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수원 (문단 편집) == 여담 == * 선판규 씨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깊은 분인데 소설가 한창훈의 회고에 따르면 계엄군에게 구타당하는 시민을 뛰어들어 구해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계엄군에 붙잡혀 교도소에 갇힌 이상윤의 동생을 찾으러 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맞닥뜨린 적도 있다. 당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는 학교와 운동장이 광주시내 한복판 [[금남로]]에 있었기에 혼란을 피하고자 광주 도심에서 떨어진 [[광산군]]의 한 학교에 모여서 연습을 했고 연습이 끝나면 [[선동열]]의 아버지 선판규 씨가 운영하던 송정여관에서 쉬고 있었다. 당시 방수원은 [[영남대학교 야구부|영남대]] 재학 중이었는데 광주 집에 잠시 왔다가 대구 학교로 가는 길이 막혀버리면서 혼란을 겪었고 이 사정을 아는 선판규 씨가 후배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지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 그러던 중 광주일고 선수 중 한 명이[* 방수원이 회고하기로는 선동열과 동기였던 포수였다고 한다.] 야구 유니폼을 입은 채로 친구를 만나러 나갔는데 그 선수의 친구가 지나가던 계엄군 트럭에 대고 욕을 한 뒤 도망쳤다고 한다.[*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김병현]]이 군인에게 [[뻐큐|법규]]를 시전하는 걸로 묘사된다.] 이 광경을 계엄군 장병이 못 볼리 없었고 도망친 이들 중 1명이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에 계엄군은 근처에 있던 광주일고 선수들에게로 향했고 선수들은 여관으로 도망쳤다. 기어이 여관까지 찾아온 계엄군은 당시 욕을 하고 도망친 사람이 방수원이라고 오해한 탓에 그의 배에 대검을 들이대며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선판규 씨가 계엄군을 향해 무릎을 꿇고 빌면서 "내가 선동열 애비 되는 사람이오. 얘들은 [[야구]]만 하는 애들이라 아무 것도 모른다. 내가 아이들에게 계엄군을 만나더라도 아는 척 하지 말고 고개 숙이고 다니라고 잘 일러뒀다. 우리 아이들이 절대 계엄군에 욕했을 리가 없으니 살려만 주시오."라며 호소했다. 그때 마침 고교야구 마니아였던 계엄군 모 장교가 [[선동열]]을 알고 있었고 선판규 씨의 말을 믿고서 부하들을 데리고 철수했다. 군인들이 떠난 뒤 선판규 씨는 친구와 외출했던 그 선수를 죽도록 두들겨 팼다고 한다. 방수원의 회고에 의하면 '''거리에서 군인에게 시민이 죽는 걸 본 터라''' 자신도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고. * 한 번은 강판을 요구하는 [[김응용|코감독]]에게 안 내려가겠다고 개기다가[* '''한 타자만 잡으면 [[세이브(야구)|세이브]] 기록이 눈앞이라''' 그랬다고. 2루까지 도망갔다고 한다. 김응용은 너무 창피해서 다음부턴 투수교체 때 [[유남호]] 코치나 [[김인식]] 코치 등 투수코치를 올리고 본인은 마운드에 잘 안올라갔다고 한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당시에는 이기는 것에만 몰두했지 선수 개인기록을 챙겨주지 못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자신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 듯.] 덕아웃으로 끌려와 경기장에서 코감독에게--코찌검-- 맞기도 했다.[* 김성한과 김종모가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방수원이 잘 던지는 상황이라 관중석에 수많은 관중들도 목소리를 높여 강판하지 말라고 외치는 바람에 천하의 김응용도 별 수 없이 덕아웃으로 돌아가야했다. 그러나 감독으로 권위가 무너졌다 생각한 코감독이 열받아 살인예고(코감독 : 너 이 [[개새끼|개xx]] 덕아웃에 들어가있어.)를 하자 그걸 듣고 겁이 난 방수원이 기회를 틈타 경기장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코감독 : 이 [[새끼(비속어)|xx]] 어디갔어?) ] 방수원이 [[전설의 타이거즈]]에 나와서 선술했듯이 2019년 12월 코감독의 팔순연에서 앙금을 풀었고[* 김응용 감독이 한대화와 방수원을 자리로 불러서 '감독직을 내려놓고 야인으로 살면서 과거를 돌아보니 감독 당시에는 왜 그렇게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들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말을 하자 방수원은 가슴에 응어리졌던 게 눈녹듯이 녹아내렸고 마치 40년간 징역을 살다가 풀려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 당시 개긴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그 때는 [[투승타타]] 시절이라 선수 입장에서는 그런 기록 하나에 연봉협상이나 계약이 좌지우지되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 노히트 노런을 하던 날은 원래 [[MBC]]에서 타 구장의 라디오 중계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우천취소로 인해 스케줄이 변경되어 급하게 광주 중계로 수정되었고 [[광주MBC]]의 아나운서가 급하게 전국중계를 한 일화가 있다.