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통 (문단 편집) == 평가 == >'''방통은 평소 인재를 견줘보는 것과 경학(經學), 사모(思謀-모책을 생각함)를 좋아하니 형(荊), 초(楚) 땅에서 그를 고준(高俊)이라 일컬었다. 위나라 신하에 견주자면 방통은 [[순욱]]의 중숙(仲叔-형제, 막상막하)이고, [[법정(삼국지)|법정]]은 [[정욱]], [[곽가]]의 주려(儔儷-견줄만한 짝, 동류)이다.''' >---- >'''[[진수(역사가)|진수]]''' >'''군사는 덕행이 지극한 인물로 풍이한 기질이 빛난다. 영명한 군주에게 목숨을 바치고 가슴으로부터 충성을 다했다. 이 인의를 근본으로 삼아 몸을 죽여서라도 은혜에 보답했다.''' >---- >《계한보신찬》 [[제갈량]]이 정석을 기반으로 한 완벽하게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정파(무협 소설)|정파]]같은 전략을 세운다면, 방통은 대담하고 '''훨씬 유동적인 상황 변화에 따른 전략'''을 세우는 데 능해 마치 [[사파(무협 소설)|사파]]와 같은 전략을 많이 세웠다. 진수는 방통을 두고 평가할 때 조조가 "자신의 장자방"이라 일컬을 정도로 위나라 개국공신 1순위인 [[순욱]]과 막상막하라고 평했다. 또한, 진수는 법정에 대해 [[정욱]], [[곽가]]에 비견된다고 하였는데, 제갈량과 함께 방통과 법정은 익주시기 유비 진영의 핵심 참모, 모사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었으며 진수는 방통과 법정을 같은 전에 두어 두 사람을 동류로 보았으나 그가 비교한 대상을 비교해보자면 방통 쪽을 좀 더 높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시 말해 법정은 계책을 잘 짜내는 모사로서 인정한 것이고, 방통은 순욱처럼 나라 전체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대신의 위격으로 본 것이다. 와룡과 봉추의 비유처럼 두 사람은 서로 뒤떨어짐이 없는 천하의 기재인 셈이다. 관직에 출사하기 전, 방통에 대해 높이 평가했던 것은 [[방덕공]]과 [[사마휘]]였고 이들은 방통에 대해서 제갈량과 쌍벽이라고까지 말했다. 방통은 형주와 양주의 이름있는 선비들과 교류하며 명성을 쌓았는데 그럼에도 임관한 뒤 주유와 유비 밑에서 시시한 관직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물을 알아보는 눈이 뛰어나다고 일컬어지던 유비가 노숙과 제갈량의 추천으로 직접 방통을 대면함으로 인해 방통의 인생은 피게 되었다. 유비는 사마휘, 방덕공과 마찬가지로 그의 능력이 최소 행정 능력을 배제하고 전략적인 면모와 포부 및 재능만 보면 제갈량과 비견된다고 파악하여 제갈량과 버금가는 대우를 하였고, 그를 제갈량과 나란히 군사중랑장으로 임명하였다. 방통이 살아있었더라면 이미 당시에 제갈량과 동급인 군사중랑장 대우를 받은 데다가 촉 정벌에 뒤따른 군공까지 추가되었다면 제갈량과 나란히 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오히려 제갈량 이상 가는 대우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제갈량이 방통과 엮어서 평가한 [[요립]]은 이후 서민으로 강등되었고, 방통의 천거를 받고 승승장구하던 [[팽양]]을 좌천시켰기에 방통에 대한 제갈량의 평가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요립과 팽양이 좌천된 것은 제갈량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립은 자신의 재주와 명성이 제갈량 다음간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유비의 사후 중용되지 못하고 이엄의 수하의 위치가 되자 조정에 불만을 제기하다 유배당한 것이고, 팽양은 역모를 꾸민 혐의가 있어서 좌천된 것이다. 애시당초 제갈량과 방통은 서로 사마휘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고 [[노숙]]이 유비에게 방통을 추천하자 제갈량 역시 그에 동조했던 만큼 제갈량은 방통을 높게 보고 있었다. 게다가 적어도 저 둘과는 달리 방통은 유비와의 연회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주의 심정을 능란하게 파악해 냉각된 분위기를 푸는 분위기메이커로서의 능력도 정사에 보인다, 성품면에서도 저들과 비교가 불가한 수준인 것. 