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골단 (문단 편집) === 사건 === 백골단은 여러모로 악명을 떨쳤는데 시위진압 중 1991년 4월 당시 명지대생이었던 [[강경대]]를 이들이 진압하면서 철근이 든 죽도와 쇠파이프로 때려죽이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악명을 떨쳤다. 당시 강경대는 시위대에서 사실상 낙오된 상황이었고 학교 담을 넘어 도주하던 중 백골단 5명에게 철근이 들어간 죽도와 쇠파이프로 두부를 구타당한 후 길거리에 버려졌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곧 사망하였다. 강경대를 살해한 백골단 대원들은 공판에서 반성은 커녕 오히려 강경대에게 있지도 않은 화염병 혐의를 뒤집어씌웠고 이에 분노한 민가협 회원들이 공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27308.html|‘강경대 치사사건’ 첫 공판서 유가협 울분 폭발]], [[http://www.amn.kr/sub_read.html?uid=11089§ion=sc27|자식을 가슴에 품은... 강경대 열사 아버지]] 강경대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 와중에 5월 성균관대생 [[김귀정]]도 경찰에게 집단구타당해 사망했다. 그래서 [[성균관대]] 명륜캠퍼스엔 "김귀정 생활도서관"이라는 동아리가 지금까지 내려온다. 1996년 3월 연세대 [[노수석]]도 일명 토끼몰이 진압 와중에 사망했다는 시위대 측의 주장이 있다.[* 그러나 노수석은 부검 결과에서 사인은 선천성 심장이상이었음이 확인되었으며 이후 유족이 노수석의 머리에 부상의 흔적이 있다고 과잉진압에 의한 사망임을 주장했지만 1999년의 민·형사소송에서도 경찰의 [[과잉진압]]과 노수석의 사망간에는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유족 측이 패소하였다.] 백골단에 의해서 사람이 죽는 일도 존재했기 때문에 중경상을 입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1980~90년대에 [[전교조]] 주도의 소위 '참교육 운동'을 전후해 발생한 '[[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93%B1%ED%95%99%EC%83%9D_%EC%9A%B4%EB%8F%99|고등학생운동(이하 고운)]]' 활동[*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95|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오름> 2006년 제10호]], 2016년 7월 시사in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484|기사]]도 참고할 것.]을 했던 고등학교 시위대도 있었는데 백골단에 의해서 진압된 고등학생 시위자의 어지간한 뼈마디가 모두 골절된 경우도 있었다지만 언론에는 안 나왔다고 한다. 1991년 5월 7일에 백골단은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https://archives.kdemo.or.kr/contents/view/125|박창수]][* 1981년부터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하여 줄곧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가 1987년부터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3년간 노조 내 회계감사로 일하다가 1990년에 노조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이듬해에 부산노련 부의장 겸 [[전노협]]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처우 개선이라는 명분하에 1991년 2월 대우조선 투쟁지원 연대회의에 참석하다 경찰에 의해 '제3자 개입금지 위반'으로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해 4월에 있었던 강경대 구타치사 사건에 항의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다가 의문의 부상을 당해 안양병원에 입원했고 5월 6일 안양병원 마당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사인은 단순 비관자살로 판명되었지만 유족들은 반발했고 13년 뒤인 2004년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하여 안기부가 개입했다는 설이 있으나 자료 및 증거불충분으로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나게 되었다. 그러나 사망 다음날 빈소에서 시신을 탈취한 것을 보면... 그나마 당국의 노조탄압 속에 의문사를 당한 점을 인정하여 2014년에는 '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로 인정되었다.]의 빈소로 쳐들어가 영안실 벽을 깨부수고 박창수의 시신을 탈취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sapafund.files.wordpress.com/ebb095ecb0bdec8898ec8b9cec8ba0ed8388ecb7a8.jpg]] 1991년에 안양병원 영안실로 난입한 백골단들. 이들은 영안실 벽을 뚫어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시신을 탈취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