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462374000576455131|김형주 전 광주MBC 아나운서의 기고글]] * 원래 이름은 '''방승원'''[* 과거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는 승환으로 나왔으나 [[2021년]] [[10월 30일]] 공개된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해 방승원이었다고 밝혔다.]이었다. 방수원은 국민학생 시절 잃어버린 동생의 이름인데, 호적 정리를 하던 아버지가 그만 멀쩡히 살아있는 승원의 호적을 말소하는 실수를 범하셨고, 그래서 동생 수원의 이름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나온 본인의 인터뷰에서는 산불이 나서 자신의 초등학교 입학 원서가 불타 있었는데 그 때 동생의 것을 대신 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현역 시절 [[해태 타이거즈|해태]] 투수로 활약하는 것을 본 동생이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야구장]]에 찾아와 16년만에 이산가족 상봉에 성공'''했고, 원래 이름이 방수원이던 동생은 방득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020&aid=0002025530|동아일보 인터뷰]] 동생을 찾아 너무 흥분된 상태라 도저히 오늘 시합을 뛸 수 없다고 코감독에게 말했더니 '저리 가!이 xx야!라고 받아친 코감독의 반응이 백미다. * 깡마른 외모가 마치 원숭이나 외계인을 연상케 한다며 [[혹성탈출]], [[E.T]], 원숭이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고[* 방수원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어린이들이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본인을 그렇게 불렀겠냐고 웃어넘겼다.] 생김새와 이름 석자를 이용해서 [[방글라데시|'''방'''글라데시]] '''수'''입산 '''원'''숭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다. 김성한이 추가로 말한 별명은 방수엘라. 이 때문에 그런지 나이가 든 지금은 노안 속성까지 생겼다. * 1980년대 중반 이후 해태 내에서도 이리저리 밀려다닌 탓에 다른 팀으로부터 이적 제의도 받았다. 그러나 먼저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한 선배 [[김일권]]이 해태 덕아웃으로 찾아와서 "많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도 늘 승리를 거두는 팀에 있어라. 이기는 재미가 없으니까[* 김일권이 당시 몸담았던 태평양은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부터 [[만년 꼴찌]]였다. 선수 말년이던 1989년에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으나 그 해 뿐이었다.] 야구에 의욕이 없다. 돈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단념했다고 한다. 김일권이 해태 초대 [[군기반장]]을 맡던 시절 집합을 걸어서 선수들에게 "오늘 게임같이 플레이해서 지면 팬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 내일 게임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이기자"라고 독려를 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였다.[* 김일권은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모두 겸비했는데 늘 항상 선수들의 선두에 서서 구단과 맞서며 선수들의 권익 보호에 힘썼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선수였다. 참고로 해태의 2~5대 군기반장은 [[김성한]], [[이순철]], [[송유석]], --[[이호성]]--으로 이어진다.] * [[김병현]]의 언더스로 투구폼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김병현 선수생활 문서 참조.] 김병현이 무등중 재학시절 유소년 유망주를 보기 위해 무등중을 찾았던 방수원이 언더스로 투구폼으로 놀고 있던 김병현에게 언더스로로 던져볼 것을 권유했고, 언더스로로 던졌을 때 볼이 더 잘 나가는 걸 발견한 김병현도 결국 오버핸드에서 언더핸드로 투구폼을 바꾸게 된다. * [[2003년]] [[7월 3일]][* 신고된 시각은 새벽 3시 40분경.] 재즈바를 경영하던 시절에 40대 김 모씨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건물 주차장 철판 아래로 추락한 모습을 보고 119에 신고했었다. 이 사건은 2003년 9월 2일에 방영된 KBS2 긴급구조119 2003 야~ 이제 자자! 편 에피소드로 방영되었다. [[https://youtu.be/L2S5iziSobg|#]] [[https://youtu.be/id7nnnxnadU|#]] [* 사고 당사자는 MBC 서프라이즈 배우 최윤준이, 방수원의 대역은 정종현이 연기했다. 에피소드 말미에 광주서부소방서의 오성록 구급대원이 지나친 음주가 얼마나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고사례였음을 말해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