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렌스 (문단 편집) ===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와 사망 === 378년 7월, 발렌스는 서방 로마군 소속 이탈리아 군대를 지휘한 세바스티아누스 장군을 선발대로 파견해 트라키아 주둔군을 재편성하게 했다. 세바스티아누스는 트라키아군을 재편성하고 2천 규모의 기병대를 이끌며 고트족을 습격해 하드리아노폴리스로 접근하던 고트족을 축출했다. 한편, 그라티아누스는 서방 로마군의 정예부대를 판노니아 일대로 진출시키다가 라인강 일대에 있던 알레만니족이 침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황급히 부대를 소환하여 아르겐타리아 근교에서 알레만니족을 격파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라티아누스의 합류가 늦어졌고, 발렌스는 적의 규모를 과소평가하여 자신이 단독으로 고트족과 맞붙기로 결심했다. 378년 8월 9일, 발렌스는 약 1만 5천에서 3만명에 달하는 로마군을 이끌고 고트족 1만 5천명과 맞붙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프리티게른]]의 절묘한 지휘에 휘말려 약 1만에서 2만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말았다. 역사가 암미아누스는 발렌스의 최후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제시한다. 하나는 발렌스가 화살을 맞아 치명상을 입었으며,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장례도 치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발렌스가 부상을 당한 채 작은 오두막집으로 옮겨졌다가 고트족에게 산채로 태워 죽었다고 한다. 또한 기독교인 역사학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들은 발렌스가 어느 마을에 숨어있다가 불에 타 죽었다고 증언했고, 어떤 이들은 그가 황제의 가운을 벗은 후 전장터 한가운데로 달려갔다가 살해당했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