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공주의 (문단 편집) ==== 경제 ==== 흔히 공산주의에 대한 편견 중 하나가, '공산주의 경제가 망한 이유는 어차피 다 똑같이 분배되니 제대로 일을 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태업을 했기 때문에 망했다'인데, 현실은 공산주의 사회에서 태업을 하면 공산주의 체제에 불응하는 불순분자로 취급을 받아 '''바로 [[굴라크]]행이었다'''. 실제로는 좀 더 복잡하며, 소련의 경우 성과에 따라 임금의 20~40%나 되는 인센티브를 주었고 또한 훈장까지 주었기 때문에 충분한 동기부여는 있었다. 그러나 소련, 중국,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의 생산력이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크게 떨어지는 이유는 자본주의는 커녕 산업화조차 제대로 되지도 않은 후진적인 농업국가였던 상태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했기 때문에 공산당 당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공장 또는 사업체의 경영에 관하여 관련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그런 지식이 있을만한 자들은 자본가나 그에 우호적인 사람들 뿐이라 불순분자로 낙인찍혀 모조리 혁명에 의해 쓸려나갔고 탄광노동자 출신 선동가들이 이른바 "좋은 성분"으로 판정받아 고위직과 공장장을 차지하고 기존 공장장을 하던 관리자들은 농경사회에서 지주-[[마름]]과도 같은 쁘띠-부르조아로 낙인찍혀 살아남아도 반혁명분자로서 공원 청소부 같은 말단 노동직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런 일은 이론 자체적으로 모든 재화의 근원이 오로지 노동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하고, 투자우선순위 결정, 자본 관리기술등 자본가가 현대 산업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전부 부정했고 오로지 착취하는 자들로 규정된 이념 때문이었기에 어떤 나라에서건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런 이들의 이념적 규정은 혁명 과정에서는 자본가 계급에 대한 끔직한 학대와 숙청으로 나타났지만 혁명 이후에는 노동자들에게도 대재앙으로 작동하게 된다.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이 성공한 후 자본가들이 제거된 산업현장에서 반드시, 혁명이전보다 상향된 비현실적인 생산목표 수량을 책정해왔다. 왜냐하면 엄청난 피를 흘려 혁명이라는 방식을 통해 자본가라는 기생충들이 제거되었으니 인민들에게 분배할 생산량이 반드시 높아져야하만 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을 애써 죽였지만 인민들에게 줄 빵의 생산량이 감소한다면, 노동가치론의 신화가 깨지게 된다. 자본가가 공장에 없다고 인민들에게 나눠줄 생산량이 감소하게되면 자본가들은 무언가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라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이념적 수준에서 반드시 단위 노동개체에 대한 상납, 수탈량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이 설정한 비현실적인 목표수량은 절대 달성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한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생각은 ''''우리가 운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충분히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도출 할 수 밖에 없었다. 노동만이 생산할 수 있고 가치를 창출한다는 아이디어는 노동자들을 위하는 용어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역으로 생산목표에 수량이 미치지 못했을때는 오로지 노동자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만 더 머리를 굴린다면 '우리가 운영을 잘못해서' 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운영을 잘못해서'는 곧 자신들의 권력이 위험하냐 마냐와 연결되기에 그들에게는 국민들이 충분한 노동을 하지 않아서가 더 쉬운 선택지였을 것이다. 실제로도 공산주의 국가의 경제폭망은 거의 다 국민들의 노동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지배층에서 운영을 잘못해 폭망한 사례다.] 그렇다고 해서 생산목표를 초과달성한다고 해도 그걸 가질 수는 없고, 약간의 배급수량 증가밖에 없는 상황은 일 잘하는 노예에게 주인이 주는 특별식이나 다름이 없었고, 비현실적인 높은 생산목표 수단을 제시하고 이에 맞지않으면 잔혹하게 처벌하는 형태가 되니. 결국 공산주의 체제의 노동자들은 사실상 공산당의 노예상태에 전락하게 되었다. 만성적인 생산량 부족에 [[홀로도모르|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대약진운동|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도]] 공산당 지도부는 우리가 관리를 잘못했다. 