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장전쟁 (문단 편집) === 군벌이 할거한 중화민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hinese_warlords_1925_with_Korean_caption.jpg]] 1925년 당시의 중국 군벌이 지배한 영역을 표시한 지도. 적색 지역이 다 군벌들이 다스리는 땅이다. 광둥 쪽의 파란색이 국민당 정부. 광시 쪽의 파란색은 국민당에 합세한 군벌 [[리쭝런]] 등의 영지다. 산시는 [[옌시산]], 산시 옆의 ㄷ모양의 영지는 [[펑위샹]], 산둥과 만주를 차지한 것은 [[장쭤린]], 우한 쪽은 [[우페이푸]], 푸젠~저장은 [[쑨촨팡]], 그외에 쓰촨의 [[류샹]]과 윈난의 [[룽윈]] 등이 보인다. 다만 소소한 오류가 보이는데 예컨대 하남성은 1925년 시점에서 [[우페이푸]]의 영역이었으며 국민혁명 이후 펑위샹이 국민혁명군 제2집단군 총사령에 취임하고 나서야 펑위샹의 세력권에 들어왔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86px-Chinese_civil_war_map_02.jpg]] [[북벌]] 직후의 지도. 파란색을 난징정부, 만주가 [[장쉐량]], 광서가 리쭝런, 그 외에 펑위샹, 옌시산의 이름이 보인다.[* 지도에는 난징 10년의 지도라고 적혀 있지만 불과 1931년에 장쉐량이 [[만주사변]]으로 실각하고, 1930년 펑위샹이 반장전쟁으로 실각하여 풍계군벌이 와해되는 등 이후 영토 변동이 심했으며 1937년 시점에서는 국민정부의 지배력이 [[초공작전]], [[대장정]] 추격, 국방건설 등을 통해 광동, 광서, 운남, 사천, 귀주에 이르게 되었다.] 문제는 위의 지도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듯이 군벌들이 차지한 땅이 [[전국시대]]의 각 제후국이 차지한 영토보다 넓었다는 점이다. 처음 북벌을 시작했을 때의 국민당 장악 지역은 광동성을 중심으로 한 남쪽에 있는 청색으로 칠해진 작은 지역에 불과했다. 국민혁명군은 북벌 과정에서 각 군벌들을 상대로 역치, 즉 깃발을 바꿔 달아 국민정부에 복종할 것을 요구했는데 쑨촨팡, [[장쭝창]]처럼 듣지 않고 토벌된 이들도 있지만 상당한 숫자의 군벌이 국민정부에 합류했다. 이들은 말로는 [[삼민주의]]를 순봉하고 [[국민정부]]에 충성한다고 했지만 대다수는 과거의 군벌 근성을 버리지 못한 야심가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회유에 따른 국민정부 합류 이후에도 대부분의 군벌들은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실상 독자적인 통치를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국민당으로 '''완장만 바꿔 단 셈'''이다. 여기에 무대는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중국. 그래서 내전이나 반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정부군이나 반란군이나 수십만의 대군을 일으켜서 그야말로 치열한 교전을 펼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