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배구 (문단 편집) == 발전 ==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배구는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배우는 그 간단한 서브, 즉 언더 서브 혹은 플로터 서브를 넣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서브 범실이나 서브 득점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서브는 경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서비스 개념이었다. 그렇게 서브를 받으면 완벽한 리시브를 통해 세터 머리 위로 정확하게 전달됐고, 이후 약속된 패턴 플레이로 경기를 했다. 센터에게 속공을 주는 척 하면서 시간차를 쓸 것인가, 아니면 곧바로 센터에게 속공을 연결시킬 것인가, 상대 센터를 속이며 백 어택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평범한 오픈 공격을 할 것인가. [[1964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일본]] 여자배구대표팀이 선보인 시간차 공격의 등장 이후로, 배구는 전형적인 패턴플레이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당시에는 한국이나 일본처럼 조직력을 우선시하는 국가가 배구 강국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중후반대에 본격적으로 '''스파이크 서브'''가 나타나면서, '''세계 배구사는 크게 변하게 된다'''. 스파이크 서브는 1978년도에 중국 선수가 처음 개발/시도했지만 현재와 같은 강서브보다 약한 위력이었으며 그것도 어쩌다 한 두 번 시도하는 정도였다. 1981년 이 모습을 보고 현재와 같은 스파이크 서브로 발전시켜 매 게임 사용하기 시작한 선수는 캐나다의 존 배럿(John Barrett)이다.[* https://www.thespec.com/sports-story/2123021-canuck-initiated-the-spike-serve/] 그 후 스파이크 서브가 일반화된 건 1984년 올림픽에서 브라질팀이 사용하고서부터이다. 국내 최초로 완전히 개인전술화한 선수는 바로 [[장윤창]] 선수. 1980년대까지의 서브는 단지 경기 진행의 개념으로 생각되었다. 당시 규정 때문이기도 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테니스처럼 서브가 상대 코트로 클린하게 넘어가야 했으며, 서브된 공이 네트에 스치기만 해도 무조건 범실이었다.[* 이를 가리기 위해 당시의 주심은 서브가 네트에 닿을 때 발생하는 진동을 느끼기 위해, 서브를 넣을 때 백테 끝에 손을 살짝 올려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스파이크 서브는 정확도가 떨어지는데, 네트에 맞고 넘어가도 범실이다 보니 웬만큼 정확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스파이크 서브를 넣는다는 것은 반쯤은 그냥 서브권을 넘겨주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당시에는 서브 포인트 시스템이었으므로[* 서브권을 가졌을 경우에만 공격에 성공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이른바 '[[묵찌빠]] 룰'.] 서브권 자체가 소중했으며, 이를 그냥 넘겨 준다는 것은 점수를 올릴 기회를 넘겨 준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래서 쉽사리 스파이크 서브를 시도하지 못 했던 것이다.[* 더구나 현재는 서브를 코트 뒤면 아무데서나 넣을 수 있지만, 이 때는 서브를 1번자리, 즉 우측 1/3 지점 안에서만 넣을 수 있었으므로 스파이크 서브에 더더욱 제한이 있었다.] ~~그 때는 서브를 잘못 넣더라도 서브만 넘겨주는 거고 지금은 아예 실점하는 건데?~~[* 이는 서브 포인트와 랠리 포인트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 해서 나온 발언이다. 서브 포인트 시스템에서는 자기가 서브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의 득점, 즉 요즘 개념으로 말하면 연속득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브범실은 그렇게 연속득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대에게 그 기회를 넘겨다 주는 행위이다. 결국 확률 낮은 서브에이스보다는 블로킹이나 수비를 통해 점수를 따내는 것이 당시 배구로서는 더 효과적인 공략방법이었다.][* 특히 1999년 이전에는 세트포인트가 15점인 게 컸다. 따라서 1점의 가치가 지금보다 컸고, 실력이 비슷한 팀들끼리도 서브권만 왔다갔다 하다가 연속득점하는 팀만 점수가 올라갔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이었다. 지금은 25-10으로 세트를 내주면 '완패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 때는 15-5정도 스코어는 비슷한 실력의 팀에서도 흔하게 일어났다. 