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호산 (문단 편집) == 평가 및 여담 ==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제6[[사단장]](☆), 제5[[군단장]](☆☆)을 역임하며 많은 전공을 세웠다.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측 최고의 전략가'''로 평가된다. [[김무정]], [[남일]] 등과 함께 전쟁 당시 가장 유능한 북한군 [[장성급 장교|장령]] 중 한 명이었으며, 특히 주요 전과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기동전]]의 대가였다. 그러나 북한에서 숙청당한 많은 인물들이 그렇듯, 그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전쟁을 수행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숙청당했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서 언급이 금기시되고 있다. 숙청당하기 전까지는 북한에서 어찌나 명성이 자자했던지, 아동용 그림책에조차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숙청당해 언급이 금기시 된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난 오늘날의 북한에서는, '6사단 출신 인민영웅' 이라 하면 방호산과 동일하게 [[공화국영웅|공화국2중영웅]] 칭호를 받은 6사단 정찰과장 리학문이나, 320고지 전투 당시 '나의 고지 운동'을 주도한 6사단 15련대 3소대장 한계렬이 인지도가 훨씬 더 높고, 당시 참전한 6사단 출신 북한 전쟁노병들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비록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적이었지만 북한군 입장에서는 [[명장|뛰어난 지휘관]]이었던 것은 사실이고, [[덕장|부하들에게 인망도 높았다]]고 한다. 그가 지휘하던 북한군 6사단과 5군단은 대부분 [[팔로군]] 시절부터 함께 싸운 사이라 전우애도 투철했다고. 그야말로 북한의 [[롬멜]]. 한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는데, 바로 6사단 점령지에서 수많은 [[인민재판]]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깐깐하고 만만치 않은 성격의 소유자같이 생각되겠지만, 6.25 전쟁 당시 북한군 중좌로 방호산의 6사단에서 정치 장교로 근무했던 최태환씨에 따르면, 무인이라기 보다 문인 스타일의, 점잖고 부드러운 성격이었다고 한다. 한편 그가 지휘했던 [[조선인민군]] 제6사단은 현재도 6.25 직전과 마찬가지로 서부전선의 [[개성시]]에 주둔 중이다. 비록 제1대 사단장은 숙청되어 방호산의 후임인 2대 사단장이 1대 사단장으로 기록되는 등의 [[기록말살형]]까지 당했지만 6사단은 여전히 '근위 제6사단'의 칭호를 유지하고 있다. [[분류:함경북도 출신 인물]][[분류:소련/인물]][[분류:조선인민군 제5군단장]][[분류:6.25 전쟁/군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몰년 미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