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달족 (문단 편집) == 후예? == 동로마 제국의 카르타고 재정복 이후 이들의 민족 정체성은 빠르게 상실되었다. 최정예 병력은 기병연대로 편제되어 對 페르시아 전선에 배치되었고 일부는 벨리사리우스의 정규 부대는 아닌 사병적인 성격이 일부 있었던 부대(Bucellarii)의 일원이 되었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 현지에 그대로 남아 현지인에 동화되었거나[* 현재도 [[튀니지]]나 [[알제리]]에서 적발이 보이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유전적 영향이 있었을 개연성은 있다. 실제로 알제리 등지에는 이들의 후손이 사는 도시가 있다.], 동로마의 각지로 분산 이주되었다고 한다. 9세기 초의 슬라브인 토마스의 반란 때, 반달족이 여러 민족들과 더불어 토마스를 지지했다고 나온다. 동로마인들이 유목민들은 스키타이, 투르크인들은 페르시아인으로 부르는 등, 예전에 부르던 명칭을 고집하거나 잘못된 명칭으로 부르는 사례가 있던 것을 감안해야 겠지만, 반달족들이 꽤 오랫동안 동로마 제국에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영어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Vandal_Kingdom|Vandal Kingdom]] 중, 'The surviving Vandals either '''assimilated into the indigenous African population''' or were '''dispersed among the Byzantine territories.'''' 및 ''''The best Vandal warriors''' were formed into five '''cavalry regiments''', known as Vandali Iustiniani, and stationed on the '''Persian frontier'''. Some entered '''the private service of Belisarius.'''' 및 'Most Vandals '''remained in North Africa and were absorbed into the native Berber population.''' In the words of historian Roger Collins: "The remaining Vandals were then shipped back to Constantinople '''to be absorbed into the imperial army'''. '''As a distinct ethnic unit they disappeared.'''"'] 제국이 반달족의 흔적을 빡세게 뿌리뽑고자 노력했기 때문인 것도 있다. [[가이세리크]] 때 제국에 여러 굴욕을 안겨주었고, 정통파(니케아-칼케돈) 교인을 제법 박해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보인다.[* 게르만계 왕국들 중 반달 왕국이 로마에 대한 승리 경험도 여럿 있었던 데다가 일단 아프리카라서 콘스탄티노플 입장에서 바다를 건너야 했기 때문에, 제국에 대한 종속의 정도가 가장 약했고 독립의 정도가 가장 강했다.] J. B. Bury라는 옛날 학자에 따르면 '''아예 반달 왕국이라는 게 없었던 것처럼'''(as if it[* it은 밑의 각주에 문장 전체가 실려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Vandal conquest'이다.] had never been)이라는 대목도 나온다. 실제로 탈환 후, 모든 재산권과 토지 소유관계를 반달 점령 이전으로 돌려놓으라는 지시를 제국 측에서 내렸는데, 그게 무려 거의 '''100년 전'''이다.(...) 반달족은 공직취임은 물론 재산소유도 금지되었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노예가 되었고 여자들은 로마군이 데려갔다고 하며, 칼케돈 정통파 교회가 원위치로 복원되었고 아리우스파 교회는 압수당하고 박해받았다고 한다.[* [[영어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Vandalic_War|Vandalic War(반달 전쟁)]] 중, 'The emperor was determined to restore the province to its former extent and prosperity — indeed, in the words of J.B. Bury, he intended "to wipe out all traces of the Vandal conquest, as if it had never been, and to restore the conditions which had existed before the coming of Geiseric". To this end, the Vandals were barred from holding office or even property, which was returned to its former owners; most Vandal males became slaves, while the victorious Roman soldiers took their wives; and the Chalcedonian Church was restored to its former position while the Arian Church was dispossessed and persecuted.']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