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배용준 (문단 편집) == 활동 == 1994년 오디션을 통해 KBS 특채 탤런트로 발탁되어 청춘 드라마 <사랑의 인사>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재벌 2세 역할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20대 여대생들에게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순위로 배용준이 꼽히기도 했다. 그리고 <파파>, <첫사랑>, <맨발의 청춘> 등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톱스타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99년에 방송 된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이후에는 많은 작품의 캐스팅 제의를 받았지만 역할 등의 의견이 맞지 않아 작품이 무산되면서 2001년 <호텔리어>에 출연하기까지 2년 간의 공백기를 갖게 되었고, 2000년에는 [[성균관대학교]][* 실제로 배용준의 배우 커리어 최고의 히트작인 [[첫사랑(KBS)|첫사랑]]에서 그가 분한 [[성찬우]]가 다니던 학교가 바로 성균관대학교이다.] 예술학부 영상학과 00학번으로 뒤늦게 입학해 학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허나 이런 공백기 때문인지 드라마 배우로서는 그만한 원톱을 찾기 힘들 정도의 흥행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평가절하되는 측면이 있었다.[* 때문인지 배용준이 겨울연가로 뜨기 전 한국에선 인기 없었다는 --개--드립이 안티들에게서 나오기도 하는데, 아래 필모그래피의 출연작 시청률을 보면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얻은 폭발적인 인기와 대조되는 현상 때문에 한국에서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 뿐이다. ~~시청률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이 터지면서 그의 인생에도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youtube(w4Rpgme7PYs)] 2004년 11월, [[나리타 공항]] 입국 당시 영상.[* 공항에 모인 엄청난 환영인파(3500여명)와 배용준의 인기를 2003년 당시 일본을 방문한 [[데이비드 베컴]]의 입국장면과 비교한 영상이 나온다{38초경}. 그리고 영상에서도 보이지만 당시 모인 팬들의 상당수가 40대에서 50대, 그리고 60대 할머님들도 간혹 보일 정도로 중장년 일본 여성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 배용준이 일본에서의 겨울연가 열풍 이후 두 번째로 입국한 영상이다. 최초 입국은 겨울연가가 NHK 지상파 방송을 시작한 2004년 4월이다. 당시에는 [[하네다 공항]]으로 입국했는데, 당시의 하네다 공항은 국제선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아 방문객이 몰려들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했다. 그런데 하네다에 '''5,000명'''이 몰렸다. 하네다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배용준은 다음 입국 때는 나리타를 이용하라는 하네다 공항 측의 요청으로 2004년 11월 사진집 홍보 목적으로 방문한 이 때 나리타를 이용한 것.[[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04040470082#Redyho|관련링크1]][[http://egloos.zum.com/bigbig/v/9944902|관련링크2]] ][* 실제 2004년 4월의 하네다 입국 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F5XpFLEaB5k|여기]]를 참고하자. 문서 본문의 나리타 입국 때와 비교하면 첫 입국 당시에 공항 질서가 훨씬 흐트러져 있음이 느껴질 것이다.] 2002년 그가 출연한 [[겨울연가]]가 2004년 일본 지상파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2003년 NHK 위성채널을 통해 방영하다 매니아층 사이로 인기를 끌자 2004년 NHK 종합채널에서 재방영한 것.] 그는 명실상부한 욘사마[* ~~배사마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배'의 일본어식 표기인 ぺ가 '''침뱉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퉤사마'.(...) ペ가 아닌 ベ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메롱사마'가 된다. 배씨 [[지못미]].]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며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실상 일본 한류스타의 시발점이자 '''주역'''. 때문에 당시 언론의 보도는 가히 도배 수준이었고, 배용준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거의 국빈급 대우를 받았다. 최상급 스위트룸이 제공되었는데 1박 98만엔인 방과 한 층 전체를 빌렸고, 해외에서 고용한 보디가드까지 완비된 상황. 또 당시 헬기로 그의 이동경로를 촬영, 호텔에선 밀착 다큐멘터리를 방송할 정도였다. 2004년 발매된 근육질 사진집 역시 어마어마하게 팔렸다. 