예를 들어 [[1988 서울 올림픽]] 남자배구에서 결승전에서 은메달 [[소련]]은 금메달 [[미국]]을 1세트에 잡았지만 3세트에서 15-4로 졌다. 이 때는 이런 스코어가 워낙 비일비재해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서브권을 내준다는 건 연속득점의 기회를 버리고 상대팀에 연속득점의 기회를 주기 때문에 서브 범실의 심적 부담이 지금과는 다르다.] 그런데 공을 높게 띄우더니 마치 백 어택을 하듯 강력한 스파이크로 서브를 넣는 개념인 스파이크 서브는 상대의 리시브 라인을 초토화시켰고, 이전처럼 약속된 패턴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리시브를 해도 세터 머리 위로 제대로 올려 놓지 못 하고,'''[* 후술하겠지만, 한국 배구가 지금같은 [[몰빵배구]], 뻥배구로 퇴보한 이유가 리시브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구시대 배구인들 때문이다. 지금도 배구경기 해설자들은 '''리시브가 불안하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라는 구시대적 멘트를 세뇌수준으로 하고 있다. 아직도 서브가 연타로 받기 쉽게 넘어오던 1980년대 배구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시대론적인 발상을 정면으로 부딪힌 것이 최근 현대 배구의 흐름인 [[스피드 배구]]이다.] 리시브는 짧아지고, 결국 패턴 플레이가 실종되며 단순한 좌우 사이드 오픈 공격 위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1980년대에 스파이크 서브를 다른 많은 나라들도 시작하게 되자, 문제는 서브 리시브 라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서브가 서비스 개념에서 스파이크 서브로 넘어가자, 앞서 설명한 대로 리시브 라인이 초토화되고 제대로 된 패턴 플레이를 구사하기 어려워졌다. 이 때 현대배구에서 [[브라질]]의 [[베르나르두 헤젠지]] 감독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미국]]의 덕 빌 감독이 등장한다. 그는 '2인 수비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3명의 윙 플레이어를 2명의 레프트(아웃사이드)와 1명의 라이트(아포짓)으로 구분하고, 후위에 있는 레프트와 센터(미들 블로커) 1명에게 리시브를 전담시킴으로써 라이트를 리시브에 제외시켜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게끔 만드는 시스템이다. 라이트를 리시브에서 제외시키는 이유는 그 당시 선수들의 수비력으로 스파이크 서브를 리시브하고 곧바로 공격에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전위 후위에 1명씩 있으며 코트 왼쪽에 있는 레프트 윙 리시버와 달리 서브와 동시에 수비에서 빠져 토스를 준비하는 세터와 대각으로 돌아가는 라이트 윙 리시버의 위치를 활용해, 세터와 같은 동선으로 리시브에서 빼내서 세터가 불안한 리시브 때문에 패턴 플레이를 진행하지 못할 경우 미리 약속된 위치의 라이트에게 오픈이라도 올려놓기 위해 수비를 면제해 주는 것. 나중에는 수비 전문선수 [[리베로]]가 등장해 센터(미들 블로커)가 후위로 가면 리베로와 교체되는 식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런 2인 수비 시스템으로도 스파이크 서브를 제대로 막아내지는 못 했다. 1990년대 대한민국이 월드리그에 출전했던 경기를 본 올드팬들이라면 알겠지만, 세계구급 공격수들의 스파이크 서브는 받는 것조차 버거웠을 정도. 스파이크 서브는 갈수록 발전해 나가고, 결국 이 걸 받지 못 하는 팀은 '불안한 리시브 → 불안한 리시브로 인해 패턴 플레이를 못 하는 토스는 주공격수를 향한 오픈 토스 → 주공격수가 상대 블로킹을 뚫고 어떻게든 마무리' 라는, 완전히 경기의 기본 조립이 무너진 수준의 뻥배구 양상이 가속화 됐다.[* 똑같이 네트가 존재하는 프로 [[테니스]]의 경우 90년대 말 ~ 21세기 초 라켓 템빨과 선수들 파워증강으로 인해 극한의 서비스 몰빵게임 경향이 벌어졌고, 윔블던, US오픈등 속도빠른 코트에서 특히 심했다.] 그래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배구 경기 전체의 흐름을 늦추는 쪽으로 방향성을 정했고, [[리베로]][* 리시브 및 디그에 약점이 있는 센터를 뺄 수 있게 되면서 리시브, 디그 안정 강화.], 공인구의 공기압 약화,[* 옛날 배구공과 요즘 배구공은 겉면만 봐도 차이가 날 정도고, 직접 쳐 보면 알겠지만 타격감이 차원이 다르다. 이 시기만 해도 공을 손에 정확히 맞추기만 해도 얼마든지 원하는 곳에 스파이크를 꽂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볼 미팅과 컨트롤이 나쁜 공격수도 토스 페이크로 블로커만 따돌려 주면 얼마든지 터치아웃으로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수비와 재간으로 유명했지만 볼미팅은 아주 나빴던 국가대표 공격수 노진수, 공갈포로 유명한 [[이인구(배구)|이인구]] 같은 선수들이 그런 케이스. 