실제로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 방사원을 찬(贊龐士元)하길, '군사(軍師, 방통)는 덕행이 지극한 인물로, 풍아한 기질이 빛난다. 영명한 군주에게 목숨을 바치고, 가슴으로부터 충성을 발했다. 이 인의(仁義)를 종주로 하여 몸을 죽이고 은혜에 보답했다.' 라고 평하고 있다. 군사에 뛰어난 것은 방통이며, 정치와 국가적 발전에 뛰어난 것은 제갈량이라는 설이 있다. 남중 평정 이전까지 군권을 맡은 적이 2차 증원군으로 익주에 들어왔을 때 1번밖에 없는 제갈량에 비해서 방통은 들어오자마자 서촉 정벌군의 참모이자 실질적인 군의 수뇌부가 되었기 때문. 그가 군을 이끌고 서촉을 정벌할 때 거듭하여 큰 군공을 세운 점을 감안하면 신빙성이 있는 것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방통이 유비에게 올렸다는 헌책들은 매우 뛰어난 기책들이었는데, 유장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유장을 사로잡아야 한다든지 또는 정예병을 뽑아 수도를 급습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들이었다. 이는 정략에 가까운 책략인데 주로 정공법을 토대로 하고 여기에 간간이 군사적 기만책을 섞는 방식을 선호하였던 제갈량과는 다른 병법 운용이다. 이는 유비 사후의 촉한에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방통이 즉각적인 실효를 낼 수 있는 전략, 전술에 더 능하고 제갈량은 큰 그림을 그리고 기반을 다져 천천히 목표로 나아가는데 더 능한 것으로, 축구에 비유하자면 방통은 갖가지 시도를 통해 부진한 성적을 반전시켜 곧바로 승리를 가져오는 데 능한 유명 클럽 구단 감독 같은 인물이고, 제갈량은 당장 효과는 안 나와도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발굴하고, 강하게 훈련시켜 어떠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적을 내는 하나의 팀을 만들어내는 국가대표 감독과 같은 역할에 능했다 할 수 있다. 보통 제갈량의 군사능력에 진수의 '임기응변의 장략' 떡밥을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 1차 북벌의 조운의 의군으로 조진의 본군 묶기-본대 기산 급습공격 플랜이나 2차~3차 북벌연계로 무도-음평 탈취, 5차북벌의 허를 찌르는 오장원 둔전 및 북원 공격 등 대국적인 군 운용에서라면 기만적인 운용을 상당히 많이 선보인게 제갈량이다. 다만 제갈량은 튼튼한 민정을 통한 군비확충, 그리고 그렇게 준비한 군비를 바탕으로 [[팔진도]]로 대표되는 정석적인 전군 통솔력에 군사적인 능력의 기반을 두고 있다면,[* 원래 정치와 군사는 다른 방면같지만, 전략가의 관점에서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이라고 본 적이 있으며, 강한 군대는 원래 튼튼한 산업과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근면한 국민들의 기풍, 꾸준한 신무기 개발, 공정한 상벌을 바탕으로 갖추어지는 것이다. 제갈량은 전투의 승리는 전술보다는 전략적인 관점에서 판가름난다고 보았고, 그렇기에 전쟁준비 단계인 민정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책을 수립했던 것이다. 현실에 대입해봐도 아무리 뛰어난 장군진과 많은 병력이 있어도 그걸 뒷받침하는 민정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하면 아무리 작전을 잘 짜도 실전에서 무기도 식량도, 훈련도도 부족해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비근한 사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가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도 효과적인 전력을 구축할 수 있는 민정 시스템이 망가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건을 가지고 상대의 틈을 노려 모험적인 시도도 불사하는, 저런 허를 찌르는 정략, 기책, 책략류는 확실히 방통의 것이었고 이는 분명 제갈량과 대조적이었다. 