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이는 자본가들이라면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생각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공산당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결국 잘못의 원인이 노동자들에게 겨누어진만큼 그 대책 역시 필연적으로 '국민들에게 더 많은 노동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 이었고 이에 응하지 않거나, 심지어 '''못해도''' '[[사보타주]]를 일삼는 반동분자들을 색출하여 태업죄로 처벌하는 것'이 되었다. 사실 태업이라는게 상위단위에서 알 방법이 없다. 못하는건지 안하는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이에 대한 간단한 방법은 목표생산량을 못채우면 태업으로 간주하여 하위 관리자들을 굴라그로 보내버리는 것이었다. 당연히 책임떠넘기기가 발생하는데 유능한 연구원,엔지니어나 관리자들은 대개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업무에만 충실하면서 책임감도 강하기 때문에 이런 책임떠넘기기에 좋은 대상이 된다. 반면 [[트로핌 리센코]]같은 정치적 감각만은 뛰어난 자들이 성공한 관리자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체제가 "체계적"으로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우연이 그렇게 된 것이거나, 관리를 잘못한 것이거나 악당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론적으로 그렇게 굴러가버린 것이다. 이런 관리자들의 질적저하와 책임추궁은 하위관리자들에 의해서 노동자들을 향한 가혹한 쥐어짜내기와 솎아내기로 귀결되었다. 못하는거나 안하는거나 같아진 이상, 굴라그는 곧 정신적 장애를 가졌거나 사소한 결점을 가진 노동자들이 가혹한 처우를 받으며 노예노동에 종사하는 곳으로 변해갔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용된 노동자가 생산목표를 못채우면 잘라서 집으로 보냈지 [[레오폴드 2세|경찰이 와서 태업이라 규정하며 처벌하진 않았다.]]''' 소련의 '스타하노프 운동'이나 [[사회주의노력영웅]], 북한의 악명높은 '새벽별 보기 운동',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 같은 것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비현실적인 목표설정과 가혹한 착취에도 이들은 어떠한 쟁의나 항의도 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의 국가에 쟁의를 벌인다는 것은 곧 정치범으로 판정되어 중범죄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악질적인 자본가들처럼 행동하게 된 것이다.''' [* 어떤 나라의 공산주의 과정을 봐도 이들이 산업자본을 몰수한 뒤 초기에 이런 문제로 극심한 기아와 생산량 저하를 겪는다. 소련의 [[홀로도모르]]나 중국의 [[대약진운동]]도 이런 이유로 생긴 일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굶어죽고나면 낮아진 생산력에 걸맞는 인구수와 산업구조로 재편되게되어 안정되지만, 줄어든 산업생산력은 체제가 끝날때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핵심이념인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무지성적인 경도와 일인 일당 독재체제의 중앙집권적이고 상명하복적인 정치체제로 인해 최고 지도자나 당 차원에서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하지 않는 한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수정 및 보완 시도가 극히 어려워져 버렸다 이런 시도조차도 한 국가 내의 공산주의의 방향을 수정할 여지는 있으나 이 경우에는 자칫하면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 또는 중국으로부터 수정주의라고 불리며 무력개입을 포함한 압박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위의 사례에서는 어쨌든 간에 바뀌어서 개선될 여지라도 있지만 상당수의 여러 공산주의 일인 및 일당 독재국가에서는 국가의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기위해 정책을 변경하고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보완해서 개선하기는 커녕 [[스탈린주의]], [[마오이즘]], [[주체사상]]같이 개악되는 게 빈번했다. 유독 마르크스주의의 분파가 스탈린주의, 마오이즘 같은 일인 독재자의 명칭이 붙는 것도 이에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사상적으로 경직된 체제로 말미암아 [[노동가치이론]] 등을 포함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무오류적 사고방식에 빠진 나머지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느냐 아니면 없애느냐의 양자택일의 갈림길'''로 내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자본주의는 딱히 처음 자본주의를 택한 국가도 알 수 없고 자본주의 종주국(?) 같은 것도 없었기에 그런 문제는 덜했다. 