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문단 편집) == 그 외 == 반민특위가 입주했던 상공부 특허국 청사는 해산 후, 1963년 [[국민은행]] 창립으로 본점이 됐다가 1969년경 신관 건축으로 철거되었다. 1999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가 빌딩 1층 화단에 반민특위 사무실 터임을 알리는 푯돌(표지석)[* 글씨는 [[신영복]] 교수가 썼으며, 인터넷 친일청산운동 사이트 '한일문제연구회' 등의 주도로 인터넷 모금을 해서 비석을 세우는 데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106927|기여한 바 있다]].]을 제막했다. 원래는 정문 방향에 세우려 했지만 관계당국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의식하며 대로변에 세우지 말아달라고 하자 유치장 구역 터에 세운 것이다. 건물이 리모델링되면서 지하주차장 등지에 두 차례 이전됐고, 2017년에 해당 부지가 마스턴투자운용 및 미국 안젤로 고든 등에 팔려 호텔이 신축되면서 용산구 청파동2가에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존됐다가 대문에 세워졌다.([[https://www.seouland.com/arti/culture/culture_general/4946.html|한겨레 서울&]], [[https://www.nocutnews.co.kr/news/4477123|노컷뉴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71123120439014|프레시안]])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김희선(정치인)|김희선]][* [[월간조선]] 등 일부에서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이 친일파였다는 주장을 했으나 법원은 김의원의 의견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김학규 장군의 유족들 또한 월간조선에 반박하는 증언을 했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029|#]][[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77728|#]]] 의원, [[신기남]] 의원[* 신기남 의원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헌병으로 활동 한 후 광복 후 경찰에 입문했다. 계급은 [[부사관]]이었지만(일본 육군 헌병은 [[상등병|상등졸]]부터 선발한다.) 자원입대했기 때문에 자원입대해 [[일본군]]에 복무한 [[장교]]와 마찬가지로 명백한 친일파이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의 육군 헌병은 군사부문에만 경찰권한이 있는 현재 한국의 헌병과는 달리 민간조직사찰+해외정보수집의 임무를 띤 [[소련]]의 [[NKVD]] 비슷한 조직이었다. 여기에 있었다는 것은 사병이라도 단순히 일본군에 징집된 이들과는 전혀 다른 셈이다.] 등이 친일파 청산을 부르짖을 때(친일 재산 환수, 진상 규명 등), 이에 반대하는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에서 폭로하여 정작 그들의 부친이 친일파라는 논란이 벌어졌다. 다시 말해 친일파 처벌을 논하는 전통이 반민특위 해산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차라리 반민특위가 존속되면서 공정하게 논쟁했으면 벌어지지 않을 후유증이 이후에도 벌어진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