물론 이릉전의 대패로 그동안 애써 키워왔던 신진 유망주들과 병력 군수물자들을 말아먹은 상황에서 안전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도 제갈량의 군사운용에 영향을 줬으나, 그게 아니더라도 행정 중심, 명분주의적 장기 플랜을 감안하는 전반적인 전시 상황 속 재상으로서의 제갈량의 성정을 감안하면 기습이나 납치, 협박같은 정략적인 기책은 총참모장에 가까운 방통의 전문분야에 더 가깝다.[* 심지어 그래서 ''''방통이 살아있었다면 거의 내놓은 계책수준이 자살행위 수준에 불과한 위연의 자오곡 계책도 뭔가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하는 헛된 기대마저 하는 삼덕들마저 아직 있을 정도니. 물론 방통이 비슷한 상황에 임했으면 공명이 추진했던 양동작전을 더 공세적으로 돌려서 최단시간으로 위군을 안쪽으로 유인해서 일거에 주력을 분쇄하고, 바로 적의 거점을 급습하는 전법으로 갔을 것이다.] 하여간 [[이릉대전]]에서의 대패로 많은 인재를 통째로 날렸을 때 얼마 전에 죽은 법정의 부재만으로도 탄식한 제갈량이다. 자기와 비견된 방통의 급작스러운 전사에 아쉬워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제갈량이 익주 전선에 투입된 것은 방통이 죽기 전의 일이다. 더구나 방통(책략+뛰어난 용병술)과 제갈량(약간의 책략+정석적인 용병술+내정)은 능력의 성격 자체가 달라 서로 대체할 수 없는 인물이기에 새로 유비의 본거지가 된 익주 전체의 내정 관리를 담당할 인물은 제갈량밖에 없다. 순욱의 역할을 순유, 정욱, 곽가, 가후가 대체 불가한 것과 비슷하다. 제갈량은 방통이 죽기 전에 이미 입촉을 하였고 형주보단 익주가 메인이니 제갈량은 익주에서 군비를 확충해 유비 및 법정 황권이 공격 전술을 담당하고 형주에 방통과 마량, 마속 형제가 같이 투입되어 전반적인 내정과 전술을 준비할 수 있다. 또한 방통의 형주 방가는 형주에서 최상위 가문이기에 유력 호족들의 협력을 얻기도 편해졌을 것이다. 방통의 죽음은 파죽지세였던 유비군의 방심과 조금 앞서 있었던 양주에서의 마초 세력 완전 축출로 인한 초조감이 겹쳐 벌어진 비극으로, 유비 입장에서는 크나큰 실책이자 상처일 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때까지 온갖 생고생을 하면서 가족은 잃어도 어떻게든 핵심 참모 집단은 어떻게든 잃지 않았던 유비 입장에서는 서주 탈출이나 장판 같은 생지옥도 아니라 자기 측이 공세였던 유리한 전장에서, 장수도 아닌 책사를 전사하게 만든 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고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장존]]의 눈새 발언에 대해서도, 뜬금없이 장존이 방통을 디스했다기 보다는 바로 그런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유비가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분위기가 나빠지는 것을 막으려다 서로 엇갈린게 아닌가로 추측하는 이가 있을 정도. 여기서 또 새삼 재평가 되는게 바로 [[법효직]]이다. 제 한 쪽 날개가 되어줄 봉추를 허무하게 화살에 잃고 끊임없이 후회하던 유비 입장에서 그 후임격인 책사가 대뜸 화살비 앞으로 달려 나가면 당연히 트라우마 스위치가 켜질 테고,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을 터 방통과는 함께 익주 공략의 브레인으로서 협업했을 테고, 어떤 의미 그 후계적 자리를 꿰찬 인물이기도 한 법정이 이런 유비의 심리에 대해 몰랐을 리가 없는데 이놈은 아예 의도적으로 자기 목숨까지 걸고 그 트라우마를 자극해 제 목적을 이룬 셈이며 참으로 지랄맞은 그 성격이 베어나오는 지략이었다. 이런 걸 보면 참 법정의 캐릭터가 끝내준다 싶으면서도 그렇게 '방통처럼 떠나보내지 않으려' 했음에도 결국 얼마 안 가 그를 잃고 만 유비,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유비를 제지할 수 있었던 그의 부재를 아쉬워 한 제갈량의 심중에 대해서도 또 새삼 촉빠들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