문화 일반에 관한 보고의 일환으로 <민족문화와 세계관>을 발표했으며, 6월에는 조선문학신인회 결성에 참여했고 박헌영이 평양을 방문하자 재차 동행했다. 그러다가 그해 7월 13일 평안청년회 소속 20여 명의 청년들이 같은 달 11일에 기고된 <지방열을 타파하자!>라는 글이 우익을 자극한다며 현대일보사를 방문하여 박치우에게 4시간 가량 보복을 가했다. 이들은 곧 구속 수사를 받았으나 테러 사건이 아닌 단순 폭력 행위로 처리되어 곧 석방되었으며, 당시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은 박치우가 고소를 한다면 폭력범으로 입건하겠다고만 표명했다. 결국 현대일보사는 16일 평안청년회 [[문봉제]] 대표에 사과문을 보내고 이튿날 문제의 기사를 취소했다. 한편, 박치우는 7월 20일부터 1주일 간 조선문학신인회에서 주최한 신인문학 강좌 강사로 활동하였고 8월 1일에는 조선민주청년동맹에서 개최한 청년 [[반전]] 대회에 참여하여 '반전과 문화'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같은 달 29일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국농민회총연맹]]·조선민주청년동맹·조선부녀총동맹 등의 민주적 대중단체들이 [[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남조선신민당]]의 3당 합동문제를 객관적 입장에서 검토하기 위해 간담회를 개최하고 토의 결과 3당합동촉진위원회 구성하였는데, 이때 박치우는 사무장에 임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