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불교 (문단 편집) === 불경에 대한 비판 === 우선 [[불경]]의 문제점 중 하나가 석가모니가 입멸하고 난 뒤 초기불교 200년 동안 기록물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기불교가 석가모니가 죽고 난 뒤 제자들의 견해차로 분열되었는데[* [[제1차 결집]]에서 아난다와 마하가섭의 갈등이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2차 결집에선 상좌부와 대중부가 갈라지는 근본분열이 일어났다.] 수없이 오래된 구전으로 석가모니의 원래 말씀(다르마)은 상당부분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초기불교의 모습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부파 불교의 경전([[아함경]], [[니까야]])으로 간접적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더 나아가 [[자현]]은 [[상좌부 불교]]를 소승불교로 깎아부르며 오늘날에 초기불교 수행은 가능하지도 않고 저들은 다 사기꾼이라고 극언을 남기기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자현 문서 참조.] 이들 경전도 '원래 석가의 다르마와 다르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석가모니는 인도 동북부의 프라크리트로 말했던 것으로 여겨지나, 니까야를 기록한 언어인 팔리어는 인도 서부에서 사용되었던 프라크리트로 추정된다. 아함경은 산스크리트로 되어있으며 가장 많이 남은 판본은 한역본이다.]소리를 듣는 형편인데, 초기불교가 구전과 분열로 전해져오는 이상 진짜 다르마는 엄밀히 말하면 아무도 모른다. [* 당장 아함경과 니까야만 하더라도 [[대승비불설]]과 맞물려 이 두개가 친설이냐 아니냐 따져 논란이 심했고, 특히 니까야는 마하위하라 부파의 교조주의와 맞물려 신빙성이 의심되어 학계에서 위상이 작아진 경전이다.] 두번째로 상당부분 왜곡이 쉽게 이루어졌다. 수많은 [[불경]]이 존재했지만 만들어진 시기도 각기 다 다르고 오랜시간에 걸쳐 여러 국가들을 거쳐 번역되고 심지어 새로 쓰이기도 하며 각 나라에 존재하던 자기 나라의 문화와 토속 신앙들이 불교에 섞이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다고 해서 위경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불교의 정경들이 종교 중에서 친설과 가장 거리가 멀 뿐, 불교나 타 종교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제작된 위경은 존재한다. 복희외 여와를 보살로 왜곡했던 수미사역경, 공자, 안회를 보살로 노자를 마하가섭의 환생으로 보는 청정법행경, 대놓교 유교의 효 사상과 섞은 부모은중경이 그 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불경끼리 상충되는 내용들이 나오는 경우들도 있으며, 초기 경전에선 없던 개념이나 내용이 그보다 뒤에 만들어진 경전에서 새로 등장하며 석가모니의 말씀이라고 나오는 경우들도 있다. 즉, 원래부터 분열과 구전으로 전승되어왔던 다르마인데 거기서 후대 고승들의 연구로 불법이 전승된 셈이며, 그래서 사실 아래의 비판적인 내용들은 문화적, 역사적 산물로서의 불교에 가깝다. 석가모니가 자신마저 부정함으로서 불경 해석에 유연성을 부여한 점도 긍정적인 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불교 시절 인도의 [[아소카 왕]]은 비법파로 몰린 승려를 숙청했고 이는 '설일체유부'의 전신이 되었고, 이 설일체유부를 비판한 관점이 대승불교의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대승비불설]]의 뿌리가 되었다. 불경에 대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경에는 절대성이 존재할 수 없기에 후대 승려들의 저술들에 서로 상반된 구절이 존재하는 것도 왜곡이 아닌 깨달음을 위한 발자취나 혹은 발전이라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단지 석가모니의 교리를 해석해서 따랐을 뿐인데 2차대전때 많은 살생과 살육을 불러왔던 [[일련정종]]과 [[정토종]]은 그런 논리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