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불교 (문단 편집) === [[윤회]]에 대한 비판 === >'''若有故作業,我說彼必受其報,或現世受,或後世受。若不故作業,我說此不必受報。''' >만일 일부러 짓는 업이 있으면, 나는 그것은 반드시 과보를 받되, 현세에서 혹은 후세에서 받는다고 말한다. 만일 일부러 지은 업이 아니면, 나는 이것은 반드시 그 보를 받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ㅡ중아함15경 사경(思經) 업상응품(業相應品) 불교에서 업은 현세에 과보를 받는 업과 후생에 받는 업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의도가 수반되지 않는 업은 그 과보를 온전히 산출하지 못 한다. 그러므로 의도의 개입 여부는 불교 윤리학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불교]]는 모태가 되는 바라문교([[브라만교]])와 더불어 윤회설을 주장하는 종교 중 하나인데, 윤회설의 비판점은 '불평등 합리화'라는 차원에서 불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우선 명심해야 할 것은, 전근대 시기에서 신분제는 사회가 유지되는 데 공통 사항이었다는 것이다. 특정 인물들이 지식과 무력, 재화를 독점하고 사람을 부리던 때였고, 종교는 이를 합리화하는 도구였다. 당연히 전근대사회의 종교였던 불교도 분명히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분명한 점은, 불교의 업설은 불교 이전의 전통 바라문교의 업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되어 있다. 바라문교의 업설이 더 높은 카스트로 올라가기 위해 카스트 제도에 복종하라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다면, 불교의 업설은 윤리적인 색채가 강하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은, 악업은 고통을 장기적으로 일으키는 어리석음의 행위이고, 선업은 그 반대로 궁극적으로 행복과 자유를 초래한다는 의미이다.[[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6586|#]] 카스트에 상관없이 선업을 쌓으면 누구든지 부처가 되어 열반에 들 수 있다는 개념은 오직 브라만 계급만이 천상에 들 수 있다고 믿는 철저한 계급사회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사상의 전환이라 볼 수 있다.[* 바라문교와 힌두교의 뿌리인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은 본체적 실제인 브라흐마(梵)와 본체적 자아인 아트만(我)와 같다는 원리. 혹은 그러한 원리를 깨달은 경지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지만 미처 찾지 못하고 있는 참 자아를 발견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원리에서 윤회사상과 브라만 계급이 중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범아일여는 BC 6세기즈음에 여러가지 도전을 받게 되는데 그 중에서 석가모니는 범아(梵我)의 아(我)를 통째로 부정한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주장하였다.[[http://www.artnstudy.com/n_lecture/note/%EC%9D%B4%EC%A0%95%EC%9A%B0%EC%9D%98_%EC%84%B8%EA%B3%84%EC%B2%A0%ED%95%99%EC%82%AC_%EB%8C%80%EC%9E%A5%EC%A0%95_%E2%85%A3_%EC%95%84%EC%8B%9C%EC%95%84_%EC%84%B8%EA%B3%84%EC%9D%98_%EC%B2%A0%ED%95%99__%EC%9D%B8%EB%8F%84%C2%B7%ED%95%9C%EA%B5%AD%ED%8E%B8_01.pdf|#]]] 하지만 바라문교든 불교든 힌두교든 '''중요한 문제점은 업과 윤회라는 개념에 있다.''' 먼저, 현생에 겪는 고통은 전생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논리 때문에 '''현생의 차별과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인 차별과 지금 현재의 괴롭고 힘겨운 상황과 대우를 당사자 본인의 탓만으로 돌리는 데 이용되기 쉽다. 제 아무리 석가가 전생의 악업을 현세에서 어떻게 풀 수 있다고 한들, 전생의 업 때문에 나온 현세 자신의 개막장스러운 출신적 상황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또한 죽음과 함께 몸이 부서지며 기억이 단절되기 때문에 전생의 기억이 후생으로 이어지지 않는데, 기억나지도 않고 뭔지도 모르는 전생의 죄 때문에 현생에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게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불교의 윤회 사상이 정치와 결합하여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일이 많았다. 그중 한 경우가 왕즉불 사상으로, 본래 불교의 사상이 아니라 불교가 동아시아에서 왕권과 함께 정착하고 살아남는 과정에서 새로 생겨난 개념이다. [[불교]]의 [[환생]]설을 기득권의 논리로 해석하면 왕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쌓은 공덕이 많기 때문이고, 귀족으로 태어난 것은 왕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전생에 쌓은 공덕이 많았던 것으로 합리화하기 유리하고, 여기에 왕즉불 사상까지 가면 지배자는 불교를 후원하는 만큼 무제한적인 충성 세력과 집권의 합리화가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과거 왕실에서 불교를 많이 후원했던 것 또한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봐도 설명이 가능하다. 비롯한 동북아에 불교가 들어올 때 처음에 반발하던 지배층들이 오래가지 않아 불교를 쉽게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가, 업설이 신분제를 합리화하는데 토속신앙보다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 도래 이전 토속신앙에 기초한 신정일치제 시절의 경우, 왕은 신의 자손으로서 집권할 수 있지만 동시에 리스크도 컸다. 외부 세력의 침략에 패배하거나, 자국이 이겨낼 수 없는 수준의 천재지변이나 역병 등 재해가 닥쳐오거나 하면 신의 자손이라는 지배자의 신성한 권능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피지배층의 충성심이 흔들리고, 이게 반복되면 안정적인 충성의 기반이 흔들린다. 당장 한국사만 봐도 과거 부여에서는 재해가 들면 왕을 죽여버렸다. 인도의 경우, 바라문교가 대중적이던 고대부터 힌두교가 대부분인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참혹한 인권 탄압의 좋은 도구가 되어왔으며, 카스트 제도에 반발해 나왔다는 불교조차 신분제를 완전히 철폐하지 못했다. 그리고 불교를 믿었던 마우리아 왕조, 쿠샨 왕조 조차도 500년 동안 고치지 않았다. 애초부터 아소카 왕과 카니슈카 대제가 불교를 국교로 세운 건 신분제 사회 유지였지 평등 사회 건설이 아니다. 다만 근래에 들어 윤회 자체는 불교의 자체 가르침에도 상충하고 초기불교에서 변질된 잘못된 믿음이라는 설이 학계에서 떠오르고 있다. 여러 삶을 넘어 윤회을 하는 본질적 자아([[진아]], 아트만)의 개념은 깨달음과 상충된다(무아, 비아, 아나트만)는 가르침이 초기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었고, 윤회를 하지 않고도 누구든 현재 삶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석가모니 당시 불교의 인기 원인 중 하나였다. 숫타니파타 등에도 진아와 깨달음의 연관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데에 비해 상좌부 불교의 아함경부터 다시 나타난 업과 윤회 사상은 정확히는 명백히 교리에 상충하면서도 정치적 이유로 사람들이 믿어온 비불적 이중사고라고 볼 수 있다. [[이슬람교]]의 발흥기에 칼리프들이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지역에서 불교를 극렬히 탄압했던 이유도 불교의 윤회설에 있었다. 이들은 윤회를 논하는 불교를 [[마니교]]의 일파로 보아 이단시했으며, 알라의 영혼 심판에 대한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수피]] 공동체, [[시아파]] 일부, 동남아시아 무슬림들은 윤회를 지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