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아친 (문단 편집) == 생애 == 후한서 열녀전과 위서 방육전 주석 황보밀의 열녀전에서 주천의 열녀로 소개되어있다. 아버지인 조안(=조군안)이 이수라는 자에게 살해되자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었으며, 자신과 함께 복수하려는 남동생 세 명이 역병으로 사망하면서 이수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방비를 게을리해 아들인 [[방육]]이 이 사실을 보고받았다. 밤낮으로 이수를 죽이기 위해 준비하는데, 인근 마을에 서씨가 역으로 해를 입을까봐 걱정하거나 하인들이나 향리에서 모두 비웃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복수를 다졌다. 179년 2월 상순에 이수와 조우하자 수레에서 내리면서 말을 타던 이수를 가로막아 그를 공격하면서 죽이는데 성공해 복수했다. 이수의 목을 들고 자수해 옥사로 들어갔으며, 녹복현의 장이었던 윤가가 차마 처벌하지 못해 석방하려고 하자 처벌을 내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관원들이 공식적으로 석방하지 않았지만 돌아가라고 은밀히 얘기하면서 편의를 봐주자 처벌을 내려달라고 해 그 뜻을 바꾸지 않으며, 이에 윤가가 강제로 수레에 태우자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침 사면이 행해져 방아친의 죄가 없어졌다. 양주자사 주홍, 주천태수 유반 등이 그 열의를 칭찬하면서 석비를 세워 칭송하였다고 하며, 태상 장환은 방아친에게 비단 스무 필을 보냈다고 한다. 황문시랑이었던 양관이 방아친에 대한 일을 기록하였다. 이때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5년 전이니 삼국지 시대와는 살짝 거리가 있는 시기에 행적을 남긴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