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호진(축구) (문단 편집)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했다. 문제는 이 팀의 주전 골키퍼가 바로 [[이운재]]였다는 것. 그래도 이운재가 상무에 입대한 2001년에는 리그에서만 11경기에 출전하며 처음으로 두자릿수 경기를 뛰는 등 기회를 받았다. 하지만 이운재가 전역하고나서 다시 이운재에 밀려 2002년 5경기 출전에 그쳤다. 결국, 2003년 K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한 광주 상무에 입대하며 출전 기회를 모색했다. 광주 상무에서는 활로를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일병까지는 선임이자 주전 골키퍼 자리에 정유석에게 밀렸지만, 상병이 된 2년차에는 리그와 리그컵에서 17경기를 뛰며 K리그에서 가장 많이 출전한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2005년 수원에 복귀했지만 당시 국대 주전이자 주장이었던 이운재가 버티고 있는 수원에서 리그 단 4경기만 출전하는데 그쳤다. 이대로면, 선수 생활을 오래하기 위해선 수원을 떠나야 할 수도 있었다... [[파일:04001599_20070315.jpg]]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끝난 후, 주전이었던 이운재가 컨디션 난조를 보이자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미친듯한 선방을 보여주면서 일약 수원 삼성의 후기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그 기세를 몰아 챔프전에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지만, 결국 팀은 패배, 준우승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이 때의 활약 덕분에 박호진은 2006년 K-리그 베스트 11에 뽑히면서 전성기를 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7년 발 부상을 당해 몸 상태가 나빠지고, 여기에 이운재가 다시 부활하면서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다. 발 부상은 재활하는데 무려 1년 6개월이 걸렸고, 이 사이 백업 골키퍼 자리마저도 [[김대환(1976)|김대환]]에게 밀리는 등, 1군에서 자리조차 안정적이지 않게 되었다. 수원 입장에서도 박호진 정도의 백업을 내주기는 아까웠기 때문에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그는 2010년까지 팀에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3대 감독인 [[윤성효]] 아래서 대대적인 리빌딩에 돌입하자, 그도 팀을 떠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