게다가 과거 매끈한 배구공과 달리 요즘 배구공은 딤플이 들어가 약간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제대로 스파이크를 쳐도 정확하게 컨트롤이 되지 않으면 마치 야구공처럼 멋대로 흔들리며 막 휘어져서 스파이커 의도와 다른 곳에 꽂힌다. 이 때문에 연타 정확도나 서브 정확도 등 미팅의 중요성이 증대되어 과거의 공갈포는 버틸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랠리 포인트 시스템,[* 경기시간 단축의 목적이 더 크다. 그래도 랠리 포인트 제도가 도입되면서 어떻게든 서브권을 유지해야 하는 사이드 아웃 시절보다는 공격력 강화가 더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배구는 좀 더 공격지향적으로 변했다.] 서브의 네트 터치 인정 등 여러가지 제도를 도입하여 대응책을 세우기도 했다.[* 유의미한 변화로 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복장의 변화도 한몫 하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체육관 공조시스템의 문제로 겨울철에는 긴팔유니폼을 선호했지만, 1990년대 말 FIVB에서 몸에 달라붙는 상의 민소매 유니폼으로 복장규정을 정하려고 했었다. 당시 여자부 쪽에서 여성의 성상품화를 문제 들어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선수들의 움직임에 많은 도움을 준 것 또한 사실이다. 남자부에서 한 때 [[후인정|반팔유니폼의 소매만 걷어서 입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며, 결과적으로는 민소매 유니폼을 거쳐 어깨스윙이 편한 스판유니폼이 나오기까지 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사람이 앞서 설명한 '''[[스피드 배구]]'''의 시초인 브라질의 [[베르나르두 헤젠지]][* 브라질 배구 선수 출신으로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1990년대에는 코치진에 시작해서 2001년부터는 브라질 남자 배구 국가 대표팀을 맡는 감독이 되었다.] 감독이다. 덕 빌이 스파이크 서브로 인해 초토화된 리시브 라인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헤젠지는 이전 시대처럼 '''완벽한 리시브에 이은 정교한 패턴 플레이가 불가능함을 인정'''[* 우리나라의 대다수 배구지도자들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론은 '''[[몰빵배구]]'''...]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는데, 퍼펙트 리시브를 바라지 않고 어쨌든 리시브만 하면 세터가 양쪽 윙 스파이커에게 빠르게 토스를 쏴 주는 것이다. 스피드 배구의 핵심은 퀵 오픈(C퀵)인데, [[유튜브]]에서 브라질 국대들의 스페셜 영상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토스가 직선으로 빠르게 후위로 날아가는 '후위 시간차 공격(파이프 PIPE)'이라는 무시무시한 공격패턴을 볼 수 있다. [[https://www.donga.com/news/Sports/article/all/19981029/7390856/1|1999년]] [[FIVB]]에서 [[https://youtu.be/oaeZIua3zEY?t=282|랠리 포인트 제도가 도입]]되고 헤젠지 감독 식의 '''[[스피드 배구]]'''가 세계배구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을 당시, 한국 남자배구는 2005년까지 월드리그에 불참했던 관계로 이러한 세계배구의 흐름에 철저하게 뒤처진 7~80년대 조직배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어택라인에 겨우 올라오는 짧은 리시브 덕분에 예전과 같은 패턴 플레이는 보기 어려워져 공격이 단순화되어 가는 단점과, 세터가 디그에 참여한다던가 해서 2단 토스를 못 올리는 상황이 되면 예전의 뻥배구가 다시 나타나는 단점이 있지만, 현대배구에서의 표본은 어찌 됐든 간에 '''[[스피드 배구]]'''다. 리시브를 제대로 해 줘서 세터의 손끝으로 경기를 조립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레프트들은 코트에서 오픈과 패턴 플레이 및 중앙 후위 공격 등 공격에도 참여하기 시작했고, 라이트와는 다르게 공격과 수비 모두 참여해야 하는 만능 선수가 돼 버렸다. 수비 포메이션상 레프트 2명은 라이트(아포짓)와 전위의 센터를 보호하며 리시브를 받게 된다. 사실상 레프트(아웃사이드)의 개인전술과 역량, 강철같은 체력이 중요시되는 시대인 것. 과거의 조직력 배구와 현대 스피드 배구의 차이점을 최대한 짧게 설명한다면, 조직력 배구는 세터의 토스 손놀림과 팀원들의 약속된 움직임으로 상대 블로킹을 따돌렸지만, 스피드 배구는 '''세터의 토스 손놀림이 사라지고 팀원들이 전부 각자의 개인기술과 스피드로 상대 블로킹을 따돌리는''' 방향으로 바뀐 것. [[https://youtu.be/IrgQhgwGQxo|배구의 훈련 방식]]은 무척 창의적이며 다양한 도구를 이용한다. [[https://youtu.be/yqVmDKgsZ2c|Best volleyball trainings]] # 1~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