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장전쟁 (문단 편집) === [[편견회의]] === [[국민당의 2차 북벌]]로 1928년 6월, 베이징을 점령한 [[장제스]]는 오랜 세월의 내전 동안 지나치게 비대해진 국민혁명군을 재편하는 데 착수하였다. 당시 국민혁명군은 84개 군, 3백 개 사단으로 팽창하여 군인의 수는 220만 명이 넘었다. 거기다 이 숫자는 [[장쉐량]](張學良)의 동북군과 운남, 사천의 지방군을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여기에 연간 국가수입이 4억 5천만 원으로 이중 외채 지불액을 제외하면 3억 5천만 원 정도였는데 이중 3억 원이 군비로 사용되고 있었다. 때문에 1929년 1월, 국민정부는 난징에서 [[장제스]]를 위원장으로 [[편견회의]](編遺會議)를 열어 군대 재편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1. 전국을 6개의 편견구로 나누어 통괄한다. >2. 전국의 육군병력은 보병 65개 사(師, 사단), 기병 8개 여(旅, 여단), 보병 16개 단(團, 연대), 공병 8개 단의 계 80만 명 이하로 한다. >3. 군비는 국가 총수입의 4할을 초과하지 않는다. 라는 내용을 결정하고 1월 25일 회의를 마쳤다. 이렇게 줄이고 줄였지만 80만이라는 수는 상비군으로서 세계 최대 규모였다. 그나마 이 이상은 줄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감축도 되지 않아 중국 전역에 200만 이상의 병력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세한 것은 [[편견회의]]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