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기독교/한국 (문단 편집) ==== [[민족대표 33인]] 친일파 변절 조작 ==== 2010년대에 [[3.1 운동]] 당시에 [[민족대표 33인]]에서 [[불교]]신자인 만해 [[한용운]]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친일파로 변절했으며, 그중 대부분이 개신교도라는 루머가 널리 퍼졌다. 인터넷 상에서 검색되는 가장 오래된 해당 루머는 [[한겨레21]]에서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용운을 빼곤 모두 변절했다. 그 가운데 16명이 개신교 목사였다.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협력하는 대신 선교의 자유와 비영리 법인의 혜택을 받으며 서로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라고 주장하며 1920년대 반기독교 운동도 이것이 원인이라고 왜곡한 것이 검색된다.[[https://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0232.html|#]]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정말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은 [[박희도]], [[정춘수]], [[최린]] 등 3명밖에 되지 않는다.'''[[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3935.html|#]] 또한 1920년대 반기독교 운동은 [[조선공산당]]같은 [[사회주의]] 단체에 의하여 주도되었다.[[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851563|1920년대 중반 반기독교운동 연구]],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357182|192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와 기독교 관계에 관한 연구]] 기독교가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며, 일제강점기 시절 국내 인구중에서 개신교도는 1%밖에 되지 않았지만,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여는 16명이 [[개신교]]였을 정도로 기독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 커다란 비중을 맡았다.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기독교 독립운동가로 도산 [[안창호]], [[윤동주]], 백범 [[김구]], [[유관순]], [[주시경]]등이 있다. 일제는 [[제암리 학살 사건]]에서 제암리 교회당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불질러 학살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 회원과 평안도 개신교인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였다.[[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44058|동아시아에서 기독교와 민족주의 관계: 일제 시기 한국 기독교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263214|3·1운동과 기독교]],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794574|3·1독립운동과선교사들의 대응에 관한 연구]] 유명 역사강사인 [[설민석]]도 "민족대표 33인 대부분이 친일파로 변절했다"고 주장하며 룸살롱으로 비하해서 논란을 일으켰다가, 법원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