이와 관련해 배용준 사진집 판매 대행사 측은 공식 홈페이지에 "『더 이미지 볼륨 원The Image Vol.One』 판매 개시 사흘 만에 10만 부가 팔렸다" 라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판매된 배용준의 사진집 세트는 세금 포함 한화로 약 15만 1200원이었는데, 10만 세트가 판매로 약 151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이례적인 것은 사진집이 초 고액인 15만원 대 였는데도 이 정도 팔렸다는 것은 확실한 구매층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후 욘사마의 인기로 인해 일본에서 개봉된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배용준이 여러 여자를 꼬시는 바람둥이에 꽤 리얼한 정사신도 여러번 있는 주인공역으로 나오면서 ~~멘붕~~ 일본 배용준 팬들 중엔 욘사마에 대한 환상이 깨져 기겁하고 우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일본 야후 영화 같은 평점 사이트에서도 5점 만점에 2점대로 평가가 상당히 안 좋은 편. 아무튼 일본팬들에겐 스캔들에서의 배용준은 [[흑역사]].[* 다만 일본에서만 안 먹혔지 영화 자체는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국내 흥행과 평도 좋았고 유럽에서도 평이 좋았다. [[전도연]], [[이미숙(1960)|이미숙]]이라는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쇼테를로 드 라클라의 소설인 <위험한 관계>(이미 미국에서 영화화되었으며 프랑스에선 발몽이란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를 조선시대에 잘 재현했다는 평. 허나 이때 호평받은 이재용 감독은 이후 [[다세포 소녀]]를 감독하며 뭉개진다.(...)] 허나 배용준의 인기는 여전했는데, 사실 이 때쯤부터 그는 의도한다 싶을 만큼 철저한 이미지 바꾸기에 돌입한다. 자신의 부드러운 매력보다는 남성적인 매력도 어필하고 싶었기에 그는 2004년에 근육질 몸매를 만들어 화보까지 찍었으며, 이때도 일본 내 배용준 팬들은 기겁을 하였지만 그냥 받아들인 듯 ~~혹은 계속 보니 몸매가 꽤 괜찮다?~~ 인기에 큰 영향은 없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21591|오히려 배용준을 트레이닝했던 헬스 트레이너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2005년 허진호 감독의 영화 외출에 출연. 최루성 짙은 멜로물답게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로 멘붕한 일본 팬들에게 다시 욘사마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어필되어 300만 관객을 모으며 당시 한국 영화 사상 최고 일본 흥행작이 되었다. 한국에선 관객수가 80만명에 그쳤으나, 이미 제작 초기 단계에 일본에 700만달러(약 66억원)로 선수출하여 손익분기를 넘었고 이후 개봉하여 일본에서 27억엔(약 230억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2007년엔 잡음이 많았지만 어쨌든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주인공 담덕으로 출연해 그해 MBC 연기대상과 인기상을 받게 된다. 특히 인기상은 투표결과 100만표가 나왔을 정도. 다만 이후 작품들에선 까메오와 단발성 특별출연만 함으로써 사실상 배우 생활을 접었다고 볼 수 있는데,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론 건강 문제가 꼽힌다. 태왕사신기를 촬영하면서 손가락 뼈가 골절되는 등 자잘한 부상을 입다가 급기야 척추부상까지 당하면서 여러차례 수술 및 재활훈련을 해야 했고, 이후 드라마 컴백을 타진하고 있었으나 [[패혈증]] 진단을 받으면서 거의 반강제로 배우 생활을 쉬게 되었다. 여담으로, 2000년 초반 일본 한류붐 당시 안티들은 배용준의 팬들이 주로 중장년층 여성에 국한되어있다고 폄하하는 시선도 일부 있었지만, 이는 좁은 시선인게 이런 일부 계층의 팬들이 이후 일본내 한류 열풍을 다른 세대에까지 전파시키는 주춧돌이 되었단 점에서 그 중요성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티비 채널 선택권은 여성이 가지는 경우가 많고, 가족 내 자녀들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렇다보니 주로 중장년층 여성이 다수였던 그의 팬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자녀 혹은 손주들에게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았다. 2020년대 기준으로 20대~30대 젊은 한류팬들에게 처음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언제냐고 물으면 많은 경우가 가정에서 조부모 혹은 부모의 영향으로 팬이 되었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그는 그리 길게 활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력과 발자취를 남긴 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1월 13일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그의 대표적인 홈페이지의 도메인이 다른사람에게 팔렸고, 현재 가족들이 하와이에 거주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사실상 은퇴한게 아니냐는 반응들이 많다. [[https://entertain.v.daum.net/v/20221113141739771|#1]] [[https://news.nate.com/view/20221113n10681|#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