심지어 자본주의에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섞어 혼합경제라는 체제를 만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무지성적인 경도와 일인 및 일당 독재로 인한 사회의 경직성 그리고 [[민주집중제]]같은 중앙집권적이고 상명하복식인 정치체제로 인하여 '''당이 까라면 인민은 깐다'''는 상명하복식 계획경제 시스템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시스템은 전시경제 같은 특수 상황에서는 비록 세부 효율은 떨어지더라도 사회적 목표를 향한 자산의 강력한 집중을 가능케 하여 단기적이고 거시적으로 큰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측면은 있었으나, 그건 기원전에 노예제도로 사람들을 갈아넣어 당대에 지을 엄두도 못내던 피라미드를 만드는 것이나 다를바 없었다. 재미있게도 많은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죽고나서는 미이라처럼 방부처리되어 대개 현대판 피라미드인 [[금수산기념궁전|영묘]]에 묻혀 숭배받고 있으니, 이 제도가 가지는 노예제의 성격을 시각적으로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일인 및 일당독재로 인한 사회의 경직성으로 인해 일반 시민들을 위시한 사회 내의 경제활동 주체들의 창의성과 혁신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억압 함으로서 결국에는 '''마르크스주의 국가의 경제적 활력을 서서히 뿌리부터 말살했다'''. 거기에 공산주의 사회에서 인센티브를 퍼줬다고 해도 모순이 많이 존재했다. 생산직은 생산량에 비례해서 주어졌고 관리직은 목표초과 달성시 주어졌다. 그런데 상부기구가 하부단위보다 정보에 있어 우월하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목표 설정에서 부터 온갖 꼼수가 난무해 효율성을 급격히 갉아먹었다. 예를 들면 다음 연도의 생산목표가 오를것을 것을 감안해 올해는 목표보다는 높지만 적당한 수준을 생산한다거나 상품 묶음에 대한 지시가 내려오면 가장 쉬운 제품만 주로 만든다거나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나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가 낮거나 기피되었기 때문에 억압적인 사회제도와 겹쳐서 기술 혁신이 일어나기 힘들었다. 일어났다고 해도 중앙정부가 밀어주는 군사나 우주 관련 기술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 결과, 종주국인 소련을 위시한 대부분의 공산국가는 소련의 공산주의 포기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공산주의를 포기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그나마 북한과 같이 사실상 원조 마르크스주의보다도 열화된 일인독재체제의 국가들만 남거나, 아니면 중국과 같이 경제/사회적으로 개방하여 일당독재라는 타이틀만 유지하는 지경이 된 상황. 그래서 여러 정통파 마르크스주의 학자나 공산주의자라 해도 소련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제대로 실행하는 공산주의 국가는 하나도 없었고, 현실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다 마르크스의 정통 공산주의 이론을 제멋대로 해석한 스탈린[* 일부는 레닌까지 덤태기 씌워 비난하기도 한다.]의 사이비 이론을 신봉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공산주의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소련을 위시한 수많은 나라들이 저마다 공산주의를 한다면서 앞다퉈 도입은 했는데 모두가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는 전제조건인 그러니까 '자본주의 최고수준의 생산력'과 '최고수준에 도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단 하나도 부합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제창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없이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 스스로가 정부의 내각을 구성해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정치체제를 뜻했지, 일인 및 일당독재라는 뜻이 아니었다. 사실 이 제도의 장단점은 독자적으로 다루기 보다는 [[노예제]] 항목에서 보는게 더 편하다. 제도의 구성이나 작동방식이 노예제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 공산주의의 장점을 빠른 중공업 육성, 군비증강등으로 꼽는데, 사람을 갈아넣으니 당연히 다른 체제에 비해 지도자가 관심을 가지는 핵심 산업적 분야에선 다른 분야의 도태를 양분삼아 초월적 성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갈아넣고 그로인한 산업력을 자랑한 체제가 공산주의 이전 고대에도 이집트,중국에서 존재했던게 함정이다. 고대에는 사람들을 그런식으로 갈아넣지 않고서는 기원전의 생산력이나 기술력, 정치력을 고려해서 피라미드나 만리장성같은 거대한 축조물을 지을 수 없었을테니까, 하지만 갈려넣어지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장점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이런 고대의 노예제를 현대에 되살려 어디에 쓰겠다는 말인가? 1970년대 공산주의를 철석같이 믿던 서구의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는, 당시 서구 사회와 공산국가를 비교하며 '''종말이 머지 않았다'''는 식으로 공산국가들의 생활수준을 찬미하는 동시에, 서구의 사회 문제를 예로 들어 서구권의 몰락을 예견했다. [[1977년]] [[뉴욕 정전사태]]와 당시 일어난 [[중국]]의 [[탕산 대지진]]을 두고 비교하며, '''공산국가에서는 지진이 나면 [[홍위병]]을 위시한 젊은이들이 단체로 달려가서 도와주는데 미국은 사고가 터지면 약탈과 살인, 방화가 나니 이거 못 살 곳이다'''라고 한 적도 있으니...