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불교 (문단 편집) === 반론 === 석가모니가 [[브라만교]]를 비롯한 다른 가르침(외도)들을 비판한 것은 어디까지나 지성적인 비판이었고 폭력이나 물리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애초에 누군가가 자신의 가르침이 옳다라는 의식이 없다면 남에게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가능한것인가? 그렇기에 '''자신의 가르침이 진리라 하고 타 가르침들을 외도라고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지적이랍시고 한 "불교에서 다른 종교에 관용적이라는 것도 우리가 진리이니 관용을 베푼다는 의미다"라는 말은 오히려 정확한 표현이고 비판받을 내용도 아니다. 애초에 자신의 사상이 옳다라는 의식이 없으면 새로운 사상이 생겨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그걸 잘못됐다고 얘기하면 뭘 어쩌란 말인가? 그것마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면 이 세상에 새로운 [[사상]], 새로운 [[종교]]는 애초에 탄생자체가 불가능하다. 새로운 사상이든 종교든 기존의 것에 대한 비판을 매개로 탄생한다. 또한 타 종교에 대한, 특히 기존 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종교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다. 불교도 기존 브라만교의 [[카스트]] 논리를 부정하며 탄생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상대가 와서 가르침을 청할 경우에만 설법을 하였지 묻지도 않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너의 믿음은 틀린 것이니 나를 따르라 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사실 석가모니가 브라만교를 외도라고 칭하는 것은 기독교로 치자면 [[예수]]가 바리사이나 사두가이를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또한 특히 불교계 내에서는 이단이라는 개념이 약한 것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전통 불교계는 선종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고 있는 구조였다. 이는 당연한 것이, 불교의 구원체계 자체가 독자성을 띄고 있으며 무슨 가르침을 받던 간에 [[XX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적멸만 이루면 상관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교리에 대해서 개방적인 상황이다 보니 대승 불교만 하더라도 다소 자유로운 철학적 사유가 마음껏 합쳐져서 다양한 종파가 태어나 발전할 수 있었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80929|#]] 이러한 정신은 아함경에서 석가의 말씀에서 비롯될 수 있다. >'''我不與世間諍,世間與我諍。所以者何? 比丘! 若如法語者,不與世間諍。'''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다투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만일 법다이 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雜阿含 제2권 37, 「我經」에서[[http://buddhaspace.org/agama/sub/37.html|#]] 이러한 정신은 불교를 국시로 했던 아쇼카 왕의 통일왕조의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인도 역사상 최초로 통일 국가를 완성한 후 불교의 정법에 의한 정치를 이상으로 했던 아쇼카(B.C.272∼232 재위) 왕도 비문 칙령에서, “자신의 종교만을 존중하고 다른 종교를 비난하지 말라.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종교를 성장시킬 수 있으며 또한 다른 이의 종교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행동이 그와 같지 않으면 자신의 종교의 무덤을 파는 것이며 또한 다른 이의 종교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모든 이의 종교의 교의에도 귀기울이도록 하라.”고 선언했다.[* '모든 종교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들 모두 순수함과 자제심을 갈구한다(아소카 칙령 Nb7 [[https://en.wikipedia.org/wiki/Edicts_of_Ashoka#Religious_exchange|#]])']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