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해 (문단 편집) == [[발해/역사귀속과 계승인식|역사귀속과 계승인식]]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발해/역사귀속과 계승인식)] 발해는 현재까지도 밝혀진 기록과 정보가 굉장히 적은 고대국이다. 그에 따라 역사 귀속 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국가인데 해외학계에서 발해는 확실히 한국의 역사로 여겨진다. 하지만 중국 사용자가 굉장히 많고 누구나 수정이 가능한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한국어, 영어, 한자 표기가 되어있는 고구려와 달리 발해는 한국식 발음으로 문서제목이 올려져있고 문서 내내 한국어 발음과 중국어 발음, 러시아어 발음이 병기되기도 한다. 한국계의 관심이 적어진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그로인해 영어 위키백과의 발해 문서에선 [[수정전쟁]]이 벌어지곤 한다. [[https://en.m.wikipedia.org/wiki/Balhae|#]] 오늘날 [[중국]]에서는 발해를 [[고구려]]와 함께 [[중국사 관련 정보|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여, 당나라의 지방정권 혹은 말갈족의 나라로 주장하는 [[동북공정]]을 진행 중에 있으며, 고구려와 발해 성곽을 만리장성의 일부로 판단하여 복원 계획에 포함시키거나, [[당나라]] 황궁인 [[대명궁|함원전]]보다 더 컸다는 [[상경용천부#s-3.1.3|상경성 제2궁전지]]는 중국 정부에서 비공개로 보수 작업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 대한 사진도 공개되지 않아 더 연구해야 될 부분이 많다. 지금은 중국 사회과학원고고연구소가 발행하는 잡지에 실린 짤막한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616024004|발해 비문]] 정도를 통해 일부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한중사 편입 논쟁은 후술된 한·중 역사 논란 항목으로.). 특히 중국은 한국뿐 아니라 [[북한]] 고고학계에도 철저히 비공개한다고 한다. 북한에 초대받아 북한 유적을 널리 답사한 [[유홍준]]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의하면 북한 고고학자는 애초에 중국 입국비자를 안 내줘서, 만주지역 답사는 오히려 북한 학자보다 한국 학자가 더 자유롭다고 한다. 물론 한국 학자의 고구려, 발해 유적지 답사도 막거나 방해한다고는 하지만[* 모 고대사 전공 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입국하는 순간부터 출국하는 순간까지 매 순간 감시가 붙는다고.] 유적지 근처에서 접근을 방해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지 일단 중국 입국은 쉽게 할 수 있으니 그럭저럭 유적지 답사가 가능하지만 애초에 북한 역사학자는 중국 국경선 자체를 못 넘는다. 중국과 북한이 서로 우호국가라는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북중 학자끼리 고대사 교류도 서로 거의 없다고 한다. 북한도 북한 지역에 있는 북청군 청해토성, 청진시 청암구역 유적 등 발해 유적을 나름대로 발굴조사하고 있다는데 애초에 북한 지역이 발해의 중심지가 아닌 남쪽 변방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중요 유적이 적어서 한계가 있다. 아마 중국의 동북공정이 북방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지리적 이유로 한국보다 북한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 러시아에서는 발해를 자국의 퉁구스족과 연관지어 발해를 퉁구스족의 첫 국가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는 동북공정처럼 역사왜곡을 통해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당연히 아니다. 애초에 한국에서도 발해를 말갈과 고구려 유민이 공동으로 세운 국가로 본다. 다만 고구려 유민이 말갈인들보다 국가 건설에 더 영향을 미쳤다고 볼 뿐이다.]. 어찌됐던 발해는 건국 당시부터 여러 민족이 섞인 다민족 국가였으며 발해의 정보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대조영과 지배계층의 민족 구성에 관한 논쟁은 현재진행중이며 따라서 아직까지 완벽하고 확실한 정설은 없으나, 고구려를 계승하려고 했다는 점 만큼은 분명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