~~물론 그 홍위병들의 실체를 감안하면...~~ 그런데 우습게도 사실 70년대 소련의 고도성장과 안정은 우습게도 고유가에 그 근원이 있다.[* 소련이던 러시아던 그때나 지금이나 최대 산유국이자 석유 수출국 중 하나다.]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가 담합이 결과적으로 당시의 공산권을 먹여살린 셈이다. 결국 이러한 한계 때문에 인민들 사이의 아름다운 연대, 안정적인 생활 같은 이러한 아름다운 공산국가의 모습은 1980년대 들어서 박살이 나고 만다. 그 사이 서유럽 국가들은 70년대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다시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의 진보성이 다시금 발휘되어 생활수준이 급격히 향상되고 개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고, 또한 민주주의에 따라서 사회적 다양성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환경문제]], [[소비자 문제]] 등 기존에는 주목받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가 부각되면서 정부의 정책 역시 탄력적으로 변화하면서 각종 사회 문제에 대응할 수 있었다. 반면 동유럽 국가들은 일인 및 일당독재로 인한 '''사회의 경직성, 개인의 물질적•문화적 욕구 억압, 비효율적인 관료제'''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극복하지 못했다. 생필품조차 맘대로 못 구해서 엄청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된다. 이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당연히 소련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산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생필품'의 부족 현상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소련 사람들이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었다는 건 아니다. 단지 다양성이란 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없어도 되는 물건은 수급이 매우 불안정했다는 것이다. 감자와 빵은 구할 수 있었지만, 전시상태도 아니고 그것만 먹고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고기는 몇 주에 한 번이나 구할 수 있을꺼 말까였다. 소련의 명목 GDP는 미국의 70% 수준이었는데, 이정도라면 전국민에게 생필품 정도는 손쉽게 지급할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체제의 강점이자 문제점이라고 칭한 산업집중 정책 때문에 군비와 군수산업이 비대하게 발달했을 뿐, 명목 GDP와는 무관하게 생필품과 소비재의 공급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국가에서 통제하는 국영상점 가격은 고정되어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빵과 감자만 공급받을 수 있었고 기타 소비재의 암시장 가격은 서구국가의 수백배에 달했는데 수입도 금지되어 있었다. 물론 공산당 간부들은 이런 소비재들을 일반 국민과 달리 충분히 향유할 수 있었고 이는 공산국가 국민들의 커다란 불만을 사 체제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youtube(jWTGsUyv8IE)] 1980년대 말 정도의 모스크바 한복판 슈퍼마켓을 찍은 영상만 봐도 딱하게 그지없을 정도인데,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게 이 정도였다. 이 시절에 소련인들이 미국이나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 갔다가 슈퍼마켓에만 들렀는데 그 풍요로움에 완전히 압도당해버렸다는 이야기가 비일비재하다. [[MiG-25]]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1976년 전투기를 몰고 귀화한 파일럿 빅터 벨렌코의 경우 미국에서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애완동물 사료를 멋모르고 사먹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주변 사람들이 그건 사람이 먹는 게 아님을 알려주었음에도 '''인간이 먹는 것도 아닌 사료가 가게의 한쪽 벽을 다 채울 정도로 다양하고 맛도 좋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대한민국의 80년대 말 슈퍼마켓도 이것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9u7eeEMU2zU|#]] 게다가 소련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중이었다. 