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통 (문단 편집) === [[유비]]의 [[입촉]] === 구주춘추에 따르면 방통이 유비를 설득했다. >형주는 황폐해져 사람과 물자가 고갈되었고, 동쪽으로 오의 손권이 있고 북쪽으로 조씨가 있어 곤란합니다. 지금 익주는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강성하여, 호구수 백만에 사부 병마로 나오는 바가 잘 갖춰져 있으니 지금 임시로 빌려 대사를 정할만 합니다. 유비가 말했다. >지금 내게 있어 물과 불 같은 관계에 있는 자가 조조요. 조조가 급하면 나는 너그럽고 조조가 사나우면 나는 인자하고 조조가 속이면 나는 충직했으니, 매번 조조와 반대로 하여 일을 이룰 수 있었소. 지금 사소한 이유로 천하에 신의를 잃는 것은 내가 취할 바가 아니오. 방통이 말했다. >역리로 취하되 순리로 지키어 의리로 보답하고 대사가 이룬 뒤 대국(大國)에 봉해 준다면 어찌 신의에 위배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취하지 않으면 끝내 남을 이롭게 할 뿐입니다.[* 즉 서천을 취하는게 전체를 봤을 때 더 인의를 위하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셈이기도 하다.] 유비가 마침내 이를 행했다. 제갈량은 남아서 형주를 진수하고 방통은 유비를 수종해 촉으로 들어갔다. 요립전에 따르면 유비가 촉으로 들어가고 제갈량이 형주 지역을 지키고 있을 때, 손권이 사자를 보내 제갈량에게 우호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선비들 중에서 누가 국가를 다스리는 일을 도울 수 있는지 질문했다. 제갈량이 대답하여 말했다. >방통과 [[요립]]은 초나라의 우수한 인재로, 후세에 전해질 제왕의 사업을 보좌하여 일으킬 수 있는 자들입니다. 익주목 [[유장(삼국지)|유장]]이 유비와 광한군 부현에서 만났다. 방통이 계책을 올렸다. >지금 이 모임을 틈타 유장을 붙잡는다면 장군께서는 용병의 수고로움 없이 앉아서 한 주를 평정할 수 있습니다. 유비가 말했다. >이제 막 다른 나라로 들어와 은혜와 신의를 아직 드러내지 못했는데 그리 할 수는 없소. 방통은 평생 행정 업무만 맡아보았지만 유비를 수행하면서부터 이른바 모사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방통은 본격적으로 의견을 내놓기 시작하는데 위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같이 몹시 급진적이었다. 방통의 화끈하고도 직선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장]]이 성도로 돌아간 뒤 유비가 유장을 위해 북쪽으로 한중을 정벌하려 했다. 팽양전에 따르면 마침 유비가 촉나라로 진입하여 장강을 따라 거슬러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팽양]]은 유비가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유세하기 위해 곧바로 방통에게 가서 만났다. 방통은 팽양과는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었으며, 또 마침 빈객이 있었는데, 팽양은 줄곧 방통의 침대 위에 누워 방통에게 말했다. >손님이 오면 응당 그대와 충분히 담소로 나눠야 합니다. 방통은 빈객이 떠난 후에 팽양이 있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팽양은 먼저 방통에게 식사를 요구한 연후에 함께 얘기를 했다. 이렇게 남의 집에서 묵으며 며칠이 지났다. 방통은 그를 높이 평가했고 [[법정(삼국지)|법정]]은 이전부터 팽양의 재능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와 함께 유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유비 또한 팽양을 기재가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팽양으로 하여금 군사 명령을 전달하여 장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도록 여러 번 명령했다. 방통이 다시 설득했다. * 상계(上計): 은밀히 정병을 뽑아 밤낮으로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가 곧바로 성도를 습격하십시오. 유장은 굳세지 못한 데다 또한 평소 대비가 없어, 일거에 평정 할 수 있습니다. * 중계(中計): [[양회(후한)|양회]], [[고패]]는 유장의 명장으로 각각 강병들을 거느리고 관문을 점거해 지키며, 듣기로 여러 차례 유장에게 장군을 형주로 돌려보내라고 간언했다 합니다. 형주에 위급한 일이 있어 되돌아가 구원하려 한다고 하며 되돌아가는 것처럼 하십시오. 이 두 사람은 장군이 떠난다는 것에 기뻐하여 필시 경기병을 타고 만나러 올 것이니, 장군께서 이 틈을 타 그들을 붙잡고 진격하여 그 군사를 차지하고 이내 성도로 향하십시오. * 하계(下計): 백제(白帝)로 물러나 형주와 연결하고 서서히 돌아와 도모하는 것입니다. 만약 망설이며 거행하지 않으면 장차 오래지 않아 큰 곤란을 겪을 것입니다. 유비는 중계(中計)를 옳게 여겨 양회, 고패를 참수하고 군사를 되돌려 성도로 향했고 지나는 곳마다 번번이 이겼다. 방통이 상계(上計)로 꼽은 건 정예병을 뽑아 즉시 성도로 진격하여 유장을 습격하자는 것이었다. 최단시간 안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적의 우두머리를 치자는 것이니, 예전에 그 자신이 제안했던 것과 궤를 같이하는 과격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이번에도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가 채택한 건 방통의 중계(中計)였다. 즉 먼저 양회와 고패를 제거하고 이후 주위를 평정하면서 성도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유비는 본래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우선시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고, 영토 내의 호족과 백성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민족들에게조차 널리 은혜를 베풀면서 호의를 얻었다. 