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통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아버지의 이름은 알려진 바가 없고 맏이일 가능성이 크다. 자에 원(元)이 들어가는 점, 형이 언급되지 않고 형제는 동생뿐이라는 점 등이다.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양양기에 따르면 제갈공명([[제갈량]])은 와룡, 방사원(방통)은 봉추, 사마덕조([[사마휘]])는 수경이라 했는데 이는 모두 방덕공이 말한 것이다. 방통은 방덕공의 조카인데, 어려서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오직 덕공만이 그를 중히 여겼다. 나이 18세 때, 사마덕조에게 가 뵙게 했다. 방통전에 따르면 어릴 때 박둔(樸鈍)[* 국내에 퍼진 번역본에서는 '투박하고 둔하여'로 번역되었다. 박둔이란 칼이나 검의 무딤을 표현하는 말로, 방통이 천성부터 날카롭고 번뜩이는 영민함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다는 뜻이다.]하여 그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영천 사람인 사마휘는 청아하여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안이 있었다. 방통이 약관의 나이 때 사마휘를 찾아가 만났는데, 사마휘는 나무 위에서 뽕잎을 따며 방통은 나무 아래에 앉아있게 한 채 낮부터 밤까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세설신어]](上권 언어편)에 따르면 남군 방사원이 [[사마휘|사마덕조]]가 영천에 있다는 말을 듣고, 2천 리나 찾아가 기다리다 뽕을 따고 있는 사마덕조를 만나게 되었다. 방사원은 수레 속에서 말했다. >나는 대장부가 세상에 살며 마땅히 고관이 돼야 한다고 들었는데, 어찌 혼란한 세상을 되돌릴 역량이 있으면서 길쌈하는 지어미의 일을 하겠습니까? 사마덕조가 말했다. >당신은 우선 수레에서 내리시오. 당신께서는 참 샛길이 빠른 줄만 알지, 길을 잃고서 헤매게 될 것은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어찌 화려한 집에서 살고 살찐 말만 타고 다니며, 시녀가 수십 명인 다음에만 기이하다 하겠습니까. 방사원이 말했다. >내가 변방에서 나서 자라 대의를 본 일이 적은데, 만약 한번 큰 종을 두들겨 보지 않고 우레 같은 북을 쳐보지 않았더라면, 그 울리는 소리를 알지 못할 뻔했습니다. 양양기에 따르면 덕조가 같이 얘기를 나눠 보고는 잠시 후 감탄하며 말했다. >덕공은 실로 사람을 알아보는구나. 이 아이는 참으로 크고 훌륭한 덕을 가졌다. 사마휘는 그를 매우 남다르게 여기고 방통이 응당 남주(南州) 선비의 출중한 인물이라 칭찬하니 이로 말미암아 점차 드러나게 되었다. 상랑전 주석 양양기에 따르면 [[상랑]]은 젊어서 사마덕조(사마휘)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서원직([[서서]]), 한덕고([[한숭]]), 방사원(방통) 등과 친하게 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