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트어파 (문단 편집) == 기원과 역사 == [youtube(7dq9-F4Hb_s)] [[인도유럽어족]] 중 동유럽의 [[드니프로 강|드네프르 강]]과 [[다우가바 강]], 중유럽의 [[비스와 강]]과 [[오더 강]] 유역에 정착한 일파를 발트어파의 기원이라고 본다.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2천 년 무렵, 이들은 서쪽으로는 비스와 강과 오더강, 동쪽으로는 오늘날 러시아 유럽 영토 서부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거주했다. 심지어 볼가 강 상류와 우랄 산맥 일대에도 이들의 일파가 이주해 정착한 것 같다. 슬라브족이 팽창하며 발트족 대부분은 슬라브족에 흡수되었는데, 특히 오늘날 [[벨라루스인]]이 발트어족의 언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많이 물려받았다. 청동기 시대부터 발트어족이 거주했던 동유럽 내륙 지역에서 서기 400년부터 800년 사이에 화재로 전소된 마을이 많이 발굴되므로, 슬라브족은 발트족을 무력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흡수한 듯하다. 다만 [[키예프 루스]] 초기때까지는 아직 발트계 언어를 쓰는 종족들이 다수 남아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남은 발트족들은 슬라브인, 튀르크인, 핀인과 혼혈되고 언어적으로 [[고대 동슬라브어]]를 쓰기 시작하며 현 러시아인의 기원이 되었다. 해안 지방의 발트어파 계열 민족들은 주로 [[호박(보석)|호박]][* 채소 말고 보석이다.]을 수출하며 비교적 번영을 누렸기 때문에, 중세 초 슬라브족에게 동화됨을 피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 의하면, 고대로부터 이런 [[호박(보석)|호박]] 무역이 성행했던 모양이다. [[파라오]]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부장품 중에 [[발트 해]] 일대에서 가져온 호박 장식품이 꽤 있는데, 발트어파 계열 민족들과 [[이집트인]] 간 호박 무역을 주로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 상인들이 중개했다. 이들이 중개 무역을 위해 [[북유럽]]까지 들어가는데 이용한 무역로를 [[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B%B0%95%EC%9D%98_%EA%B8%B8|호박의 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렇게 잔존한 발트족 상당수도 중세 [[독일]]의 [[동방식민운동]]으로 많은 수가 [[독일인]]과 동화되었다. 독일의 [[튜튼 기사단]]이 식민화하기 전까지 그리스도교의 성직자들이 [[고대 프로이센|프루스인]]들에 대해 남긴 기록을 보면, 발트 민족은 고대 [[켈트|켈트족]]이나 [[베다 시대]]의 [[아리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사제들이 사회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었던 듯하다. 사제 다음 가는 계급은 부유한 자영농 전사였다. [[발트족|발트어파 계열 민족들]]은 그리스도교 개종 이전에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켈트족이나 [[그리스인]], [[인도인]]과 마찬가지로 전통 신화를 구전으로 전수했다. 그리스도교화된 뒤에도 농촌에는 그리스도교와 함께 몰래 전통신앙을 믿는 이중신앙 문화가 있었던 덕에, [[리투아니아인]]과 [[라트비아인]]의 구전 설화가 보존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