전쟁 수행 과정에서 국가예산, 인적·물적 자원을 있는대로 낭비한 결과, 소련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죽쑨 것처럼 제대로 된 이득은 보지도 못하고 자원만 낭비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에게 더 큰 악재가 겹치고 마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유례없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 사고를 수습하는데만 1년 예산의 3~40% 정도나 되는 거액이 허무하게 날아갔다. 거기에다가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도 떨어지는 바람에 세입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원래부터 미국에 못 미치는 경제력에, 심화되는 군비경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피해,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 하락에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 새로운 첨단산업의 부재까지 있었다. 결국 고르바초프가 전면개방을 선언하고 소련 체제를 개혁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1990년대가 도래하면서 결국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다만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부터는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공산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이에 대해서 [[보리스 옐친]] 문서 참조.[* 루마니아에서도 차우셰스쿠가 죽었을때 국민들이 한참동안 고소해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차우셰스쿠가 그립다는 식으로 여론이 번복되었다.] 그러나 과거 공산주의를 택했던 소련에 대한 향수를 가지는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통합경제시스템 붕괴(53%), 강대국에 소속됐다는 느낌 상실(43%), 상호 불신 증가(31%), 친척·친구 관계 단절(28%), 자유로운 여행 불가(15%)를 꼽았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8912986|자료]] 이념적인 이유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블라디미르 푸틴도 소련 시절에 대한 대다수 러시아인들의 향수는 소련 자체가 돌아오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이라며 칼 포퍼의 명언을 패러디해 언급한 바가 있다. 현재 러시아 국민들의 대다수가 푸틴을 지지하는 이유도 다름아닌 공산주의 시절은 그리운데 진짜 그렇게 돌아가는 건 또 싫고, 그렇다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러시아 정서와 영 안 맞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만 놓고 보면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국가들이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옴으로써 마르크스가 말한 것, 그러니까 인류 역사가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로 나아간다는 것과는 반대가 된 셈이다... 물론 이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국가들이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날 전제조건에 하나도 부합하지 않았고 절차도 무시한 채 혁명을 일으켜 후진 농경사회에서 갑자기 사회주의 체제로 넘어갔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아무튼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사회주의 국가가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다는 점은 많은 사회주의 이론가와 운동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당장 대한민국만 봐도 원래 공산주의자였던 [[김문수]], [[이재오]], [[차명진]], [[박형준]], [[신지호]] 등등이 이를 계기로 전향하여 보수정당으로 들어갔다(...). 그마저도 자연스러운 단계적 이행이 아니고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위기를 겪게 될 것 때문에''' 억지로 자본주의를 도입했던 것이고, 현재 예전에 공산주의였던 국가들은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 알렉산드라 오카시오 코르테즈, 스페인의 포데모스, 아일랜드의 신페인, 그리스의 시리자 등등.], 스탈린주의 이론을 기준으로 보면 이들 정치세력은 그냥 '개량 반동'일 뿐이다(...). 1980년대부터는 주요 선진국들은 IT등 과 같은 첨단 산업과 신규 서비스업을 개화시켰지만 '''소비에트 체제로는 공업화 이상의 것을 하지 못했다.''' 소비에트 체제가 이룬 업적(성장, 복지 / 환경, 과학 기술) 등은 인정해야겠지만, 그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에도 비록 개혁개방을 하였으나, 여전히 민주적 자본주의 국가에 밀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