그렇게 유비라는 이름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천하에 각인되었다. 서주에서는 미축을 비롯한 호족들이 앞장서서 그를 주목으로 추대하였으며, 형주에서는 무려 십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조조를 피해 그를 따라갔고, 익주의 유력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끌어들일 정도였다. 그렇기에 유비는 처음부터 급박하게 유장을 공격할 마음이 없었다. 그보다는 시간을 들여가며 천천히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을것이다. 그래서 장로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북진했으면서도, 막상 장로를 공격하는 대신 오히려 은덕을 베풀면서 익주 사람들을 천천히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다소 과장되게 말하자면 익주가 스스로 자신에게 바쳐지기를 원것. 그건 비록 느리지만 그만큼 뒤탈이 없고 안정적인 방식이었다. 반면 방통의 방향성은 주군인 유비와 정반대였다. 그는 일단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확실한 성과를 내면 그 후에 뒤따라오는 부작용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과거에 인재들을 지나칠 정도로 칭찬한 것도 찬밥 더운밥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인재를 발탁하여 일단 머릿수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그렇게 인재를 모은 후에야 비로소 옥석을 가려도 늦지 않는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유비가 보기에 방통처럼 과격한 방식은, 당장은 효율적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번이나 방통의 계책을 물리친 것이다. 부현에서 큰 모임을 열어 술을 차리고 음악을 연주케 했다. 방통에게 말했다. >오늘 모임이 가히 즐겁구려. 방통이 말했다. >남의 나라를 치고 즐거워하는 것은 어진 이의 군대가 아닙니다. 유비가 술에 취해 있었는데 노하여 말했다. >[[무왕(주)|무왕]]이 주(紂)를 치며 그 앞뒤로 노래 부르고 춤췄는데 그도 어진 이가 아니었단 말이오? 경의 말이 맞지 않소. 속히 일어나 나가시오! 이에 방통이 머뭇거리며 물러났다. 유비는 곧 후회하고는 되돌아오도록 청했다. 방통이 다시 예전 자리로 돌아왔으나 돌아보고 사죄하지 않으며 태연자약하게 먹고 마셨다. 유비가 말했다. >조금 전의 논의에서 누가 잘못한 것이오? 방통이 대답했다. >군신(君臣)이 함께 잘못했습니다. 유비가 크게 웃으며 당초처럼 술자리를 즐겼다. 이에 습착치와 배송지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무릇 패왕(霸王)은 필히 인의(仁義)를 갖추어 이를 근본으로 삼고 신순(信順)에 기대어 이를 근원으로 삼으니, 한 가지라도 갖추지 못하면 그 도가 어그러지는 법이다. '''[* 여기서 말하는 패왕은 문장으로 보아 [[순자]]가 말하는 패도(覇道)의 군주를 말하는것 같다. 이는 '덕이 온전치 못하고 의가 완전치 못하나 대체로 천하의 도리가 모여있음. 형벌과 포상이 매우 분명하여 천하와 뭇 신하들의 신임을 삼. 한번 선포한 정령을 바꾸지 않으니 백성을 속이는 일이 없음. 한번 협약을 맺는다면 동맹국을 속임이 없음. 옛날의 패자들은 이같이 하였으므로 변방의 나라이면서도 천하를 호령했고, 강대하여 중원을 위태로이 하였음. 이른바 '신信이 우뚝 서면 패자가 됨'은 이를 가리킨다.]이제 유비가 유장의 땅을 습격하여 빼앗고 권(權-권도, 권의)으로 일을 이루니, 신(信)을 저버리고 정(情)에 어긋나 덕의(德義)가 함께 잘못되었다.''' 비록 이로 말미암아 공(功)이 융성하다 하나 의당 크게 상하고 패한 것으로, 비유컨대 손을 끊어 몸을 보전한 격이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방통은 이 말이 누설될까 두렵고 그 주인이 필히 깨우칠 것임을 알아 이 때문에 뭇 사람들 속에서 그 실수를 바로잡으니, 늘 겸손함의 도를 갖추지 않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기탄없이 간언함의 기풍을 다하였다. 무릇 위에서 잘못했을 때 능히 바로잡을 수 있으면 이는 신하가 있는 것이고, 나은 것을 받아들여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는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신하가 있으면 섬돌이 융성하고 당이 높아지고 이치에 따르면 여러 모책들이 모두 거행된다. 한마디 말로 세 가지 선(善)이 겸하여 밝혀지고 잠시 간언하여 백대에 걸쳐 의를 밝히니 가히 큰 줄거리에 통달했다 이를 만하다. 작은 손실을 아까워하여 큰 이로움을 폐하고 지나친 말을 조심하여 스스로 직언을 끊고 멀리하면서 능히 대업을 이루고 일을 성공시킨 자는 일찍이 없었다. || ||[[습착치]]의 주|| ||유장을 습격하도록 꾀한 것은 그 계책이 비록 방통에게서 나왔으나, 의로움을 거슬러 공을 이루고 본래 궤도(詭道-부정한 방법, 속임수)에 말미암은 것이라 내심 꺼림칙하여 즐거운 마음은 절로 그치게 마련이니, 이 때문에 유비가 즐거워하는 말을 듣고 무심결에 경솔하게 대답한 것이다. '''유비가 술자리를 한창 즐긴 것은 시의에 맞지 않아 그 일은 화를 즐기는 것(樂禍)과 같은데, 자신을 무왕에 비교하며 더더욱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이는 유비의 잘못이고 방통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군신이 함께 잘못한 것'이라 말한 것은 아마도 (유비에게 향할) 비방의 말을 함께 나누려는 것이다. 습착치의 견해는 미루어 넓힌 말로 문장이 막힘없이 유창한 말을 한 것에 가깝다.|| ||배송지가 덧붙인 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